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위한 전기차 혁명 뒤엔 노동자 피로 물든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
최대 광산 모로왈리 산업단지서 잦은 사고...“생산 위해 안전 등한시”
환경단체 “환경 위해 전기차 홍보하면서 사실상 환경 파괴하는 꼴”
시끄러운 자동차 엔진소리 대신 도로 위를 조용히 달리는 전기차들에 어느새 더 익숙해진 시대. 수요 증가 속도가 둔화했다 해도, 전기차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전 세계 전기자동차 판매량이 작년보다 2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며, 전기차 혁명이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전기차를 움직이게 하는 배터리에는 니켈이 필수적이다.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요소인 니켈은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과 함께 이차전지 양극재의 핵심 소재로 사용된다. 양극재는 소재에 따라 용량과 출력에 차이가 나는데, 니켈은 특히 1회 충전시 최대 주행거리를 결정하는 에너지밀도와 관련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 기업들은 니켈을 얻기 위해 수천억의 자본을 투자하는데, 일부 주요 산지에서는 노동자들이 안전 규제가 부재한 근로 환경에서 하루종일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니켈 매장량은 약 1억3000만 톤으로 추정된다. 가장 매장량이 높은 국가는 인도네시아로 약 5500만톤(42.3%)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계 1위 생산 국가 역시 인도네시아다. USG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세계 니켈 생산량은 360만톤이며 이중 절반인 180만톤이 인도네시아에서 나왔다. 그중에서도 인도네시아 중부 술라웨시주에 위치한 모로왈리 산업단지(IMIP)는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니켈 광산이다. 밤새도록 꺼지지 않는 광산 불빛 아래에선 4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8000에이커(약 980만 평) 규모의 단지에서 24시간 동안 일한다.
17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비인간적인 노동 행태와 갖가지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스무명 가까이 숨지고 수십여명이 부상을 입은 폭발사고가 있었던 곳도 바로 이 광산이다. 해당 사고가 일어났던 날 노동자들은 늘상 그랬듯 숙소인 급조된 합판과 판금 판자집에서 출근했다. 이른 새벽부터 수만명의 광산 직원들은 안전규제가 미흡한 현장으로 달려가 1400도의 용광로에서 니켈 광석을 녹이는 업무를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용광로가 적정온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런 경우 직원이 내부에 접근해 용광로를 손 볼 수 있도록 조치하도록 되어 있다.
사고가 일어난 날, 용광로가 과열로 운행이 정지되자 직원들은 이를 신속하게 해결하고자 했다. 용광로는 사람이 접근해도 될 만큼 충분히 냉각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일단 용광로를 수리해야했다. 수리를 위해 인부 몇이 용광로의 겉표면을 절단하기 시작하자, 절단된 부분에서 엄청난 온도의 내부 물질이 쏟아졌다. 뜨거운 온도에 용광로 벽이 무너지면서 폭발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대형 사고가 터졌다.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원들은 움직여야 했지만 현장직 근로자들은 아시아 곳곳에서 온 사람들로,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언어장벽은 사고의 규모를 더 키웠다.
이 정도 규모는 아니지만, 해당 제련소 내에는 지금도 자잘한 안전사고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3일에도 모로왈리 산업단지 내 증기폭발이 있었고 두 명의 근로자가 부상 당해 인근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모로왈리 산업단지 내 언론 대응을 담당하는 데디 쿠르니아완은 해당 사고를 인정했지만 제련으로 인한 사고가 아니며 노동자들이 청소를 하며 생긴 가벼운 사고임을 강조했다.
모로왈리 산업단지는 중국의 철강기업 칭산이 2013년부터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조성한 산업단지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술라웨시에는 인도네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우거진 우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니켈 대규모 제련 수요가 발생하면서 최근 모로왈리 산업단지에는 항구, 공항, 중국인 노동자 기숙사, 4성 호텔, 모스크 3개가 있다.
한때 중국의 거대 국영 철강 기업들에 밀려 고전하던 칭산 그룹은 모로왈리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세계 최대의 스테인리스 스틸 생산 기업이 됐다. 인도네시아에도 엄청난 경제 효과를 낳았다. 모로왈리 산업단지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허브로 손꼽히며 10만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게 됐다. 철광 생산을 위한 계약직 생산자들까지 손에 꼽을 수 없는 일자리를 창출했다. 니켈 산업을 기반으로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지불한 비용도 크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폭발 사고는 모로왈리 산업지구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전체 니켈 생산지에서 발생한 사고 중 가장 치명적인 사고였다. 생산자들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다. 모로왈리 산업지구 인근의 지역 주민들은 니켈 제련소의 소음과 제련소를 돌리기 위한 석탄 화력발전소가 내뿜는 대기 중 석탄 잔여물로 만성 호흡기 질환을 호소한다.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술라웨시의 우거진 우림도 파괴되고 있다.
모로왈리 산업단지의 폭발 사건은 해당 단지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로 이어졌으며 인도네시아 정치인들은 이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정치인들 중 누구도 니켈 산업의 투자를 줄이거나 확장을 제한하자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의 값싼 노동력과 석탄을 통해 인도네시아는 호주와 캐나다를 비롯한 니켈 산지들 중 가장 저렴하게 세계 곳곳에 니켈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니켈 산업은 현재도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덕분에 전세계 니켈 가격이 하락하면서 호주의 몇몇 광산이 폐쇄됐고, 신규 광산을 개발하려던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지금도 모로왈리 산업단지에서 생산되는 니켈의 양은 너무 방대해서 거의 모든 전기차 생산기업들에게 공급되고 있으며 블룸버그의 예측에 따르면 2030년까지 인도네시아는 전세계 니켈 공급량의 3분의 2까지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니켈산업 관리자들은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안전 규정을 지키고 보상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그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건 빨간색 대문자로 쓰인 ‘도와주세요’라는 글자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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