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에이트 쇼’와 상속세 [유레카]

이재성 기자 2024. 6. 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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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더 에이트 쇼'의 한재림 감독은 웹툰 '머니게임'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준비하던 중 비슷한 설정의 '오징어 게임'이 먼저 나와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아예 포기할까 생각했다고 한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관이 각자도생이라면 '파이게임'의 설정을 가져온 '더 에이트 쇼'의 게임 규칙은 상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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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더 에이트 쇼’의 한재림 감독은 웹툰 ‘머니게임’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준비하던 중 비슷한 설정의 ‘오징어 게임’이 먼저 나와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아예 포기할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작가(배진수)의 후속작인 웹툰 ‘파이게임’을 보고 나서 마음을 바꿨다. ‘파이게임’은 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게임 자체가 끝나는 구조여서 누군가 죽어야 상금이 늘어나는 ‘오징어 게임’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관이 각자도생이라면 ‘파이게임’의 설정을 가져온 ‘더 에이트 쇼’의 게임 규칙은 상생인 셈이다.

‘더 에이트 쇼’에 경쟁과 갈등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오징어 게임’보다 더 적나라하게 현실의 모순을 반영한다. 무작위로 뽑은 숫자 카드가 거주하는 층수와 시간당 지급되는 액수의 크기를 결정하는 건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수저 색깔이 달라지는 수저론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계급은 유전자처럼 세포에 새겨진 대물림의 결과다. 무위도식하는 상층민, 하층민의 단결과 분열, 자본가 계급의 파업, 혁명과 반혁명이 숨 가쁘게 이어지면서 등장인물들은 비로소 쇼를 기획한 자들의 목적을 깨달아간다. 계급투쟁을 다룬 영화의 계보로 보면, ‘기생충’만큼 유머러스하지는 않지만 ‘슬픔의 삼각형’보다 다채롭고 ‘설국열차’보다 역동적이고 켄 로치 작품들보다 더 시네마틱하다. 거장들이 계급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세계 주요 영화제들이 그 영화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본질을 건드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임기 5년 동안 100조원에 가까운 세금을 깎아주는 부자 감세를 이미 단행한 윤석열 정부가 이번엔 상속세 인하 등 추가 감세에 시동을 걸었다. 상속세는 계급 결정의 무작위성과 세습의 부작용을 줄여 돈이 주인 노릇을 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자정 기능을 갖고 있다. 지금도 한국은 각자도생 사회로서 손색없는 조건을 갖춘 사회인데, 최소한의 안전판마저 흔들고 있는 것이다. 구한말의 동학혁명이나 프랑스대혁명의 궁극적인 원인이 불공정한 세금 제도에 있었음을 모른단 말인가.

모두가 평등하게 아무런 갈등 없이 사는 천국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징어 게임’ 같은 각자도생의 지옥보다는 ‘더 에이트 쇼’ 같은 상생의 지옥이 그나마 낫다.

이재성 논설위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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