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ary Cause'를 치료해야 한다" 박미라 스포츠 전문 피지오테라피스트
스포츠에서 트레이닝 파트와 물리치료 파트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트레이닝(Training) 파트는 아프지 않고 정상인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증가시키는 역할이 주인 반면, 물리치료 파트는 부상이 있는 선수들을 정상의 과정으로 복귀시키는 재활(Rehabilitation)이 주된 역할이다. 한번 다친 선수라면 물리치료의 재활을 통해 정상적으로 회복한 후, 트레이닝 파트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지만, 국내에서는 ‘물리치료사’라고 한다면 단순히 마사지나 해주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리치료에 대한 인식은 트레이닝 파트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 되려 트레이닝을 전공한 트레이너들이 물리치료 영역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이 현재 국내 스포츠의 현실이다.
박미라 피지오테라피스트(물리치료사)는 국내 테니스계에서 아직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2017년부터 APPI(Advanced Physiotherapy Practice Institute)라는 국제 표준에 부합한 물리치료 교육 단체를 설립해 국내 물리치료사들을 교육, 양성하고 있다. 스포츠에서는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물리치료사를 역임했으며, 현재에도 수많은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박미라 피지오테라피스트와 함께 재활 과정을 거치고 있다. 부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과정부터 동호인들의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고 싶다는 그녀를 소개한다.
본인 소개를 한다면.
한국에서 물리치료학을 전공했고, 3년간 병원에서 임상생활을 했다. 2000년, 뉴질랜드로 유학을 가서 학사, 석사 과정을 모두 끝내고 2010년에 뉴질랜드 소재의 ‘Institute of Sports Physiotherapy clinic’을 인수했다. 이곳은 뉴질랜드에서 35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매우 유명한 ‘스포츠 부상 전문 물리치료 클리닉’이다. 나는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선수들 중 에서도 특히 테니스, 골프, 배드민턴, 스쿼시와 같은 라켓 스포츠 선수들을 주로 담당해왔다. 나에게 테니스는 매우 익숙한 스포츠이다.
2018년부터는 한국 물리치료사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스포츠팀 전담 물리치료사 뿐만 아니라 병원에 소속되어 있는 물리치료사들도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올해 1월, 뉴질랜드에서 입국했고 현재는 의사 선생님과 함께 한국에서 클리닉 개원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한국에 교육 차 들어왔을 때, 선수들이 입소문으로 나에게 재활을 받았었는데, 올해 말에는 클리닉을 본격적으로 오픈하여 선수들을 재활할 예정이다. 선수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기도 했고, 한국에 재활과 물리치료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개선시키고 싶어 선택한 방법이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부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지만 부상에서 완쾌하지 못하고 재발했다는 소식도 종종 접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부분은 재활을 통해 성공적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못한 선수들도 있다. 이런 선수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눈에 보이는 문제(Secondary Cause, 이차적 문제)에만 집중한 나머지, 근본적인 부상의 원인(Primary Cause, 일차적 문제)을 간과해 치료할 경우 복귀에 실패하게 된다. 이차적인 문제만 치료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부상 부위를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활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한 채 표면 위로 나타나는 현상만 치료하게 되면 도돌이표처럼 같은 부상을 입게 된다. 재활을 했음에도 복귀가 어렵거나 단기간 같은 부상이 재발한다면 부상의 원인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해외에서는 의학적인 전문 지식을 공부하고 임상에서 경험한 물리치료사들이 이러한 부분을 담당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뉴질랜드에서 직접 재활시켰던 프로 테니스 선수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 해보겠다. 서브를 넣을 때 어깨 통증이 있어 6주간 트레이닝 센터에서 회전근개 및 상체 위주의 보강 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나를 찾아온 선수가 있었다. 이 선수의 과거력을 살펴보니 2년 전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이 있었고, 코트로 복귀한 지는 1년이 조금 지났으며, 어깨 통증은 3개월 전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이선수가 가지고 있는 어깨 통증의 원인은(일차적 문제) 아킬레스건이 다시 파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들어 낸 서브 패턴 변화였다. 아킬레스건을 다친 쪽 근력이 반대편에 비해 30% 정도 약화된 상태에서 이전과 같은 서브를 만들어 내기 위해 상대적으로 어깨를 더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어깨 부상이 발생한 것이다. 어깨 부상은 이차적인 문제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이 선수 재활의 일차 목표는 종아리와 아킬레스건 재활, 그리고 부상 재발의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었다. 재활 이후, 다시 정상적으로 코트에 복귀시켰다. 어깨 부상으로 서브가 잘 안됐다고 하지만 실제 어깨 부상의 원인은 어깨가 아닌 하체 근력과 두려움에 있었다. 이렇게 부상의 근본적 원인을 찾는 것이 재활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운동 선수들의 근육은 예전 익숙한 동작들을 기억하고 있다. 프로 레벨의 테니스 선수라면 어떠한 샷이라도 순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달인 경지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달인들에게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보인다면 그 배경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부분은 의학적인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물리치료사가 제일 잘하는 영역이다.
스포츠에서 물리치료사의 국제적인 지위는?
