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무관한 사람 사진 실었다가… 500만원 배상
언론중재위원회가 지난해 주요 조정신청 사례를 수록한 ‘2023년도 언론조정중재 사례집’을 최근 발간했다. 사례집에는 지난해 접수·처리한 4085건의 조정신청사건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내용과 조정결과별로 선별한 25건의 사례가 담겼다. 주요 내용은 책에서 익명 처리됐지만, 기자들이 취재 및 보도 시 주의해야 할 점이 담겨 있어 이 중 참고할 만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보도자료·전언 바탕으로 기사 썼다가 정정보도
지난해 언론조정 사건들에선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언론사가 정정보도나 손해배상을 한 사례들이 여럿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언론사는 군 청사에서 1인 시위 중인 A씨와 관련, 군 측이 A씨의 시위행위를 제한해달라며 신청한 방해금지가처분이 1심에서 일부 인용됐다고 보도했다. 또 이러한 법원 판결에도 A씨가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는 A씨에 대한 직접 취재가 아니라 군 공보관실의 보도자료 및 공무원들의 전언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었다. 이에 A씨는 본인 입장을 취재한 사실이 없음에도 직접 청취한 것처럼 보도했다며, 언론사에 정정 및 반론보도와 200만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조정을 신청했다. 결국 언론사가 정정 및 반론보도문을 게재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조정이 성립됐다.
보도 내용과 관련 없는 사람의 사진을 게재했다가 5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사건도 있었다. 해당 언론사는 사건 피의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이라며 다른 사람에게 보낸 채팅방 메시지를 캡처해 보도와 함께 게재했는데, 알고 보니 이 사진은 피의자가 아닌 피의자의 동생 B씨의 사진이었다. B씨는 해당 사진으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1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신청했고, 결국 500만원으로 손해배상액이 합의됐다.
언론사는 조정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동생이 있는지 몰랐고, 피의자가 사진 속 인물이 본인이라고 주장해 의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비식별 처리가 미흡했음을 인정했고, 중재부도 B씨의 연락 후 언론사가 즉시 보도를 삭제한 점 등을 고려해 500만원의 배상액을 권고했다.
한편 언론사가 사기분양 의혹을 보도하면서 유튜브에 은행 관계자인 C씨의 음성을 내보낸 사건에서도 손해배상금 30만원이 결정됐다. 언론사는 C씨에 인터뷰 내용의 인용 동의를 받았고, 음성을 변조해 보도했다고 진술했으나 중재부는 인용에만 동의했을 뿐 음성이 공중에 전파되는 것까지 동의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결국 C씨의 음성을 삭제하고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조정이 성립됐다.
확정판결 나오지 않은 사건 보도했다가 열람차단
지난해 언론조정 사건들에선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은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에 추후보도나 기사열람차단을 주문한 사건도 여럿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언론사는 새총과 쇠구슬을 이용해 동료 차량을 파손한 혐의로 D씨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보도했는데, D씨는 이후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며 추후보도를 구하는 조정을 신청했다. 언론사는 조정 과정에서 추후보도문 대신 무죄 판결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는 후속보도를 제안했고, D씨가 이를 수용해 취하로 종결됐다.
확정되지 않은 형사재판 사건을 다뤘다가 열람차단으로 합의한 사례도 있었다. 해당 언론사는 E씨가 남편을 집에서 쫓아냈고 상간남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공모해 남편이 딸을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씌웠다고 보도했는데, E씨는 보도가 편파적이고 본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정보도를 신청했다.
다만 언론사는 문건과 블랙박스 영상 등 확인한 사실 등을 근거로 보도했고, E씨의 입장도 반영했으므로 정정보도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중재부가 관련 소송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확정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보도의 열람·검색 차단을 권고했고, 언론사와 E씨가 이를 수용해 조정이 성립됐다.
한편 지난해 언론조정 사건 중에선 황당한 신청 건도 여럿 있었다. 한 언론사가 흉기난동 사건 피해자들의 추모 공간을 취재하며 시민 인터뷰를 보도했는데, 이 인터뷰에 등장한 시민과 소송 중인 F씨가 중재를 신청한 사건이 그 중 하나였다. F씨는 자신과 소송 중인 사람이 보도에 등장해 여론을 조작했고, 이러한 기만행위가 재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언론사에 정정보도와 1만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조정을 신청했다. 중재부는 그러나 해당 보도에 F씨가 지명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보도 내용과 F씨 사이에 개별적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정치인이 조정신청 가장 많아… 피해구제율 74.1%
지난해 조정사건을 청구권별로 살펴보면 정정보도청구가 1943건(47.6%)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손해배상청구(1312건·32.1%), 반론보도청구(731건·17.9%), 추후보도청구(99건·2.4%) 등이 따랐다. 전체 조정사건 피해구제율은 74.1%였는데 추후보도청구 피해구제율이 94.8%로 가장 높았고 정정보도청구(74.1%), 반론보도청구(74.0%), 손해배상청구(72.8%) 순이었다.
손해배상청구 사건 중 금전배상 인용으로 종결된 사건은 28건(2.1%)이었다. 명예훼손이 19건(67.9%)으로 가장 많이 인정됐고 초상권 침해(6건), 성명권 침해(2건), 음성권 침해(1건) 순이었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최저 50원부터 최고 2200억원까지 큰 편차를 보였는데, 실제 인용된 손해배상 금액은 최저 30만원에서 최고 500만원이었다.
조정사건을 신청인 직업별로 살펴보면 정치인이 신청한 조정사건이 414건(18.6%)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개인 사업가(407건·18.3%), 회사원(337건·15.1%), 언론인(176건·7.9%), 연예인(128건·5.8%) 등이 따랐다. 직업별 피해구제율을 보면 학생이 신청인인 경우가 96.7%로 가장 높았다. 이어 전문직 종사자(92.2%), 개인 사업가(86.8%), 회사원·종교인(86.7%) 순이었다.
매체 유형별로 조정 사건을 살펴보면 인터넷신문을 대상으로 한 조정사건이 2491건(61.0%)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그 뒤를 포털과 방송사 닷컴 등에 해당하는 인터넷뉴스서비스(498건·12.2%), 신문(487건·11.9%), 방송(345건·8.4%), 뉴스통신(218건·5.3%) 등이 따랐다. 인터넷 기반 매체를 대상으로 한 조정사건은 2017년 이후 꾸준히 전체 조정사건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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