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앞유리에 전화번호 써뒀다가…30대 女 '날벼락'
문자 발송 업체 난립에 번호 도용 증가
"010 번호에는 경계심 낮다는 점 노려"
문자 발송 사업자 3년간 두 배로 늘어
업체 난립으로 피싱범 일감마저 수주
방통위 대책 이달 실시…효과 있을까
서울에 사는 30대 여성 A씨는 지난 주말부터 쏟아지는 항의 문자에 시달리고 있다. ‘인공지능(AI) 상한가 알림 체험’, ‘×× 종목 상한가 마감’ 등의 내용을 담은 문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휴대폰 번호를 발신자로 해 불특정 다수에게 살포됐기 때문이다. A씨가 이 문자에 담긴 링크를 눌러 보니 ‘상승 유망 종목 리스트를 무료로 보내준다’는 내용과 함께 이름 및 연락처 기재를 유도하는 웹 페이지가 나타났다. A씨는 “문자 발송 사이트에서 조회해 보니 내 번호로 55만명에게 이런 문자가 전송됐다”며 “지금도 계속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반 휴대폰을 피싱 문자 발신 번호로
“주식 투자로 고수익을 내게 해주겠다”는 내용의 피싱 문자가 활개 치고 있다. 이 문자는 리딩방 광고를 가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것도 아니고 단순 사기인 경우가 많다. 문자를 받은 사람이 텔레그램 등에 개설된 단체 대화방에 들어오게 한 뒤 여기서 속임수를 써 돈을 갈취하는 게 이들의 수법이다. A씨의 사례처럼 평범한 사람의 휴대폰 번호를 발신자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리딩방 권유를 가장한 피싱 문자가 늘어난 건 최근 문자 재판매사 수가 급증한 것과 관련 있다”며 “업체 간 경쟁 심화로 돈벌이가 쉽지 않다 보니 일부 업체가 피싱범의 문자 발송 의뢰까지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자 재판매사는 전기통신사업법이 정한 문자 발송 서비스 제공사를 말한다. 수신자의 동의를 받아 ‘광고’라고 표시된 문자를 발송하거나, 회사의 의뢰를 받아 직원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는 것 등이 이들의 합법적인 사업 방식이다. 중앙전파관리소에 등록된 문자 재판매사 수는 2020년 599곳에서 지난달 1169곳으로 최근 3년여 만에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정부가 스팸 문자 방지를 위해 통신사 이용자의 하루 문자 발송 한도를 500건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문자 재판매사는 예외다.
한 문자 재판매사 종사자는 “최근 1~2년 새 관련 업체가 난립해 치열한 단가 경쟁을 하고 있다”며 “수익성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뛰어들었다가 빚쟁이가 될 위기에 처하자 일부 업체가 물불 안 가리고 다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피싱범이 새 범죄 수법을 개발한 것도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라며 “과거에는 해외 번호나 인터넷전화 번호로 공공기관 등을 사칭했는데, 더 이상 이런 방법이 안 통하자 문자 재판매사까지 동원해 새로운 방식의 사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명인 사칭 유튜브 광고 활용하기도
리딩방 업자를 가장한 피싱범의 수법을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이들은 우선 주차장을 돌며 앞 유리에 쓰인 휴대폰 번호를 수집하거나, 해커에게 불특정 다수의 휴대폰 번호를 사들인다. 실제로 주차장에서 휴대폰 번호를 무단 수집했다가 적발된 자의 사례가 경찰청 등에 의해 종종 공개된다.
이후 피싱범은 ‘변작기(일명 심박스)’라고 불리는 장치를 활용해 스팸 문자의 발신자로 이 번호를 넣는다. 변작기를 쓰면 해외에서 발송된 문자도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에서 발송된 것처럼 만들 수 있다. 김기범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는 “국제 번호는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기피하지만 국내 번호는 의심하지 않는 피해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자를 받은 사람이 유도를 따라 SNS 채팅방에 들어오면 속임수가 본격 시작된다. 앞서 이 업자에게 투자했다고 자처하는 바람잡이가 “수익률 좋다”는 등의 말을 하며 피해자의 관심을 유도한다. 피해자가 채팅방에 잔류하면 며칠 뒤 따로 연락해 1대1 상담을 하며 ‘무료로 자산을 운용해주겠다’는 말로 입금을 권유한다. 이 통장은 대포통장이기 때문에 일단 입금하면 피싱범이 자발적으로 이를 돌려주는 일은 없고, 반대로 여러 구실을 붙여 추가 입금을 지속적으로 유도한다.
업계 관계자는 “유튜브 등에 나오는 유명인 도용 리딩방 광고의 광고주가 피싱범인 경우도 많다”며 “이 유명인을 보고 피해자가 채팅방을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유튜브에는 지금도 이런 광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 유튜브 측은 “알고리즘으로 불법 광고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뿐 수년째 광고 송출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수십억 벌고 과태로 찔끔 '남는 장사'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달 초 시작한 ‘대량문자전송사업자 전송자격인증제’가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고남현 방통위 디지털이용자기반과장은 “기존에는 문자 재판매사 등록을 받을 때 서류 심사만 했는데 이 제도 하에서는 현장 실사, 인터뷰 등을 통해 사업자의 준법 의지까지 확인하게 된다”며 “기존 등록 업체도 6개월 내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했던 업체를 걸러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승진 방송통신이용자보호협회 사무국장은 "스팸문자인 걸 알고 보내놓고도 '내용은 몰랐다'고 주장하는 문자 재판매사가 상당히 많다"며 "스팸성 문자는 정상 단가의 5~10배를 받기 때문에 수십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취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적발 돼도 과태료가 3000만원으로 이들이 버는 수익 대비 너무 적어 강제력을 갖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안정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스팸정책팀장은 "이번 정책은 국내 사업자의 자정작용을 위한 것이며 전파관리소에 등록되지 않은 해외 사업자는 추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이들이 보낸 문자는 내용을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했다. 그는 "국제 사회가 공조하며 스팸 문자 근절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양병훈/이시은/이상기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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