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푸틴의 북한행, 퇴행과 불의(不義)의 길

구자룡 기자 2024. 6. 18. 16: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왜 승인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미군을 아시아에 붙잡아두어 유럽에서 팽창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김일성이 3일만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큰 소리치고 끈질기게 졸라댔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러시아 학자들이 선호한다.

리처드 손튼 교수 등 미 학자들 일부는 ‘스탈린 음모설’을 제기한다. 소련의 도움없이 혁명에 성공하고 중국 대륙을 차지한 마오쩌둥이 ‘아시아의 티토’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러 서로 적이 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이 대만 방어에 ‘철통’같은 약속을 하지만 6·25 전쟁 전 미국은 마오의 중국과 손을 잡기 위해 대만을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애치슨 선언’이 나온 연설의 핵심은 사실은 마오에게 대만을 포기할 테니 소련과 손잡지 말라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마오의 중국은 적이 되었고 수교하는데 전쟁 후 30년 가량이 걸렸다. 그 동안 중국은 죽의 장막 뒤에서 서방과 단절됐다. 강대국 관계는 어찌됐든 가장 큰 피해는 한민족과 분단된 한반도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푸틴 방북의 가장 큰 중점이 군사적인 협력이라는 점 때문에 다시 환기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북 결과 양측이 주고 받은 것이 얼마나 공개될지 두고 봐야 하지만 러시아는 불법 침공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할 포탄과 미사일을 얻고 북한은 정찰위성 기술 등 북한의 핵과 미사일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푸틴의 이번 방북은 2000년 푸틴이 김정일과 만나거나 푸틴과 김정은이 지난 두 차례 만남과는 성격이 다르다.

훨씬 한반도 안보에 악영향을 미치는 반역사적이고, 부정의한 만남이자 6·25 전쟁 이후 아직까지 분단된 채 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6·25 전쟁 당시 스탈린의 음습한 음모까지 떠올리게 한다.

그의 북한행은 모스크바로 김일성을 불러 남침을 승인했던 스탈린처럼 남북한에 전쟁 위험을 높이는 것을 도외시하는 것이자, 한소 수교 34년간 쌓아올린 우의와 유대를 걷어차는 퇴행의 길이다.

부정의란 러시아는 자국이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핵 비확산을 위해 10차례나 승인한 대북 제재 결의를 스스로 무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미 3월 대북 제재 감시를 위한 전문가 패널의 권한을 연장하는 유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전주곡을 울렸다.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되긴 했지만 한러간에는 10년전 무비자 입국이 시행됐다. 코로나 이전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 지역 러시아인에게 인천 공항은 세계로 가는 중간 관문이었다.

극동 개발을 위해 하나의 정부 부처인 극동북극개발부까지 둔 푸틴에게 한국은 최고의 협력 파트너였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역사적 구원(舊怨)과 과거 영토 갈등 특히 인구 1억이 넘는 동북 3성이 있는 중국이나 영토 갈등이 남아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6·25 원죄’만 없다면 별다른 갈등 요소가 없다.

첨단기술 분야 협력은 물론 한반도 종단 철도 및 송유관 가스관 사업을 놓고 두 나라가 얼마나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대고 고심을 했나.

그에 비하면 러시아가 북한과 할 수 있는 경제협력은 시쳇말로 ‘새발의 피’다. 하산에서 광궤와 표준궤를 바꿔가며 화물차가 접근해야 하는 나선 부두 이용이나 벌목공 등 북한 근로자의 노동력 제공(이것도 유엔 결의안 위반이지만) 외 뭐가 있나? 혹 북한의 해커 부대라면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러시아는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북한 교역의 90% 이상이 중국일 정도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바닥에 떨어졌다. 줄 것도 받을 것도 별로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 군사협력을 통해 중국에 밀린 대북 입지를 만회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북-러 모두 스스로를 가두고 뒤로 가게 하는 길이다.

정보기관 출신으로 무명의 푸틴은 2000년 집권 후 구소련 해체 이후 경제적 심리적으로 침체에 빠진 러시아의 자존심을 세우고 나아가 제국의 꿈을 이룰 ‘스트롱 맨’으로 각광을 받았다.

지금은 ‘전범’으로 전락했고 그의 행보가 박수를 받기 보다 의혹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북한행에서는 더욱 더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kjdragon@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