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합니다’ 이제 그 말이 무섭다 [김지현의 정치언락]
‘이재명은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21년 대선 후보였을 때 내걸었던 슬로건입니다. 2014년 성남시장 시절 ‘성남은 합니다’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사이다 추진력’을 집중 부각한 거죠. 당시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메시지 총괄을 맡았던 카피라이터 정철 씨는 “최고의 슬로건”이라고 평가하며 “만약에 ‘이재명은 합니다’ 사이에 어떤 수식어, 예를 들면 무엇을 합니다, 혹은 어떻게 합니다, 이런게 들어갔다면 이 슬로건 힘은 (빠진다). 생략의 힘이 있는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재명은 171석의 원내 1당 대표가 돼서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던 생략의 힘은 어느덧 앞으로 뭘 더 하려고 들지 몰라서 두려워지는 공포의 힘이 된 듯 합니다.
이재명은 ‘입법 폭주’를 한다
이재명은 국회에서 그야말로 ‘폭주’하고 있습니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지난달 그가 당 워크숍에서 “개혁 법안과 민생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정치적 레토릭이겠거니 했습니다.
이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22대 국회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본회의도 모두 야당 단독으로 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보통 본회의 일정은 여야 합의가 안 되면 한두 번쯤 미루는 게 관례입니다. 그런데 “관례가 법을 이길 수 없다”는 명분으로 민주당은 본회의 개의를 두 번 다 몰아붙였습니다. 그 결과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에 이어 국회 운영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핵심 11개 상임위원장이 모두 야당 단독으로, 민주당 출신들로 뽑혔습니다. 집권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국회가 개원한 것도, 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등 주요 상임위원장을 독차지한 것도 모두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민주당은 그렇게 전체 18개 상임위 중 알짜배기 11개를 날름 먼저 가져간 뒤 여당에 “남은 7개라도 줄 때 좋게 가져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그로도 부족한지 계속 합니다. 그는 지난 1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방위원장이 아직 공석인 점을 지적하며 “국방위, 아직 구성 못 했지요? 지금 하루가 급한 일 아닙니까? 정청래 최고위원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관례, 합의 다 좋습니다만, 안 되면 법대로 해야지요. 빨리 국회 열어서 일하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고 국회법 취지 아닙니까? 국방위를 포함해서 아직 구성되지 못한 상임위 신속하게 구성하고, 필요한 일에 신속하게 착수해야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곧바로 최민희 과방위원장과 정청래 법사위원장을 향해 “과방위원장님이 여기 계신데, (어제) 신속하게 업무 개회해서 업무 시작하신 것 잘 하셨고요. 법사위는 오늘 여신다고 하는 이야기를 제가 보도로 봤는데, 어쨌든 법사위가 관할하고 있는 온갖 잘못된 국정 현안들 신속하게 파악하고, 또 필요한 일들은 지적하고 교정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 대표가 대북 송금 건으로 추가 기소된 날이라 기분이 상당히 언짢은 상태였다”며 “박 원내대표를 공개 질타했지만, 사실상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13일에 본회의를 열어 7개 상임위 구성을 마무리하라고 압박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대표의 ‘하라’는 외침에 당장 그날부터 민주당이 먼저 확보한 상임위마다 경쟁적으로 ‘반쪽 회의’를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과방위 법사위뿐 아니라 국토위와 행안위도 전체회의를 열고 줄줄이 현안 질의와 장관 등 국무위원과 정부위원 출석의 건을 의결했습니다. 박 원내대표는 “정부 부처에서 업무보고를 갑자기 취소하거나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때는 가장 강력한 조치를 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앞서 이 대표가 국회 개원 전 “22대 국회부터는 원내대표께서 각별히 관심을 가지셔서 법이 정한 자료 제출 거부라든지, 출석 기피라든지, 위증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예외도 두지 말고 엄하게 처벌하라”고 주문한 데에 따른 거죠.
이재명은 당 대표도 한 번 더 할까
원조 친명들조차 “굳이 (당헌을) 손 볼 필요가 있었나”(정성호 의원) “주변에서 (한 번 더 당 대표) 하라고 하니까 한다, 이런 논리로 연임은 안 했으면 좋겠다”(김영진 의원)는데, 그래도 이재명은 합니다. 김영진 의원은 박 원내대표의 ‘이재명은 착하다’ 주장에 대해 “착하기도 하고 안 착하기도 하겠지요”(14일 SBS라디오)라고 반응했습니다. 최근 ‘신(新) 수박’으로 개딸들의 집중 타깃으로 떠오른 김 의원은 “박 원내대표가 그런 감성적인 면에 강한 원내대표이시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보신 것일 것”이라며 “제가 이재명 대표의 심성까지 판단하고 그럴 위치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행정가 시절 이재명 대표는 ‘한다면 하는’ 사이다식 추진력으로 분명 인기를 끌었던 게 맞습니다. 하지만 행정과 정치는 다릅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독재보다 더 복잡하고, 고비용에, 불편한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계속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다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재명은 대체 어디까지 할껍니까.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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