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대정신과 영적 전쟁④ 아이돌과 팬덤, 팬텀!

2024. 6. 1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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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 소장(이레문화연구소)

1. 대중문화 파도
지구촌에 불어닥친 시대의 물결이 있다면 대중문화이다. 대중문화는 19세기 유럽에 산업혁명이 불어오면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생긴 현상이다. 먹고 살기 어려운 농어촌 등 소외된 지역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모여드는 현상은 가슴 아프지만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와서 사는 이들은 당분간 실향민의 심정을 가지고 살아야 하니 가슴 아픈 일이고 적응하기까지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 하니 쉬운 삶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대가 있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란 국가 주도의 산업, 경제부흥 정책에 발맞춰 여러 대도시 주변에 공업단지(공단)이 들어섰다. 당시에는 환경오염이고 산업재해이고 열악한 생활 터전이고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잘살아 보세” 노래 부르며 직장으로 향하던 노동자들의 발걸음은 그야말로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겠다. ‘열심히 땀 흘리면 마이카, 마이홈 보장된다!’ 이게 관권 확성기가 대놓고 나발 부는 홍보였다. 새마을운동도 민족중흥이란 거대한 이상으로 국민 의식을 일깨웠다. 일종의 프로파간다라 하겠지만 먹을 것, 일할 곳이 변변치 않던 시대에 긍정적인 면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 후 최빈한국에서 세계 지도적 나라의 반열에 오른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가 되지 않았는가! 자긍심 곁에 숱한 후유증도 함께 끌어안으며 이제 케이 컬쳐(K-Culture)는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가적, 문화적 위상을 드높이는 소중한 민족 유산, 자산이 되어간다. 대중문화는 그런 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다분하다.

2. 대중문화의 속성
대중문화는 간단히 정의한다면 ‘대중이 함께 누리며 소비하는 문화’이다. 여기서 묻게 된다. 대중은 누구인가. 국가의 주권을 행사하는 주권자 국민,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이라고 지칭할 때면 역사의 주체로서 당당히 그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대중이란 표현에 오면 부정적으로 쓰인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은 ‘무의식적 집단’ ‘비판하지 않고 체제에 순응하는 무리’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사는 익명의 집단’ ‘욕망을 채우려는 무리’ ‘동물적 야만성을 드러내는 무책임한 집단’ 등으로 정의되곤 했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을 ‘무의식적이고 충동적인 집단’이라 정의했다.

대중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으나 문화는 긍정의 측면이 다분하다. 문화는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의 패턴, 라이프 스타일, 의미의 구조로서 사회구성원들이 삶을 통해 형성하고 소통하는 공유재이다. 즉 문화는 역사 전통 관습 습관 가치관 세계관 윤리 도덕 실천규범 등 한 사회에 집적된 모든 유·무형적 삶의 총체(The Whole of Life)이다. 광범위한 문화의 영역 때문에 문화를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문화는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존재의 집이라 할 수 있다(이 표현은 하이데거가 말한 ‘언어는 존재의 집’에서 차용함).

앞서 언급한 현대 사회의 산업화, 도시화로 도시 주변에 대중이라는 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값싸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생겨났다. 사회 구조 면에서 보자면 중간 계층이 주도해 누리는 소비문화를 말하기도 한다. 대중이 소비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대변하는 용어가 연예와 오락이다. 엔터테인먼트의 속성은 재미와 소비에 있다. 즉 대중문화는 대중이 재미와 흥미, 기호를 가급적 값싸게 소비할 수 있는 욕망의 소비재를 제공하게 된다. 여기서 대중의 하향 평준화라는 난제가 발생한다.

3. 아이돌(idol) 등장하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취향과 욕망을 대량 생산하고 대량 소비하는 매커니즘을 만들었다. 이를 문화산업이라 한다. 이 산업은 자본주의와 손잡고 문화 자본을 형성하고 대량으로 문화 복제품을 만들어 배포한다. 미디어가 일반화된 시대에 문화 파급은 순식간이다. 거리와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광속도로 공유할 수 있다. 현시대는 초스피드 시대이기에 문화 보급은 파괴적 영향력을 가진다. 또 디지털과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소비재를 접속할 수 있는 접속의 시대가 되었다.

