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더이상 달러만 받진 않는다"…충격 소문의 진실 [이슈+]

김리안 2024. 6. 1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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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구글 최다 검색 '페트로달러'
美 전문가 "애당초 그런 협정 없어"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탈(脫)달러화로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온라인상 일각의 음모론에 대해 "근거없는 낭설"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우디의 갱신 여부가 화제를 모은 '페트로달러' 협정이란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페트로달러란 사우디가 원유 수출 대금을 달러로만 결제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합성어다. 미국의 경제 및 외교 전문가들은 "그동안 사우디가 달러로 석유 결제 대금을 받은 것은 페트로달러 협정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달러 자체의 국제적 위상 때문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페트로달러 협정, 원래 없었는데 뭐가 만료? 

17일(현지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지난주 구글에서 '페트로달러'라는 용어의 검색량이 폭증해 200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 X(옛 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충격적인 소식이 퍼지면서다. 미국과 사우디 간 50년 된 페트로달러 협정이 사우디의 갱신 거부로 만료됐고, 이에 따라 사우디가 더 이상 석유를 달러로 가격 책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페트로달러는 50년 간 미국이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데 일조했다. 이 협정의 만료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달러의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졌다.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5대 신흥경제국 소식을 전하는 매체 브릭스뉴스 등은 "사우디는 향후 위안화, 엔, 유로 등 다양한 통화로 석유를 판매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 월가와 외교계의 전문가들은 이를 일축하고 있다. 해당 협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UBS의 폴 도노반 글로벌 자산 관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4일 자신의 블로그에 "현재 퍼지고 있는 이야기는 명백한 가짜 뉴스"라며 "1974년 6월에 미국과 사우디 간에 협정이 체결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협정은 통화와는 관련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우디가 그 이후에도 한동안 영국 파운드화를 (결제 대금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그 근거"라고 했다.

달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기축통화로 등극했으나 197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는 '닉슨 쇼크'가 터지며 그 위상이 한 차례 흔들렸다. 이때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가 대안으로 생각해낸 것이 페트로달러 체제다. 모든 국가들이 사용하는 석유의 대금을 달러로 지급하게 해 달러 수요를 유지하자는 생각이었다. 1973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수출 금지 조치로 일어난 오일쇼크는 미국과 사우디의 협력 구상에 불을 붙였다.

OPEC의  금수 조치로 인해 급등한 유가로 사우디는 달러가 넘쳐났고, 이를 이용해 경제를 산업화하고자 했다. 동시에 미국은 사우디와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 사우디가 달러를 다시 미국 경제에 재투자하도록 유도하고자 했다. OPEC의 금수 조치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경제 불안정이 재발되지 않게 하려는 니즈도 있었다. 이에 양국은 이듬해인 1974년 6월 8일 맺은 협정으로 미국-사우디 경제 협력 공동 위원회를 설립했다.

"주요국들이 달러 쓰는 한 사우디도 달러에서 못 벗어나"

이 협정은 원래 5년간 지속될 예정이었으나, 여러 차례 연장됐고 현재는 지속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도노반 이코노미스트는 "해당 협정에는 사우디가 석유 가격을 달러로 책정한다는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1974년 말 미국과 사우디 간 비밀 협정이 있긴 했다. 이는 사우디가 석유 판매 수익의 일부를 미국 국채에 재투자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군사 원조와 장비를 제공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비밀 협정은 2016년 블룸버그통신이 정보공개법(FOIA) 요청을 통해 밝혀지기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보도로 미 재무부는 처음으로 사우디의 국채 보유액 규모를 일반에 공개했고, 사우디가 미국의 주요 국채 보유국 중 하나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유라시아 그룹의 그레고리 브루 분석가는 "(페트로달러 체제가 끝났다는)그 어떤 음모론의 증거도 희박하거나 아예 존재하질 않는다"며 "오히려 1970년대 글로벌 석유 파동 이후 사우디의 달러 잉여분이 글로벌 경제에 미칠 타격에 대해 양측이 공감하고 상호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게 정설"이라고 말했다.

페트로달러 협정의 존재 여부나 만료 여부에 상관 없이 달러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사우디가 중국 위안화를 원유 결제 수단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잇따르면서다. 특히 중국의 부상으로 사우디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줄타기를 하기 위해 탈달러화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달러의 글로벌 비중이 점진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통화가 달러 자리를 대체할 만큼의 점유율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호주 달러, 캐나다 달러, 중국 위안화와 같은 비전통적 기축통화로 보유 자산을 늘리고 있다. 이는 탈달러화보다 다양화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마켓워치는 "사우디의 미국과의 긴밀한 경제 및 군사적 관계, 그리고 대부분의 글로벌 석유 거래 시스템이 여전히 달러화를 요구한다는 사실은 사우디가 여전히 달러를 주요 결제 수단으로 선호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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