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한로로 “불안한 청춘에게 제 음악이 위로와 용기 줬으면”
소녀는 엄마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엄마는 거실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 다시’, 원준희의 ‘사랑은 유리 같은 것’ 같은 8090 가요들을 소녀도 좋아하게 됐다. 글쓰기도 좋아했다. 대학교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한 건 그래서다. 스무살, 경남 창원 집을 떠나 상경하면서 그는 두가지 꿈을 품었다. 음악을 하거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거나.
친구와 캠퍼스를 걸을 때였다. 친구가 음악을 하나 들려줬는데, 너무 좋았다. 검정치마의 ‘나랑 아니면’. 인디 음악이라고 했다. ‘이런 인디 음악인이 되게 많구나. 굳이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할 수 있구나.’ 대학교 2학년 때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다. 창원 집으로 내려가 비대면 수업만 하다 보니 답답하고 인생이 정체된 느낌마저 들었다. ‘이 틈에 음악을 제대로 해볼까?’
에스엔에스(SNS)에서 알게 된 음악회사 어센틱에 무작정 메시지를 보냈다. “데모곡을 보내도 될까요?” “보내보세요.” 그제야 노트북에 무료 작곡 프로그램을 깔고 독학하기 시작했다. 몇달 뒤 데모곡을 보냈더니 “가사가 참 좋다”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가능성만 있는 상태. 결국 회사 최초로 ‘연습생’ 신분으로 계약했다.
미디(컴퓨터 음악 프로그램), 보컬 등 훈련도 훈련이지만, 아티스트로서 브랜딩을 하는 게 중요했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청춘들의 맨 앞에서 함께 나아가도록 이끄는 사람, 연대감과 사랑을 주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면 “힘 있고 단단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모던록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음악가 ‘한로로’가 움트는 순간이었다.
2022년 3월, 봄의 길목에서 데뷔곡 ‘입춘’을 발표했다. “얼어붙은 마음에/ 누가 입 맞춰줄까요”라고 물으며 시작하는 노래는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라며 손을 내민다. “불안정한 청춘을 새싹에 비유해봤어요. 겨울에 나오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다가 봄을 맞아 용기 내어 세상에 고개를 내밀겠다는 첫 다짐을 노래했죠.”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씨제이아지트 광흥창에서 만난 한로로가 말했다.
데뷔곡부터 입소문을 탔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 후보에 올랐고, 방탄소년단(BTS) 알엠(RM)이 에스엔에스에 추천 글을 올렸다. 씨제이문화재단 음악인 지원 프로그램 ‘튠업’에도 선정됐다. 2023년 8월 첫 미니앨범(EP) ‘이상비행’을 발표했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도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말고 찾아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한로로는 지난달 28일 두번째 미니앨범 ‘집’을 발표했다. 전작 ‘이상비행’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분위기는 정반대다.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텅 빈 방 안에는/ 이미 죽어버린 꿈/ 활활 타오르는 나의 집/ 바삐 죽어가는 나의 집”이 기다린다. 타이틀곡 제목은 ‘집’ 글자를 해체해 표기한 ‘ㅈㅣㅂ’이다. 이어지는 곡 ‘먹이사슬’에선 “먹힌 어제는 다시 태어나 오늘을 먹고/ 지속된 게임 끝이 없는 전쟁 속에/ 감긴 시체는 자랑스럽게 쌓여만 가네 저 내일로”라고 부르짖는다. 음울한 노랫말과 대조적으로 사운드는 강렬하고 속도감 넘친다.
“사운드 면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상비행’이 따뜻하고 낭만적인 메시지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차가운 현실을 다뤄보고 싶었고요. 제가 느끼는 현실은 날카롭고 폭력적이에요. 이를 직시하게 한 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앨범 막판에 “넌 나를 사랑해 줘야 해”라고 노래하는 ‘생존법’과 “사라져가는 자들 여기로 모여라/…/ 뜨거운 우리는 따뜻한 집을 짓네”라고 하는 ‘보수공사’를 넣은 이유다. 그는 “집이 타버리고 없어진 자리에 사랑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뚝딱뚝딱 집을 만드는 그림을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멸망 이후를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다.
이번 앨범을 거치며 한로로는 만개의 단계에 접어든 듯하다. 22~23일 서울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씨제이문화재단 제작 지원으로 펼치는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은 1천석 모두 매진됐다. 한로로는 “제 음악에서 위로와 살아갈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길 바란다”며 웃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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