이재명 언론관, 오바마인가 트럼프인가 [세상읽기]
김준일 | 시사평론가
정치 지도자가 언론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동서고금 흔한 일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3년 1월 시사주간지 ‘뉴 리퍼블릭’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채무 불이행 위기를 언급하며 “언론이 피장파장식 보도를 일삼는다”고 비판했다. 2015년 2월 인터넷 매체 ‘복스’와의 인터뷰에선 “언론이 시청률 때문에 테러와 범죄를 과장해 보도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10월에도 그는 국제경찰청장협회 총회에 참석해 총기규제 필요성을 언급하며 “자극적 뉴스를 찾는 언론이 경찰과 국민을 이간질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재임 기간 내내 언론에 대해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2018년 7월에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지속한 시엔엔(CNN) 기자에게 질문을 받지 않겠다며 “시엔엔은 가짜뉴스”라고 공격했다. 그는 시엔엔 기자의 백악관 출입을 막기도 했고 시엔엔과 엔비시 대표이사가 해고되어야 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평가나 대응은 사뭇 달랐다. 오바마에겐 재임 기간 언론이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반면 트럼프에 대해선 보수·진보 언론 할 것 없이 대체로 비판적이다. 심지어 트럼프의 최대 우군인 폭스뉴스 제이 월리스 사장은 시엔엔 기자의 백악관 출입 정지에 대해 직접 비판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2018년 8월엔 미국 200여개 신문사가 트럼프의 적대적 언론관에 반대하는 사설을 동시에 게재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언론 관련 발언이 큰 논란이다.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관련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는 지난 14일 “희대의 조작 사건”이라며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기는커녕, 마치 검찰의 애완견처럼 주는 정보 받아서 열심히 왜곡·조작하고 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같은 당 양문석 의원은 “검찰청의 일부 도둑놈들이 불러주면 받아쓰기하는 그런 직원들이 무슨 애완견?”이냐며 “(이 대표가) 앞으로는 그냥 기레기라고 하시면 좋을 듯”이라고 옹호했다.
민주당 주장에 따르면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 판결문에는 대북송금의 목적이 쌍방울 계열사의 주가 부양으로 나오는데, 반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판결문엔 북한에 전달된 일부 자금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을 위한 쌍방울의 대납이라고 해 두 판결이 모순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이런 사실을 언론이 충실히 보도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련 보도는 이미 적지 않다. 두 재판 결과가 충돌한다는 분석도 있지만 안부수 회장 판결에선 800만달러의 성격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에 두 판결이 양립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선 정치생명이 달린 쌍방울 대북송금 수사 보도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불만을 언급하는 방식이다. 오바마는 언론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모욕적이거나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충분한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을 했고 주로 특정 언론사와의 단독 인터뷰를 활용해 문제를 깊이 있게 언급했다. 반면 트럼프는 모욕적이고 논란이 될 만한 단어를 자주 사용했으며 언론 자유를 존중하지 않았다. 2017년엔 엠에스엔비시(MSNBC) 방송 진행자들에 대한 조롱을 일삼고, 시엔엔 로고가 얼굴에 합성된 남성을 트럼프 본인이 직접 때려눕히는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이 대표는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 애완견(랩도그)이라는 표현이 감시견(워치도그)의 반대이기 때문에 언론 비하가 아니라는 노종면 의원의 주장도 있긴 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정권의 애완견이라고 부른다면 ‘권력의 개’라고 읽는 것이 일반적이듯 이 대표가 언론을 ‘검찰의 개’라고 비유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17년엔 친형 강제입원 의혹을 보도한 방송사를 겨냥해 “독극물 조작 언론을 반드시 폐간시킬 것”이라고 말하는 등 언론에 공격적인 언사를 사용해왔다.
언론은 성역이 아니다. 권력을 비판할 자유가 있는 만큼 비판받는 것도 감내해야 한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정치인이 자극적 단어로 언론 전체를 싸잡아서 비판하는 건 잠깐은 지지자의 도파민이 나오게 할 순 있지만 결국 도움이 되질 않는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가 언론과의 끊임없는 갈등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판결은 언론이 아니라 판사가 내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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