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악마견’ 사실은 ‘억울견’…1시간 뛰놀지 못해서 그래요

김지숙 기자 2024. 6. 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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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
비글, 코커스패니얼, 미니어처슈나우저가 ‘3대 악마견’으로 꼽히는 것은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고정관념이다. 사진은 미국에서 ‘악마견’으로 불리는 잭 러셀 테리어 종의 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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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는 작은 가족 반려동물, 어떻게 하면 잘 보살필 수 있을까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국내 여러 동물병원에서 멍냥이를 만나온 권혁호 수의사에게 반려동물의 건강, 생활, 영양에 대해 묻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과 댕기자의 애피랩이 번갈아 연재됩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Q. 우리나라에는 소위 ‘3대 악마견(지랄견)’ 혹은 ‘파괴왕’이라고 불리는 견종들이 있잖아요. 바로 비글, 코커스패니얼, 미니어처슈나우저 등이 꼽히는데요,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이 세 품종의 강아지가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진이나 직접 ‘피해’를 겪은 반려인들이 올린 사연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견종들은 정말 말썽쟁이인 건가요?

A. 소위 ‘악마견’이라 불리는 녀석들이 소파나 벽지를 뜯어 놓거나 화분을 망가뜨린 뒤 멀뚱히 앉아있는 개들의 사진은 정말 애견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고전 인터넷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이죠. 그렇게 사고를 치고도 해맑게 쳐다보거나 짐짓 사고와는 무관한 척하는 모습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뒷정리를 해야 할 반려인에게 감정이입이 돼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 견종들은 왜 말썽쟁이로 찍힌 걸까요.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비글, 코커스패니얼, 미니어처슈나우저가 ‘3대 악마견’으로 꼽히는 것은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고정관념이란 사실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반려견 문화가 시작된 1990년대 중반, 당시 품종견으로 잘 알려졌던 견종이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비글(왼쪽), 미니어처슈나우저(가운데), 코커스패니얼(오른쪽)은 한국에서는 ‘3마 악마견’이라고 불리지만, 이런 통념은 한국에만 존재한다. 사진은 세 견종이 함께 앉아있는 모습. 인터넷 갈무리

미국에서는 이 세 품종이 아닌 잭 러셀 테리어를 사고뭉치 악마견(Demon dog)이라 부르는데요, 실제 이런 오명을 얻은 배경에도 잭 러셀 테리어 종의 ‘반짝 인기’가 있었던 걸로 보여요. 1994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마스크’에는 잭 러셀 테리어 종의 강아지 캐릭터 ‘마일로’가 등장해 큰 인기를 누렸는데요,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잭 러셀 테리어를 입양했고 덩달아 파양도 늘어난 거예요. 당시 해당 견종만 주로 구조하는 유기견 보호소가 생겨날 정도였다고 하니, 인기가 많다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일 같습니다.

그럼 이제 억울한 ‘악마견’들을 위한 해명을 해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개들은 견종과 관계없이 뛰어노는 걸 좋아합니다. 시각이 잘 발달한 사람과 달리 개는 (시각에 견줘) 후각, 청각, 촉각 등이 더 예민합니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산책을 나가고, 밖에서 놀아주면서 다양한 자극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주거형태는 아파트, 빌라, 다세대주택과 같은 공동주택이 일반적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내 생활의 무료함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집안을 어지르고 파괴하는 ‘사고’를 치게 되는 겁니다. 만약 반려인이 직장인이라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거나, 제대로 산책을 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면 문제 행동을 보일 가능성은 좀 더 높아지겠죠.

‘악마견’이라 불리는 세 견종은 모두 과거에는 쥐잡이 혹은 토끼, 새 사냥을 돕던 개들이다. 사진은 1825년 토끼 사냥을 돕고 있는 코커스패니얼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세 견종은 다른 품종들보다도 활동량이 많은 편입니다. 세 견종 모두 과거에는 쥐잡이 혹은 토끼·새 사냥을 돕던 개들이거든요. 미국의 애견단체인 ‘아메리카 켄넬클럽’(AKC)은 개의 역할과 용도에 따라 견종을 7개의 그룹으로 나눠놓았는데 비글, 코커스패니얼, 미니어처슈나우저는 각각 하운드, 스포팅, 테리어 그룹의 대표 견종들입니다.

이 그룹의 개들은 오랜 시간 품종 개량을 거듭하면서 사냥에 적합하게 훈련시킨 개들입니다. 넓은 들판이나 숲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새를 쫓거나 땅을 파서 사냥감을 찾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개량된 것입니다. 실제로 ‘악마견의 만행’이라고 올라오는 게시글들을 보면 거의 좁은 주택 안에서 벌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좁은 실내에서는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말썽을 부리게 되는 거죠.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개들의 경우, 얼마만큼의 산책과 운동이 필요할까요. 2017년 영국 리버풀대 수의학과 연구진들은 영국 내 반려견들의 운동량 등을 알아보기 위해 개 1만2314마리의 운동량을 온라인 설문을 통해 조사했습니다. 이전까지 반려견의 운동시간, 운동량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상당 부분 경험적인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반려견들의 견종별 운동 시간, 품종, 성별, 나이 등을 조사한 것이죠.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보편적으로 중·대형견은 1시간 이상, 소형견은 30분~1시간 정도의 운동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연구진은 전체 반려견 가운데 1시간 이상 운동하는 개의 마릿수를 조사해 백분율로 표시했는데요, 알래스칸말라뮤트, 비글, 보더콜리, 코커스패니얼 등의 중·대형견은 80% 이상이 1시간 이상의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비숑프리제, 포메라니안, 요크셔테리어 등 소형견은 30~40%에 그쳤습니다.

이 정도면 3대 악마견에 대한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셨나요? 결국 악마견이라는 오명은 대부분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 예비 반려인들이 해당 견종의 기질이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개를 입양해서 생긴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7년 영국 리버풀대 수의학과 연구진의 논문을 살펴보면, 중·대형견은 1시간 이상, 소형견은 30분~1시간 정도의 운동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의 품종별 특성이 어느 정도 참고하는 기준이 될 순 있어도 절대적이진 않다는 점입니다. 사람도 개개인이 성격이 다르듯 개들도 각자 성격과 기질에 따라 활동량이 다르기 때문에, 반려인이 반려견의 태도와 생활 방식을 고려해 적당한 운동을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또한 반려견의 산책은 개의 신체뿐 아니라 정서적 건강에도 중요한 활동입니다. 산책 시간 동안 개는 반려인과 교감하고, 주변 환경을 탐색하면서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합니다. 반려인과의 신뢰관계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죠. 그런데 개와 산책을 나가 휴대전화만 보거나 동행인과 이야기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개는 충분한 관심을 받을 수 없겠죠. 그러니 우리 산책·운동 시간만큼은 댕댕이들에게 집중하자고요!

인용 논문

Journal of Nutritional Science, DOI : 10.1017/jns.2017.7

권혁호 수의사 hyeokhoeq@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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