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빛으로 아롱진 몸들의 고백

노형석 기자 2024. 6. 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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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덩어리들이 자신의 역사를 말한다.

푸르뎅뎅하거나 거무스름한 색조의 몸덩이로, 인간의 망각과 고뇌는 표정 없는 얼굴들의 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면에 묘사된 몸덩이의 색감이 강렬하고, 전시장 위쪽 채광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어울려 더욱 깊은 시각적 미감을 발산하는 것도 돋보인다.

작가가 자신의 삶과 작업 속에서 뼈저리게 실감한 몸의 물질성과 삶의 숙명을 독창적인 발색의 색면과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드로잉기법으로 무심하게 드러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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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작가 박치호 전
작가가 2024년 작업한 신작 ‘빅맨’. 리넨 뒤에 아크릴 안료로 등진 노년의 몸을 그렸다. 노형석 기자

몸덩어리들이 자신의 역사를 말한다. 닳고 닳은 형상과 깊고 어두운 색깔로 그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지금 서울 관훈동 토포하우스 2층에 차려진 박치호 작가 개인전 ‘무심한 몸들’의 전시장은 남도 끝 땅 여수 어르신들의 몸 그림들로 채워졌다. 푸르딩딩하거나 검회색이거나 보랏빛을 머금은 몸들의 큰 그림들이 전시장 사면에 돌아가듯 내걸렸는데, 머리와 손이 보이지 않는다. 조각의 토르소 마냥 몸덩이와 다리만 보인다. 그들은 한결같이 구부정한 채 등지고, 고개 숙이고, 주저앉은 모양새로 서 있을 뿐이다.

여수의 여자만 작업실과 시내 외의 바닷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수십년째 작업 중인 박 작가는 자기가 본 중년 혹은 노년 주민들의 기억을 토대로 우리 몸에 기록된 기억과 상처의 흔적들을 끄집어낸다. 푸르뎅뎅하거나 거무스름한 색조의 몸덩이로, 인간의 망각과 고뇌는 표정 없는 얼굴들의 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면에 묘사된 몸덩이의 색감이 강렬하고, 전시장 위쪽 채광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어울려 더욱 깊은 시각적 미감을 발산하는 것도 돋보인다.

박치호 작가의 개인전 ‘무심한 몸들’이 열리고 있는 서울 관훈동 토포하우스 2층 전시장 일부. 얼굴 표정이 지워진 ‘망각’ 연작과 푸르딩딩한 몸의 일부를 보여주는 토르소풍의 대작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표정 없이 부유하는 내면의 인상들을 담은 머리상들을 그린 ‘망각’ 드로잉 연작들이 한쪽 벽에 붙어있고 이를 필두로 상처 투성이 알몸의 상체를 다기한 포즈와 색면의 구성으로 드러낸 내부의 대작들이 이어진다. 말미에는 암전된 검은 화면 속에 중력에 짓눌려 축 늘어진 노년의 몸과 표정없는 얼굴들이 번갈아가며 뒤섞인 ‘망각’과 ‘무심한 몸’ 연작들이 관객의 시선을 심연의 화폭 속으로 몰아간다.

작가가 자신의 삶과 작업 속에서 뼈저리게 실감한 몸의 물질성과 삶의 숙명을 독창적인 발색의 색면과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드로잉기법으로 무심하게 드러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2년 전 화단의 각광을 받았던 전남도립미술관의 개인전 ‘빅맨’에 비해 전시규모는 작지만 출품작 구성의 밀도감이 높아졌고 색조나 형상이 훨씬 진중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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