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푸틴, ‘포괄적 동반자 관계’ 촉각…군사동맹까진 안 갈듯
‘반미’ 고리로 “창조적·다방면 동반자관계” 지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18일치 노동신문 1면에 나란히 실린 ‘푸틴 기고문’과 ‘환영 사설’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푸틴 대통령의 24년 만의 방북과 2023년 9월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9개월 만의 재회가 북-러 관계를 뛰어넘어 격변하는 국제질서의 지정·지경학적 포석 위에 있음을 드러낸다. 러-우 전쟁의 향배가 북-러 관계의 앞날에 중대 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푸틴 기고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는 로씨야(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을 굳건히 지지”하고 있다며 “평양은 어제도 오늘도 우리의 믿음직한 동지·지지자”라고 추어올렸다. 북쪽은 ‘환영 사설’로 “로씨야의 대우크라이나특수군사작전”은 “정의의 성전”이며 “조로(북-러) 인민은 한 전호(전투의 한 참호)에 서 있다”고 화답했다.
북-러 밀착의 또다른 촉진제는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다. ‘푸틴 기고문’은 미국이 “‘2중기준’에 기초한 세계적인 신식민주의독재인 이른바 ‘규정에 기초한 질서’를 세계에 강요”하고 “자기들이 일으킨 우크라이나에서의 분쟁을 더욱 격화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곤 “미국의 경제적 압박, 도발, 공갈, 군사적 위협”에 맞선 “조선의 벗들”을 “변함없이 지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부 당국자는 “푸틴 기고문에 대미국 메시지가 많이 포함된 게 이례적·특징적”이라고 말했다.
‘푸틴 기고문’과 ‘노동신문 사설’은 공통 지향으로 “다극화된 (새) 세계 질서”를 제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상호) 결제체계 발전”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조치들 공동 반대” △“유라시아에서 평등하고 불가분리적인 안전구조 건설” 따위를 제안했다. ‘미국 달러 체계’ 밖의 ‘무역·결제체계’와 ‘유라시아 안전구조’ 건설은 미국에 맞서는 지구적 행위자를 자처하는 푸틴 대통령의 핵심 의제다. 북한은 유엔과 미국 등의 제재로 ‘달러 중심 금융체계’에 접근하지 못하는데다, 대외무역의 95%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북·러가 이미 2014년 경제공동위원회에서 루블화를 주요 통화로 하기로 합의했으나 그간 유명무실했던 까닭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러시아가 기축통화로서 (루블화의) 영향력을 더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푸틴 대통령은 현재의 북-러 관계가 “다방면적 동반자 관계”이며, 앞으로 “창조적이며 다방면적인 동반자 관계”를 지향하리라고 밝혔다. 앞서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보좌관은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맺을 가능성이 있다고 17일(현지시각) 밝혔다.
이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재설정할 양자 관계가 ‘유사시 군사적 자동개입’ 의무를 명시한 동맹 관계는 아닐 것임을 시사한다. 러시아는 한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중국과 “신시대 전면적·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크렘린이 밝힌 새로운 북-러 관계는 한-러 관계와 동일 범주(수준)로 보는 게 맞을 거 같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7월19~20일 처음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로공동선언’(평양선언)을, 이듬해 8월 김정일 위원장 방러 때 ‘모스크바선언’을 함께 발표해 1990년 9월30일 한-소 수교 이후 틀어진 북-러 관계를 재정비했다. 이 둘을 2000년 2월19일 체결한 ‘친선·선린·협조 조약’과 한데 묶어 미래 북-러 관계의 “기본 입장과 방향들을 규정”한 문서라고 규정했다. 러시아가 남북한 모두와 외교관계를 맺어온 21세기 역사의 맥락에서 북-러 관계의 ‘단절적 비약’이 아닌 ‘연속적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은 북한과 △“인도주의적인 협조 발전” △“고등교육기관 사이 과학적인 활동 활성화” △“호상(상호) 관광여행, 문화 및 교육, 청년 교류 발전”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크렘린궁은 “여러 문서에 서명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에너지 부문 부총리, 국방·외교·보건·천연자원부 장관, 연방우주공사·철도공사 사장이 방북단에 포함된 사실에서 이번 회담의 주요 협력 의제를 엿볼 수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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