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수입만능론자’ 이창용 총재
한국 최고의 이코노미스트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언제부턴가 ‘수입만능론자’가 된 듯하다. 체감물가를 낮추는 방안으로 농축산물 등 생필품의 수입을 또다시 들고나온 것이다. 이 총재는 18일 한은 별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식료품, 의류 등 필수소비재 가격은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어 생활비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이 총재의 해법은 수입이다. 그는 ‘금사과’와 ‘대파 파동’이 일었던 지난 4월에도 “통화·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농산물 수입’을 거론했다. 이 총재는 물자뿐 아니라 사람도 수입할 것을 주장한다. 지난 3월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돌봄 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에 대처하기 위해 이 일을 이주노동자에게 맡기고 임금을 낮추자고 제안했다.
저렴한 해외 상품과 노동력이 들어오면 당장엔 이득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게 마련이다. 해당 분야 산업이 쇠퇴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전쟁이나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창궐 등으로 무역이 중단되거나 수입가격이 급등하면 경제가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물가를 조금이라도 더 낮춰 민생을 챙기려는 이 총재의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농축산물 수입이나 해외 인력 유치는 ‘비교우위 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사과를 수입하면 당장 가격은 내려가겠지만 과수 농가는 어떻게 되겠는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돌봄을 맡기면 같은 일을 하는 내국인 노동자의 처우는 나빠지고, 돌봄이 지금보다 열악한 노동이 될 게 뻔하다.
한은이 요즘 파격적인 보고서를 많이 내고 있다. 이 총재는 직원들을 통해 자신의 정책 아이디어를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에 비공식적으로 전달하고 반응도 청취한다고 한다. 그러나 외부를 향한 한은의 주장과 개입이 많을수록 한은도 바깥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은의 독립성이 훼손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한은의 기본 업무는 기준금리 정책 등을 통한 물가안정이고, 이 과정에서 금융안정을 챙기는 것이다. 이 총재는 사과와 대파값까지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기 바란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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