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형당뇨 세 살 아들 위해…엄마는 국가의 무관심과 방해에 맞섰다
건강보험 적용 이끈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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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3일 오후 4시, 경기도 용인시 김미영(47)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의 집 거실에 있는 블루투스 기기는 5분마다 인공지능 음성메시지로 숫자를 알려왔다. 김 대표 아들의 혈당 수치(mg/dL)다. 시선이 다른 곳에 있을 때도 김 대표는 이 숫자들에 귀를 기울였다. “소명아, 주스라도 먹어.” 김 대표는 아들의 혈당 수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느끼자 곧바로 주스를 챙겼다. 김 대표의 큰아들 정소명(15)군은 3살 때부터 몸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1형당뇨(췌도부전)를 겪고 있다. 김 대표는 혈당을 높일 수 있는 주스,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등으로 냉장고를 채워뒀다. 수납장은 실시간으로 혈당을 재는 연속혈당측정기, 인슐린을 주입하는 인슐린펌프(주사 대신 세밀하게 인슐린을 주입할 수 있는 의료기기)와 병, 주사 등 의료도구들로 빽빽하다. 그의 스마트폰 배경은 아들의 혈당이고, 스마트워치에도 혈당 알림이 온다. 거실의 음성메시지, 휴대전화·스마트워치 모두 김 대표가 직접 세팅했다.
생명줄 쥔 혈당 수치가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김 대표가 혈당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 1형당뇨인의 삶은 오로지 혈당에 달린 탓이다. 1형당뇨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를 공격해 더는 인슐린을 분비하지 못하게 하는 질환이다. 발병 원인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진단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당뇨병인 2형당뇨와 차이가 있다. 비만·식습관이 원인도 아니고, 선천적이라거나 유전적 영향이 큰 질환도 아니다. 1형당뇨 환자는 국내 당뇨 질환자의 1∼2%(5만7천여 명) 정도로 소수다. 2형당뇨가 주로 서서히 인슐린 분비 기능이 저하되는 것과 달리, 1형당뇨는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작동을 멈추면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혈당 수치는 생존과 직결된다. 저혈당이 오면 쇼크를 겪을 수 있고, 고혈당이 오면 복통과 구토, 혼수상태 등을 유발하는 합병증(케톤산증)이 발생한다. 장기적으로 저혈당·고혈당을 관리하지 않으면 심각한 합병증을 초래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김 대표는 국내 1형당뇨인이 혈당관리를 수월하게 하도록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그는 환자들이 실시간 혈당을 측정하는 연속혈당측정기를 국내에 들여왔다. 또 이 기기가 정부의 건강보험 지원을 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회원 1만2천여 명의 환우회 커뮤니티를 이끌며 정보통신기술로 환자가 당뇨 관리기기를 시·청각으로 접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한 명의 1형당뇨인 어머니가 어떻게 세상을 바꿔온 걸까. 2024년 5월14일과 27일, 6월4일까지 김 대표를 세 차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김 대표는 “문제 해결형 인간”으로 지내다보니 나타난 성과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들 3살 때 진단받고 절망… 환우 커뮤니티가 숨구멍
2012년, 3살 아들이 처음 1형당뇨를 진단받았을 때 김 대표는 평정심을 찾기 어려웠다. 입이 짧은 아이였는데 갑자기 음식을 많이 먹었다. 자주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다. 동네 병원에서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동네 병원의 의뢰서를 들고 큰 병원을 찾아갔어요. 아이가 아빠와 쌀과자를 먹으면서 갔는데 의료진이 음식을 빼앗고 입원해야 한다고 했어요.”
생소한 질환인데다 완치가 없다고 하니 절망감이 몰려왔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저렇게 행복한데 나만 이렇게 불행하구나. 사람들이 (제)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몇 개월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밤에는 아이가 자는 동안 저혈당이 오지 않을까 싶어 2시간에 한 번씩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 혈당을 쟀다.
