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때부터 보석 다듬어 … 金 펜던트 만든 손으로 金 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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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국제기능올림픽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수긍하면서 자만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귀금속공예를 이어가며 한국을 빛내는 주얼리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김건영 선수(귀금속공예)의 목표는 리옹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그치지 않았다.
김 선수는 귀금속공예 공방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큰아버지 영향으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보석을 다듬었다.
김 선수가 아버지 뒤를 이어 귀금속공예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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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따라 기능인의 길로
반지 만들어 선물하며 보람
"韓 빛낼 디자이너 되겠다"
"리옹 국제기능올림픽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수긍하면서 자만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귀금속공예를 이어가며 한국을 빛내는 주얼리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김건영 선수(귀금속공예)의 목표는 리옹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그치지 않았다. 황금처럼 반짝이는 눈빛을 보이며 귀금속공예 기능인으로서 이정표를 하나씩 제시했다.
김 선수는 귀금속공예 공방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큰아버지 영향으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보석을 다듬었다. 그는 "아버지께선 기능경기대회 선수 출신까지는 아니지만 일찍부터 귀금속공예를 해오셨다"며 "아버지 공방에서 보석을 구경하면서 자연스럽게 귀금속공예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 선수가 아버지 뒤를 이어 귀금속공예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그는 "중학생 때 귀금속공예를 진로로 잡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인천에 있는 한국주얼리고등학교를 추천해주셨다"고 말했다. 광주 출신인 김 선수는 혼자서 인천으로 올라와 귀금속공예 기능인의 길을 걷게 됐다.
김 선수는 처음으로 귀금속공예를 해냈을 때를 떠올리며 눈빛을 반짝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자그마한 반지를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김 선수는 "반지를 만들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면서 "그때부터 귀금속공예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다.
김 선수는 2년간 실력을 갈고닦으며 기능경기대회에 나섰다. 1년이 지나서는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달까지 거머쥐었다. 이후에는 평가전을 거쳐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리게 됐다. 국내 대회와 달리 국제기능올림픽에서는 은이 아닌 금을 사용해야만 했던 것이다. 김 선수는 "처음 금으로 훈련했을 때는 은과 성질이 달라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18K 금은 금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어려운 편이라서 훈련이 쉽지 않았다. 김 선수는 "처음에는 불로 땜할 때 실수를 많이 했다"며 웃어 보였다. 이에 김 선수는 1개월간 기본기를 다시 다지면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렸다고 한다.
현재는 와이스미스에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와이스미스는 김 선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한 곳이다. 와이스미스 대표를 맡고 있는 박영철 명장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수상한 바 있다. 김 선수는 "회사에서 훈련할 장소뿐 아니라 금과 공구를 지원해주셨다"며 "박 명장께서도 매일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 선수는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10시까지 귀금속공예를 훈련하고 있다. 매일 고된 훈련을 진행하다 보니 슬럼프가 온 적도 있다. 그는 "지난해 초 작업도 잘되지 않았고 결과물 품질이 이전보다 많이 떨어졌다"면서 "박 명장께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고 함께 밥도 먹으며 독려해주셔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든 직종을 통틀어서 최고 점수를 받겠다는 게 김 선수의 리옹 국제기능올림픽 목표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유럽권 국가를 경계 대상으로 꼽았다. 그는 "항상 순위권에 들었던 중국을 경계하고 있다"며 "평소에 하던 대로 꾸준히 열심히 하면 노력했던 만큼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국제기능올림픽을 마치고 나서도 귀금속공예 기능인으로서 삶을 이어나가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목표는 '김건영' 이름 석 자를 내건 공방을 만드는 것이다.
[성승훈 기자 / 사진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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