이때 관심을 끌고 접속을 유도하기 위해 영웅이 필요해진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접속률이 생사를 가를 기준이 되었으니 말이다.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자본 기술 콘텐츠 그리고 영웅이 집결한다. 이 영웅이 바로 아이돌이다. 흔히 대중스타를 일컫는 이 말은 다양한 측면을 가진다. 긍정과 부정의 경계와 양극에서 아이돌 현상을 바라보게 한다. 아이돌에 관해 챗GPT에게 물어본다. “아이돌 문화의 문제점은?” 이런 답변이 나온다.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 사생활 침해, 과도한 외모 강박, 경제적 착취, 심리적 압박과 불안, 성차별과 성 상품화”. 놀라울 정도로 예리한 진단을 내린다.

대중은 무자비할 정도로 아이돌을 소비하려 한다. 아이돌 당사자들은 정작 이런 ‘극한직업’적 환경에 내몰리는데 대중은 ‘모어 모어’(more more)를 요구한다. 대중은 익명성을 갖고 있기에 착취에 가까운 소비로 내닫는 경향을 보인다. 아이돌의 현란한 연예와 공연에 환호를 보내는 대중, 하지만 그들의 소비 욕망은 ‘끝까지 간다’이다. 그 과정에서 내적으로 지치고 허약해진 아이돌의 탈진과 일탈에 대중은 관심이 없다. 자신들의 욕망 충족, 대리 만족이 우선이다. 대중문화의 가치가 악순환이 되어가는 굴레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대중 안에서 열광과 극성으로 아이돌을 지지하는 일부 팬들, 그들만의 독특한 취향이 특이한 생태계를 만든다. 팬덤(fandom)! 여기서 아이돌은 거의 숭배의 대상이 되며 일거수일투족 대중을 휘어잡는다. 어느 그룹에서는 사이비 집단의 교주처럼 군림하기도 한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고(1774년) 베르테르 신드롬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사랑을 못 이룬 베르테르의 극단적 선택이 남긴 후유증, 당시 적지 않은 젊은 청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모방 효과가 일어났다. 현대에도 스타의 죽음까지 따라 하는 비극도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경우 가히 영적 미망과 혼돈이 빚어낸 현상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 아이돌에도 원조가
‘아이돌과 팬덤 현상’을 돌이켜 보면 성서의 교훈이 떠오른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 1:9~10) 그렇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듯, 세상사 여러 현상이 뜨고 지는 해처럼 반복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 테마 역시 그러하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시대는 어떠했는가. 아이돌과 팬덤 현상이 없었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현상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권력을 누리는 권세자들이라면 더욱이 그 권세가 천하를 호령하는 절대 권력의 소지자들이라면 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게 이 현상이다. 진시황과 서태후 같은 이들, 다수의 로마 황제들이 극명한 사례를 보여준다. 근대에 와서는 루이 14세,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연산군 같은 이들이 비극의 주인공이라 하겠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신격화하거나 절대시하게 했다. 그래야 권력을 견고하게, 그리고 장기 집권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역사는 이런 이들에게 폭군(tyrant), 폭정(tyranny)이라는 용어로 평가했다. 역사가 그렇게 교훈했음에도 왜 그토록 진리에 무지했을까. 권세가 영원하지 않음을 이들은 정말 몰랐을까!