이때 위안이 된 건 커뮤니티 활동이었다. 인터넷카페에서 1형당뇨를 겪는 당사자와 가족들을 만나 소통했다. 김 대표처럼 그들도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국외 논문을 읽고 보도를 정리해서 회원들과 공유했다. 정보가 쌓이고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이었지만 한편에 아쉬움이 있었다. “(환우 커뮤니티 활동이) 위안이 될 수는 있지만,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정부에서) 1형당뇨에 대한 아무런 지원이나 배려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하면 속상하다고 하소연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이집에서 등원 거부 않도록 법 개정 운동
첫걸음은 영유아 보육법 개정 청원이다. 2015년 4월 경기도 화성시의 한 시립어린이집에서 의료적 부담을 이유로 1형당뇨 아이를 받지 않았다. 1형당뇨 아이에게 인슐린 주사와 혈당 체크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1형당뇨 아이들에게도 종종 발생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해결에 나섰다. 관할시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담당 주무관과 면담했다. 1형당뇨 아이의 등원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 발의 운동에 나섰다. 받은 오프라인 서명만 4만3천 건이 넘었다. 국회 토론회를 거쳐 1형당뇨 아이들이 간호사로부터 인슐린 투약보조를 받을 수 있고, 어린이집 입소에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는 법 개정안이 2016년 본회의를 통과했다. “목소리를 내면 바뀔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김 대표가 이끄는 환우회의 전신 ‘전국1형당뇨부모모임’이 만들어진 것도 그때쯤이었다. 이 모임은 2017년 창립(2023년 사단법인이 됨)된 한국1형당뇨병환우회의 모태가 됐다. 그는 “1형당뇨 아이 엄마라고 하면 (정부나 국회 등에서) 문전박대하니까 단체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간 행정업무를 도맡아 하던 김 대표가 자연스레 대표를 맡았다.
국내 미도입 연속혈당측정기 ‘직구’해 맞춤형 세팅
국외 자료와 논문으로 1형당뇨에 관해 공부하던 김 대표는 ‘연속혈당측정기’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간 국내 1형당뇨인 혈당은 하루에 수차례에서 많게는 수십 차례 채혈하는 방식으로 측정됐다. 고통을 감수하고 자주 채혈해도 정확한 혈당을 실시간으로 알지 못해 저혈당·고혈당 위험과 마주했다. 혈당이 음식 섭취뿐 아니라 호르몬 분비, 운동 여부, 피로도, 날씨 등 여러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탓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혈당을 2~3시간에 한 번씩 채혈하며 관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반면 연속혈당측정기는 달랐다. 피하에 센서를 삽입해 몸속 세포 바깥의 체액(간질액)으로 혈당을 잰다. 연속적인 혈당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저혈당, 고혈당에 미리 대처할 수 있다. 당시 미국,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이 기기를 “1형당뇨인 삶을 크게 개선한다”고 평가해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국가 지원체계도 갖춰져 있었다.
2015년 당시만 해도 이 기기는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국외 연속혈당측정기 판매사들에 전자우편을 보내 제품 구매와 국내 출시가 가능한지 물었다. 체코의 한 회사가 구매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줬다. 우여곡절 끝에 구매했지만 단점이 있었다. “당시 그 의료기기는 전용 기기(수신기)에서만 혈당을 수신할 수 있었어요. 의료기기를 가지고 아이가 학교나 유치원에 가면 부모는 혈당을 알 방법이 없었어요.”
관세법·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공학을 전공하고 모토로라와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김 대표는 이 경험을 토대로 국외 오픈소스를 활용해 연속혈당측정기를 생활에 편리하게 세팅했다. 스마트폰에서 혈당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모듈을 장착하고, 앱을 설치했다. 처음에는 김 대표가 직접 납땜했다. 개조할 기기가 늘자 용산전자상가에 주문 제작했다. 함께 활동하는 환우들의 요청으로 다른 환우들 것까지 수백 명분의 세팅 작업을 기기와 모듈 부품값만 받고 진행했다. 당시 김 대표의 도움을 받아 기기를 사용하게 된 김진숙(52)씨는 “퇴근 뒤 저녁 시간에 김 대표 집에 가서 새벽 1시까지 설치 방법과 사용법 교육을 받았다. 저였다면 그렇게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2017년 3월 관세청이 신고되지 않은 물품을 들여와 판매했다는 명목하에 김 대표를 관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한참 소명했는데, 2017년 12월에 또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이번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들여와 불법 개조해 유통시켰다”는 혐의(의료기기법 위반 등)로 김 대표를 검찰에 송치한 것이다. 이렇게 검찰 조사만 수차례, 이 일은 언론에 보도됐다. 김 대표를 대리했던 성춘일 변호사는 “당시에 식약처는 개인이 의료기기를 들여오는 신고 양식을 만들어놓지 않았다. 신고할 수 없게 해놓고 신고 의무를 부여한 입법의 미비”라며 “국가에서 해줘야 하는 것을 개인이 하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게 아니라 처벌하려고 한다는 점에 당시 (환아) 부모님들이 분개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1년 4개월간 송사를 겪던 김 대표에게 2018년 7월에야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검찰이 김 대표에게 이익을 취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김 대표는 소송에 대응하느라 커리어까지 중단해야 했다. 출산과 아이의 1형당뇨 진단에도 휴직하지 않았지만, 수사 단계에선 그럴 수 없었다. “1형당뇨 아이를 키우면서도 직장을 잘 다닐 수 있는 사례를 보여줘야겠다는 오기도 있어서 악착같이 (직장을) 다녔어요. 그런데 검찰 출석도 하고, 국회 토론회도 가야 하는데, 직장에 매여 있을 수는 없었어요.”
