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24' 英·佛·獨, 우승 걸림돌은 '내부'에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쟁 상대는 그라운드 위 상대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문화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는 인종차별뿐 아니라 자국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극우 정치와도 싸워야 한다.
유로 2024가 열리는 독일에서는 대회 개막 전부터 인종차별 문제가 논란이 됐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지난 5월 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21%의 독일인이 독일 축구 대표팀 선수 구성에서 (현재보다) 백인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는 응답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독일 대표팀의 율리안 나겔스만(37) 감독은 "이는 인종차별적 설문 조사 질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 독일 국가 대표팀의 성장은 다문화 세대가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독일 혈통 선수들을 주로 뽑는 순혈주의를 고집해왔던 독일 축구는 이후 메수트 외질(36), 제롬 보아텡(36), 사미 케디라(37) 등 다문화 세대 선수들을 대거 대표팀에 중용해 2014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유로 2024에 출전하고 있는 독일 대표팀의 주축 선수도 요나탄 타(28·레버쿠젠), 안토니오 뤼디거(31·레알 마드리드), 자말 무시알라(21·바이에른 뮌헨), 리로이 자네(28·바이에른 뮌헨) 등 다문화 세대가 적지 않다.
프랑스에서도 이민자 유입을 반대하는 극우 정당의 득세 속에서 '다문화 축구 선수'들의 대활약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오는 30일 1차투표와 내달 7일 예정된 결선투표를 앞두고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의 위세가 더 커졌다.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한 여론 조사에서는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이 지지율 35%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 국민연합의 전신인 국민전선(FN)은 지난 1998년 프랑스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끈 다문화 세대 선수들에게 "프랑스 국가도 부르지 못하는 이민자들"이라고 비난했었다. 최근에도 국민연합은 다문화 세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프랑스 축구 대표팀보다 상대적으로 프랑스 혈통의 백인 선수들이 많은 럭비 대표팀이 프랑스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유로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잉글랜드도 독일, 프랑스와 비슷한 상황이다. 오는 7월 4일로 예정된 영국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극우 성향의 영국 개혁당은 지지도 19%를 기록했다. 이는 제1야당인 노동당(37%)의 지지율에는 못 미치지만 집권 여당인 보수당(18%)보다 높은 지지율이라 영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영국에서도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높아지는 시점에 다문화 선수들이 다수 활약하고 있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이 인종차별 논란에 영국 공영방송 'BBC'도 자유롭지 못했다. 'BBC'도 홈페이지 전면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엎드려 있는 사카의 모습을 게재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영국에서는 이번 유로 2024에서도 지난 2021년 열린 유로 대회에서 나타난 영국 언론과 팬들의 다문화 선수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태도가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 유로 대회 결승전에서 잉글랜드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탈리아에 패했다. 잉글랜드 팬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한 다문화 선수들인 사카, 마커스 래시퍼드(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제이든 산초(24·도르트문트)에 대해 인종차별적 비하를 해 큰 문제를 야기했다.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의 축구 대표팀은 모두 다양한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가진 선수들이 모여 목표를 위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롤 모델이다. 그럼에도 3개국에서 극우정당이 급부상하면서 다문화 선수들이 과거보다 빈번하게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이번 유로 2024를 통해 이 같은 내부의 적과 상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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