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 입회 60년 이해인 수녀 “모든 사람은 보물”
기쁨과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 시인이자 종파와 세대를 초월해 모든 사람을 ‘꽃마음’으로 환대하는 이해인 수녀가 수도원 입회 60주년을 맞았다. 1968년 첫 서원을, 1976년 종신서원을 한 그는 최근 인생의 노을빛 여정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쓴 단문, 칼럼, 그리고 신작 시 열 편을 담은 단상집 ‘소중한 보물들’(김영사)을 펴냈다. 18일 그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생애 세 번째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난 60년의 수도 생활에 대한 소회와 함께 반평생 자신의 시를 사랑해준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60년의 수도 생활을 돌아보면 담백한 물빛의 평화로움이 떠오릅니다. 제가 사는 부산의 광안리엔 소나무가 많아요. 그 소나무를 보며 늘 푸른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요. 바람이 불어도 내 중심이 있어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 수녀 생활이 제게 준 선물이지요.”
1945년생인 그는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생활했다.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낸 이후 시집, 에세이, 번역서 등 총 50여 권을 출간한 그는 수녀원 한쪽에 ‘해인글방’을 열어 전국에서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와 선물들을 전시해놓고 매일 그곳에서 글을 쓴다.
평생 일상에서 시어를 길어 올렸던 그에게 ‘소중한 보물’은 무엇일까. 함민복 시인의 책 제목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처럼 “사람들이 다 일가친척이다”를 평생 화두로 삼고 있는 그는 “모든 사람을 보물로, 하루하루를 보물이 묻혀있는 바다로 생각하고 ‘보물을 캐는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런 그이기에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는 “산에서는 솔방울, 바다에서는 조개껍질을 특히 아끼고 좋아한다”며 “좋은 글귀나 성경 구절을 모아 조가비에 적어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 그것이 내겐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했다. 수녀원에는 126명의 수녀가 사는데, 매일 명단을 보고 각자에게 필요한 글귀를 선물하는 것을 즐긴다. ‘소중한 보물들’에는 이런 태도로 살아온 그가 맺은 수많은 인연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평상심’이라는 붓글씨 액자를 써준 신영복 작가 이야기부터 청소 일을 한다는 독자가 보내온 감동의 편지, 그의 어머니가 보내준 편지 등 따뜻한 이야기가 보물처럼 담겨있다.
지난 2008년 그는 대장암 진단을 받고 대장 30㎝를 잘라내는 등 많은 아픔을 겪었다. 이 수녀는 암 투병 과정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했다. “제가 여리고 감상적인 줄 알았는데 암 투병하면서 담대하고 명랑하고 씩씩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암 환자들 사이에서는 그의 ‘명랑 투병 4대 지침’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진다. ‘달라는 기도는 그만하고 감사 기도 드리자, 감탄과 감동의 영성을 키우자, 나의 약점과 한계, 무력함을 받아들이자, 모든 것은 지나가고, 끝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가 그것이다.
“대장암 투병을 했고, 무릎은 인공관절이고 치아도 틀니입니다. 그렇지만 아픈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숨쉬고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구나, 신발을 신는 것 자체가 희망이구나 생각하며 삽니다.”
그는 지금 우리 시대가 가장 소중하게 다뤄야 할 가치로 “가족 이기주의가 아닌 인류 보편적인 사랑을 넓혀가는 정신”을 꼽으며 이를 되살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기심의 감옥에서 벗어나 이타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20년만 젊으면 주부들과 함께 좋은 시 읽기 모임을 하고 싶어요. 수녀가 아니었다면 머리에 보라색으로 물도 들여보고 싶고, 짧은 스커트도 입어보고 싶어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동화를 써보고 싶습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구름 천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수많은 별칭 가운데 ‘흰구름 천사’가 가장 좋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시가 동서남북 날아다니며 그런 천사 구실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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