‘직구’로 인한 송사 끝에 국내 정식 출시
김 대표가 송사에 휘말린 일이 반전의 계기가 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외 기기 제조사에서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전까지 김 대표는 국외 연속혈당측정기 제조사에 수년간 “국내에도 판매를 고려해달라”고 전자우편을 보내왔지만 답이 없거나 시큰둥했다. 한국은 1형당뇨 환자 수가 적어서 기업으로서는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가 고발된 이야기를 전자우편으로 보내자 ㄷ사에서 긍정적인 회신이 왔다. 김 대표는 이후 100통 넘는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연속혈당측정기가 국내에 출시될 수 있도록 도왔다. 허가 절차를 거쳐 마침내 2018년 11월 연속혈당측정기가 출시됐다.
정부 부처와 국회 등의 반응도 있었다. 2019년부터는 연속혈당측정기를 건강보험 요양비로 비용 일부(70%)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가 생겼다. 2020년에는 인슐린을 주입하는 인슐린펌프도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2015년 김 대표가 국외에서 우여곡절 끝에 기기를 들여온 지 4년 만에 얻은 성과다.
이후 김 대표는 엔지니어로 복귀하기보다 환우회 활동에 매진하기로 했다. “사람들의 삶이 달라진 모습을 보는 게 기쁨이라고 주변에 이야기해요. (그걸 보고) 저는 오히려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일하거든요. 주말에도 일하고 지금도 새벽 2~3시까지 일하고 그래요.”
김 대표의 사연은 <슈가>라는 영화로 제작된다. 2025년 개봉이 목표다. <슈가>의 최신춘 감독은 “저 또한 1형당뇨를 겪고 있는데, 평범한 분이 강해지는 모습을 보고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넘어서야 할 숫자 10.7%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2024년 1월 충남 태안에서 1형당뇨병 소아 환자를 비롯한 일가족 3명이 숨진 일이 발생했다. 발견된 부모의 유서에는 “딸이 병 때문에 힘들어해 마음이 아프다. 경제적 어려움도 크다”고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김 대표와 환우회원들은 목소리를 높여 1형당뇨인에 대한 정책 마련을 요구했다.
1형당뇨 관리에는 한 달에 40만~50만원씩 든다.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에 관한 정부 지원책은 일부 기기만 일정 비율 지원해 사각지대가 넓다. 또 기기 구매 비용을 건강보험에 청구하는 절차도 복잡하다. 경제적 부담만 있는 건 아니다. 환자가 기기를 구매하더라도 전문 교육을 담당할 의료기관이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연속혈당측정기를 지속해서 사용하는 환자(2019~2022년 기준, 대한당뇨병학회 분석)는 전체 환자의 10.7%에 그친다.
이 때문에 의료기기 사용법과 스마트폰 연동법, 기기를 사고 정부지원(요양비)을 받는 방법 등에 대한 문의가 끊임없이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김 대표의 집은 늘 “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를 세팅해달라”며 오는 환자들로 붐빈다. 환우회는 이런 환자들을 개별적으로 돕고, 1형당뇨인과 가족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교육 세미나도 연다.
“정부와 의료계, 환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김 대표는 정부와 의료계가 1형당뇨 지원 확대와 더불어 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정책과 의료기기 제품 생산, 치료 등에 환자들 의견이 반영된다면 아픈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사전에 보면 환자는 의료진에 의해서 의료 서비스를 ‘받는 사람’으로 돼 있어요. 그럼 환자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잖아요. 환자가 되면 ‘아기’가 되는 거예요. 저는 그걸 바꾸고 싶어요. 적극적으로 자기 질환을 관리하고, 환자 중심으로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열쇠를 쥔 사람이라는 거죠.”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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