세계물리치료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면 물리치료사가 단독으로 개원하거나 환자나 선수들에게 물리치료학적 진단을 내리고 치료할 수 없는 국가는 27%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27% 안에 한국이 있다. 흔히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 중에서는 한국과 일본, 두 국가만 여기에 해당된다.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에서도 물리치료가 전문성을 인정받아 고유의 영역을 보장받고 있는데 한국만 이상하게 이 영역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게 너무 아쉽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선수들과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선수가 필드에서 부상을 당했을 때, 필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메디컬 닥터와 피지오로 한정했다. 코치, 트레이너와 같은 다른 전문가들은 절대로 필드에 들어갈 수 없다. 세계적인 추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만 피지오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야박하다. 다친 선수들이 병원이나 재활을 전문으로 하는 클리닉에서 물리치료사에게 치료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임에도, 피트니스 센터에서 다른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재활 훈련을 받고 있고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스포츠 필드에서 활약 중인 피지오들은 부상에 따른 순간적인 의사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시합 도중 선수가 다쳤을 때 순간적인 판단을 통해 선수를 계속 뛰게 할지, 교체시켜야 할지, 혹은 기권시켜야 할지 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인 의학 지식과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물리치료사에 대한 인식을 반드시 개선시키고 싶다.
테니스에서 피지오들은?
상위 50위권 이내에 있는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최고의 피지오들과 함께 같이 팀을 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코치(Personal trainer), 물리치료사(Physiotherapist), 심리학자(Psychologist), 영양사(Dietician) 등이 한 팀으로 일을 한다. 해외에서는 이 파트들이 개별적으로 모두 잘 발달되어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트레이닝 파트를 제외한 다른 파트들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너무 약하다. 그래서 현재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다른 종목 선수들에게는 심리적인 부분, 영양적인 부분까지 모두 고려해 처방하고 있다. 일종의 ‘토털 케어’인 셈이다.
성장기인 어린 선수들에 대한 치료법은 더 섬세할 것 같은데.
당연하다. 어린 선수들이 주로 앓는 증상 중 하나는 성장통이라 불리는 오스굿-슐레이터(Osgood-Schlatter)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남녀 모두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이전에 오스굿-슐레이터 증상을 심하게 겪었거나 반복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오스굿-슐레이터의 원인은 뼈의 성장속도와 근육, 힘줄의 성장속도의 차이에 있다. 뼈가 자라는 속도보다 근육과 힘줄이 자라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훈련을 소화할 경우 근육과 힘줄이 운동량을 뒷받침하지 못해 무릎뼈가 직접적으로 계속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스굿-슐레이터 증상이 보인다면 지도자들이 운동량을 줄여주거나 운동 모드를 바꿔줘야 한다.
엘리트 선수를 키우는 부모나 지도자라면 1주일에 한 번씩 반드시 키를 측정하게 해야 한다. 갑작스럽게 키가 확 크게 되면 그 시기에는 반드시 훈련법에 변화를 줘야 한다. 그래야 성인이 되어서도 저런 문제가 유발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부모와 지도자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의 오스굿-슐레이터에 대한 처방은 조금 쉬게 하거나, 소염제 먹이거나, 보호대 채워서운동을 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통증을 잠시 못 느끼게 할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25~30세 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야 할 시기에 이 문제가 결국 발목 잡고 만다.
스포츠 피지오들이 지도자, 부모들 대상으로 이런 부분을 교육함으로써 사전에 부상을 예방해야 하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그러한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에 유소년 선수 부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거나 예방하지 못한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유소년 선수를 재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나 지도자의 역할이다. 그들의 자녀 혹은 그들의 선수가 신체적 성장을 거칠 때, 신체 변화에 관한 리포트를 반드시 기록하고 있는지, 혹은 그것을 숙지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한국 테니스 선수들의 재활 훈련을 맡고 싶은가.
물론이다. 엘리트 선수들의 재활이 나에게는 가장 보람차고 재미있다. 해외 선수들은 전문 영역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한국의 사례를 보며 ‘저런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 선수들은 어떻게 저렇게 잘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선수들은 ‘한번 반짝 빛나는 존재, 롱런하지 못하는 존재’로 유명하다. 나는 앞으로 한국 선수들도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면 선수 생명을 더욱 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봐왔던 테니스 관련 부상을 설명해준다면. 동호인 레벨도 포함이다.
선수의 실력, 구력, 부상을 입게 되는 환경에 따라 다 다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많이 다치는 부위는 햄스트링, 허리, 어깨, 팔꿈치, 발목이다. 생각보다 초보자들에게 햄스트링 부상을 많이 볼 수 있다. 동호인들은 평상시 햄스트링이 늘어나는 동작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테니스를 하게 되면 햄스트링은 늘어나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상으로 이어진다.
동호인들의 실력이 높아질수록 허리와 어깨의 부상이 많아진다. 서브 때문이다. 처음에는 공을 치는 정도로 만족했다면, 실력이 향상됨에 따라 서브를 더욱 강하게, 빠르게 넣고 싶어한다. 그런데 테니스 서브는 어깨힘으로 치는 것이 아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몸 전체에서 쓸 수 있는 힘을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다리와 허리에서 54%, 어깨는 21% 정도의 힘을 담당한다. 그래서 다리와 허리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어깨로만 스윙을 하게 되면 어깨에 부상을 입게 된다. 또한, 서브를 구사할때 몸을 돌리는(바디 턴) 동작이 워낙 크기 때문에 강한 서브를 구사하려고 하면 할수록 허리 부상의 위험성은 커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 하에 재활이 이루어졌는가’이다. 만약 부상을 당했다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부상을 당했는지, 어느 부분이 어떻게 하면 아픈지, 통증의 변화는 있는지 등 부상에 대한 것은 환자 본인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만의 지식으로 통증의 원인을 진단하려고 하지 말았으면 한다. 동호인들은 인터넷에서 사전 검색을 하고 재활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인터넷에 쓰여 있는 증상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본인의 진단명을 확정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상담해보면 80~90%는 전혀 다른 문제로 통증을 호소한다. 즉, 지금까지 올바른 치료를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 박성진 기자(alfonso@mediaw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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