5. 아이돌과 팬덤, 어떤 시뮬라시옹
고대의 권력자들이 아이돌 행세를 했다면 대체로 나르시시즘(narccisism)에 의한 것이었다. 최고 권력이 주는 매혹에 함몰해 버린 것이다. 절대반지를 탐닉하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JRR 톨킨)들인 셈이다. 권력으로 인해 자기도취에 빠진 이들이 행하는 일이란 게 그저 역사의 비극일 뿐이다. 민중은 고통에 신음하고 사회는 빛을 잃어간다. 하지만 섭리는 백성 편이어서 백성들 안에 의분(義憤)과 거센 저항, 봉기가 일어난다. 그것은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불길이다. 민중의 준엄한 거사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한 과정이라 하겠다.

아쉽게도 이 현상은 현대의 대중문화에 와서 역전된다. 아이돌과 팬들 관계 사이에 욕망(desires)이 끼어든다. 이 욕망은 대중의 진실, 현실과 관계없이 문화 산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허상이다. 없는 욕망을 만들어 내거나 잠재의식 안에 있는 것을 포장해 낸 것이다. 대중문화 속에 활약하는 아이돌은 고전 시대의 영웅에 대한 투사(projection)이거나 환영이다. 그들의 실제 모습과는 상관없이 특정 내러티브에 의해 꾸며진 대상이다. 꼭두각시 인형에 가깝다. 대중은 아이돌과 함께 웃고 울지만 그것은 사이버 세계에서 일어나는 가상현실처럼 느껴진다. 시뮬라시옹(simulation, 부르디외)이라는 착각이다. 아이돌은 대중의 아바타로 받아들여진다. 현실 안에서 벌어지는 가상세계는 착시 현상이지만 지속된다. 왜냐하면 누군가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문화 산업은 문화 콘텐츠라는 명분으로 아이돌과 팬을 연결시킨다. 대중의 의식과 내면을 조정하기 어렵지 않게 된다. 대중조작이다.

여기서 현대의 지배와 피지배 양상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대중을 손아귀에 넣고 조작할 수 있는 권력을 두고 헤게모니 전쟁이 벌어진다. 엔터테인먼트는 거대한 기업이 되어 사회를 오락 제국으로 재편해 간다. 대중은 아이돌이 등장하는 버라이어티 쇼에 환호하며 영혼을 건네준다. 아이돌과 함께 누렸던 행복은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이요 신기루였다. 티켓으로 구입한 상품이었다. 쇼가 끝난다고 대중은 잠에서 깨어날까.

6. 우리 곁에 온 정치 팬덤
아이돌과 팬덤 현상은 현대에 와서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드디어 대기업이 문화 산업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 거대한 이익 창출 시장에 그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선량한 시민들, 순진한 청소년들과 아이들까지 대중에 편입시킨다. 현대 사회는 문화 대기업과 그들이 지배하는 대중으로 양극화되어간다. 이때 경각심을 가져야 할 시급한 문제는 바로 아이돌과 팬덤 구조 안에 정치 세력이 개입하는 경우다.

현대에 와서 인기를 먹고 사는 집단이 있다면 단연 정치인이다. 정치란 참으로 속 다르고 겉 다른 수박이라 하겠다. 더구나 권력 투쟁에 올인하는 이들이라면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하게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현대는 정치인 스스로 만능 연기자, 유능한 연예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인기가 곧 밥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아이돌 현상의 원조격이라 칭한 사례를 언급했다. 현대에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외적 형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대표적 사례가 독일 나치주의다. 히틀러가 아이돌 역할을 극적으로 연기했다. 그는 국민 선거로 당당히 수상에 올라선 다음 최고 지도자에 총통이라는 전무후무한 절대 권력을 쟁취했다. 나치주의자들이 연출한 정치 엔터테인먼트에 국민들은 세뇌되어 맹목적으로 따랐다. 이른바 충성 서약을 통해 게르만 민족과 독일 제3 제국에게 무조건적 충성을 맹세하게 했던 것이다. 결국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히틀러를 정치적 메시아로 숭배할 정도로 광풍은 거세게 불었다. 유대인 대학살(Holocaust)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치가 문화 산업을 교묘하게 활용했기에 가능했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아이돌-팬덤 관계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부패하고 사악한 의도가 개입한 아이돌-팬덤은 사례에서 보듯 위험하고 경계해야 한다.

