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참사’ 재발 위험 큰 지하차도 159곳 더 있었다

김경필 기자 2024. 6. 1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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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지하 공간 침수 대비 실태’ 감사 결과
지난해 7월 20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충북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합동으로 침수 사고 현장을 감식하고 있는 모습. /신현종 기자

지난해 7월 14명을 숨지게 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와 같은 사고가 되풀이될 수 있는 지하차도가 전국에 159곳 넘게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들은 이런 지하차도들 인근에서 제방 붕괴가 일어나 지하차도로 물이 쏟아져 들어가는 경우에 지하차도에 자동차가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대책을 세워 두지 않고 있었다.

감사원이 18일 공개한 ‘하천 범람에 따른 지하 공간 침수 대비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지하차도 1086곳 가운데 183곳(16.8%)은 홍수 시 침수될 수 있는 위험 지역에 있다. 감사원이 점검해 보니, 이 가운데 23곳(12.6%)만이 외부에서 물이 들어오는 경우에 차량 진입을 통제하기 위한 기준을 갖고 있었고, 나머지 159곳(87.4%)은 그런 기준이 없었다.

지난해 7월 15일 오전 8시 40분쯤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인근 미호강에서 넘친 물에 빠른 속도로 잠기고 있다. 지하차도는 2~3분 만에 물로 가득 찼다. /궁평2지하차도 감시 카메라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지난해 7월 15일 폭우로 미호강의 임시 제방이 허물어지면서 미호강 물이 약 550m 떨어진 지하차도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 벌어진 사고다. 충북도와 경찰은 미호강물이 넘칠 위험이 있다는 제보와 신고를 사고 발생 전에 받고도 지하차도 진입을 통제하지 않았고, 그 결과 지하차도 안에 있던 차량 17대가 물에 잠겨 14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지하차도가 수 분 만에 물에 잠기면서 탑승자 대다수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익사했다.

감사원은 이와 같은 유형의 사고가 또 벌어질 수 있는 지하차도가 최소 159곳 더 있었는데도 각 지하차도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기관들이 이를 내버려두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하차도 64곳은 5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는 홍수에도 침수될 위험이 있었고, 이 가운데 36곳은 사람 키를 넘는 2m 이상의 물에 잠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7곳은 물에 5m 이상 잠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하천 인근 지하차도는 200년에 한 번꼴로 드물게 발생하는 홍수에도 대비돼 있어야 한다.

이런 지하차도들에 대해, 각 기관은 시간당 배수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비가 내려 지하차도 안에서부터 물이 들어차는 경우에 대해서만 대비하고 있었다. 궁평2지하차도처럼 외부에서 물이 쏟아져 들어가 급격하게 물이 차오르는 경우에 대해서는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궁평2지하차도에서 침수 사고가 난 지난해 7월 15일, 다른 지하차도 7곳도 침수될 위험에 처해 있었지만 관리 기관들은 ‘조치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자동차 진입 통제 등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 계룡·성남·대전역·대동지하차도와 세종 대평지하차도는 각각 약 200~500m 떨어진 하천에 홍수 경보가 발령됐는데도, 관리 책임이 있는 대전시·세종시가 ‘이런 경우에 자동차 진입을 통제한다는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했다. 한국철도공사가 관리하는 충북 청주 오송지하차도도 미호강에서 약 1.7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방치됐다. 이런 지하차도들에서도 인근 제방이 붕괴하거나 강물이 범람했다면 궁평2지하차도와 같은 참사가 벌어질 수 있었다.

애초에 침수 위험 지역에 있는 지하차도 182곳 중 정부와 지자체가 ‘인명 피해 우려 지하차도’로 지정해 관리 대상으로 삼은 곳은 37곳(20.3%)밖에 안 됐다. 또 지자체들이 지하차도 40곳에 대해 공무원이 현장에 출동하지 않고서도 자동차 진입을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진입 차단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으나, 17곳은 지원을 받지 못해 지금도 진입 차단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하차도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국토교통부도 지하차도 안전 기준에 침수에 대비한 사항들을 정해놓지 않아, 지하차도를 건설하는 업체들이 침수 대비 시설을 갖춰놓지 않아도 되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차도 내에 비상 탈출구와 비상 사다리 등을 갖춰놓은 경우엔 지하차도 내에 고립된 사람들이 이를 통해 탈출할 수 있는데, 침수 위험이 있는 지하차도 182곳 중 163곳(89.6%)에는 이런 시설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28일 방문규 당시 국무조정실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에 대한 감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런 무방비 상태는 지난해 7월 궁평2지하차도 사고가 일어난 지 7개월이 지난 올해 2월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감사원은 “159개 지하차도의 경우 외수(外水) 침수 위험을 고려한 통제 기준 마련이 시급한데도, 재난 관리 주관 기관인 행안부가 2024년 2월 현재까지 이를 내버려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감사원은 이 감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3월, 행안부·환경부·국토부 등 관계 기관들에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관련 조치를 요구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현 상황을 방치할 경우 올해 홍수기에 지난해와 같은 유형의 사고가 재발할 수 있는 것으로 예상돼, 관계 기관들에 긴급 조치를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행안부·환경부·국토부는 ‘안전 기준 정비 등 필요한 조치를 완료했다’고 감사원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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