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정신과 천근아 교수 “아이 산만하다고 무조건 ADHD 약 먹으면 안돼”
#학부모 이모 씨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에게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약을 먹인 뒤 고민이 많아졌다. 담임교사로부터 ‘아이가 수업 시간에 어느 한 가지에 꽂혀서 전혀 집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서 ADHD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오히려 예민함과 공격성이 늘었다. 이 씨는 “ADHD는 약을 먹으면 효과가 좋다고 들었는데 호전되기는커녕 다른 증상이 생겼다”고 말했다.
아동기 ADHD 발병률은 8~10% 정도다. 초등학교 한 반이 25명이라면 약 2명 정도가 ADHD일 정도로 흔한 질병이다. 그런데 순수하게 ADHD만 있는 경우는 약 30~40%고 60~70%는 다른 질병과 동반된다. 이 씨 아들처럼 ADHD 약을 먹은 뒤 효과는 별로 없고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면 기저에 다른 질환이 있는 게 아닌지를 의심해봐야 한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를 5일 연세대 의대에서 만나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해 물었다. 천 교수는 진료를 받으려면 4년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ㅡ진료실에 오는 아이 상당수가 ADHD보다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주요 문제였던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기저에 발달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탓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산만해요. ADHD 검사 해주세요’ 하고 오는 부모에게 아이의 행동을 들어보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한 특성으로 부주의성이나 과잉행동이 있는 것을 ADHD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ADHD가 의심되는 아이에게 어떤 증상이 보이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고려해야 하는지, 이 둘을 어떻게 감별해내야 하는지는 전세계적으로 소아정신과 의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슈다.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가 공존하는 경우, 혹은 ADHD가 아닌 자폐스펙트럼장애였던 경우에 ADHD 치료약물을 복용하면 순수한 ADHD에 비해 효과가 부족하고 부작용이 커진다.”
ㅡ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가 혼동되기 쉽다는 뜻인데 어떤 차이가 있나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 비교
ㅡ두 질병의 치료법이 다른가
“ADHD는 약물이 핵심치료다. 70% 이상의 효과를 거둔다. 약물 치료를 단독으로 했을 때와 약물 치료와 비약물적 치료를 같이 했을 때 효과가 거의 유사하다는 유명한 연구 결과가 있다. 물론 약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효과를 극대화하고 장기간 복용하지 않으려면 아이는 행동치료와 사회성 훈련, 부모는 부모교육을 함께 받는 게 좋다. ADHD의 대표적 치료 약물은 도파민 분비를 늘리는데 자극에 과도하게 민감한 자폐스펙트럼장애에 쓰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핵심 증상에 대한 치료 약물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동반된 문제 행동을 개선하는 약물만 있다. 핵심 증상 개선을 위한 근거가 확립된 치료는 언어 치료, 행동 수정 요법, 사회적 기술 훈련 등이다. 치료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산만하거나 충동적인 모습을 보일 때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 중 무엇이 주된 원인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
ㅡ자폐스펙트럼장애에 필요한 사회성 훈련은 무엇인가
“친구의 말을 오해하지 않기, 사회적 규칙 알기, 농담과 진담 구분하기 등을 계속 연습한다. 예를 들어 보드게임에서 졌다고 판을 뒤집거나 규칙을 바꿀 게 아니고 이건 재미일 뿐이니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ㅡADHD인 줄 알았는데 어떤 증상을 보일 때 기저에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다고 의심할 수 있나
“상대방과 구어체로 핑퐁 대화가 잘 안 되고, 책 읽는 듯한 문어체 표현이 많을 경우, 특이하고 반복적인 관심사가 있는 경우다. 특이한 관심사가 어린 시절에는 반복 행동이었다가 점차 특정 주제로 바뀌기도 한다. 예컨대 영유아기에는 자동차 바퀴 돌리기, 선풍기, 실외기 한없이 쳐다보기 등을 하다가 학령기 전후에 지하철 노선도를 달달달 외우기도 한다. 만 3~4세 경에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고, 주변 사람에 무심한 경우, 상대의 눈을 정확히 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보는 경우, 특정 소리나 시각적 자극을 과도하게 추구하거나 회피했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언어가 제때 트였고 지능이 정상인 자폐스펙트럼장애라면 ADHD인 줄 알았다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문제 행동이 심각해지면서 뒤늦게 진단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ㅡ부모가 자녀의 병명 진단을 위해 의사를 찾기 전 해야 할 일은
“의사가 아이를 정확하게 진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세한 병력 청취다. CAT(종합주의력) 검사는 불안하거나 우울해도 충동성이나 부주의성 지표가 높게 나올 수 있다. 따라서 CAT 결과에만 의존해서 ADHD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가정 이외의 학교나 학원 등 여러 환경에서 아이가 어떤 에피소드를 보였는지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의사에게 ‘아이가 너무 산만하대요’가 아니라 ‘친구가 귀찮아하는데도 계속 숫자를 이야기하고 쓴대요’ ‘급식 먹을 때 줄을 못 서고, 친구를 자꾸 건드린대요’ 처럼 자세히 말해줘야 한다. 어린 시절 말문이 언제 트였는지, 특정 어구나 단어를 반복하진 않았는지 등 아이에 대한 정보를 의사에게 많이 제공해줘야 한다.”
ㅡ학교에서는 ADHD 진단을 받고도 아이에게 약 먹이는 걸 주저하는 부모가 많다던데
“아이 속에 반짝반짝한 진주알이 너무 많지만 흙이 잔뜩 묻어서 잘 보이지가 않는데 약이 흙을 털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ADHD는 치료 안 한다고 생명이 위험한 병은 아니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제때 치료를 안 하면 다른 병들이 더해질 수 있다. ‘넌 왜 이렇게 산만하고 사고뭉치니’라며 혼나고, 문제를 끝까지 못 읽어 성적도 안 나오면 자기 비하로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ADHD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성인 환자 중에 ‘어릴 때 부모가 제때 치료해줬더라면 현재 내 삶이 이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경우도 봤다.”
ㅡADHD 자녀를 부모가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참고 싶은데 잘 안 되지? 10분 정도만 기다리면 음식이 나올 거야’ 하고 예측 가능하게 해준다. 또 궁금하다고 친구를 밀치고 볼 게 아니라 ‘나도 볼 수 있을까?’ 라며 행동하기 전에 말로 욕구를 표현하도록 연습시킨다. 아이가 기다리는 것에 성공하면 ‘어제보다 음식이 늦게 나왔는데도 컵을 만지작거리지 않고 잘 기다렸어’ 하고 구체적으로 칭찬해준다. 아이가 무엇을 해서 칭찬받았는지 알게 해주는 것이다. ADHD는 충동적이고 말이 많으므로 맥락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지 훈련시킨다. 예를 들어 수학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급식에서 싫어하는 음식이 나왔다고 말한다면 핀잔을 주기보다는 ‘우리 급식 이야기는 수학 문제 다 풀고 나서 할까?’라며 언제 말할지 예측하게 해준다. 부모가 아이의 부족한 전두엽 기능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ㅡ자녀가 ADHD 치료 중이라는 걸 학교에 알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학부모가 많은데
“초등학교 교사들과 상담해보면 아이에 대한 병원 치료를 권했다가 부모가 오해할까봐 조심스럽다고 한다. 학부모는 교사가 편견을 갖고 아이를 대할까 치료 사실을 말하지 않기도 한다. 부모와 교사가 서로 신뢰하고 솔직하게 의사소통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부모가 교사를 아이의 치료 파트너로 삼을 때 예후가 더 좋다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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