‘아이돌과 팬덤’ 현상은 이제 국제적으로 퍼져 있다. 정치적으로도 과감하게 활약하는 중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기타 많은 나라에서 정치인들이 아이돌 흉내를 내고 있다(이름을 거명하지 않아도 그 장본인들이 짐작되리라). 그들은 정권을 목표로 인기몰이하는 정치 스타인가, 아니면 대중 스타들이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연기하는 사이비 정치인인가. 정체가 불명확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보인다. 일명 오빠 부대다. 정치인 지지 세력에 오빠 부대가 활약한다. 이들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무조건이야’ 하며 노래 부른다. 저돌적 추종세력, 무비판적 맹목적 지지자 그룹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는 상식과 교양은 뒷전이다. 나치의 돌격대(SA), 친위대(SS)같이 돌격만 있을 뿐이다. 합리적 토론이나 상생, 협치 같은 것은 없다. 이들에게는 ‘너 죽고 나 살자’만 있을 뿐이다. 열매에서 그들을 알리라! 그 행동들에서 그렇게 읽힌다. 과거 중국 공산당의 홍위병 운동 같다. 팬덤은 기어코 팬텀(phantom·유령)이 되고 말았는가. 건강하고 균형 잡힌 팬덤 문화는 어디로 갔는가. 이 시대의 해괴한 유령이 세상을 휘젓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가 여기에 오염되어선 안 될 것이다. 아니 정치가 오염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7. 팬텀의 시대여 돌아오라!
현대는 궁핍한 시대이다. 여러모로 궁핍하다. 어떤 이는 광야 시대라 하며 원시 야만시 대가 다시 돌아온다고 경고한다. 남극과 북극, 고산지대의 만년설이 녹아내린다. 세계는 기후 위기 한 가지만으로도 종말이 가깝다고 말한다. 하지만 종말의 징후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경고를 회개의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참조 마태복음 24장). 이런 와중에 종말론으로 장사하는 파렴치한들도 있기는 하다. 자기 배만 위하는 자들(롬 16:18)이 여기저기서 활개친다. 이게 죄인된 인간 군상의 세상이니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어쩔 수 없겠지만 믿는 자들은 말씀에 굳게 서야 할 것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오래전 시인 횔덜린(Hoelderlin, 1770~1843)이 절규하듯 노래한다. “시인은, 이 궁핍한 시대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Wozu Dichter, in duerftiger Zeit!) 세상이 온통 각자도생으로 난리도 아니다. 집값은 치솟고 금리도 덩달아 오르고 불황에 소상공인들은 죽을 맛이라 한다. 영끌족들은 불안의 밤낮을 보내고 신혼부부들은 아이 갖기를 꺼리며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민국호가 흔들린다고 야단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는 야만적 격투기급 이전투구 중이다. 민생은 어디 갔는가! 이 시대는 국지적 종말을 살아간다. 믿는 자들은 이 궁핍한 시대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시 95:7~8) 완악해진 시대정신. 주님 말씀에 청종해야 산다. 부패하고 완악해진 마음에서 새 영으로 부드러운 마음(겔 36:26)으로 변화 받아야 한다. 예수의 심장이 다시 우리를 권고하시고 붙잡는다. 십자가! 십자가를 붙잡으라! 은혜와 사랑이 세상을 이길 것이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산다.

이제 우리를 미혹케 하려는 어두운 영에 대해 단호히 맞서야 한다. 영적 전쟁 전선이 바로 여기다. 대중문화를 타고 시대를 흔들려는 미혹의 영을 대적하라. 양보는 없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골 2:8) 문을 열면 허황된 팬덤이 팬텀이 되어 우는 사자처럼 삼키려 하는 시대이다. 유행하는 시대정신이라고 다 믿고 따르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를 세상과 싸워 이기게 하시되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예수의 영과 사랑으로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이 승리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세상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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