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넘는 아파트가 이 지경" 부글부글…집주인들 결국 [이슈+]
"아파트값 걱정돼도 남은 대안은 집단 소송뿐"
실제 분쟁조정위서 하자 인정 비율 55% 불과해
신축 아파트에선 '입주 지연' 등 피해도
인천 서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해 시공사를 상대로 '하자보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전체 647가구의 95%인 640가구가 소송에 참여한 상태다. 이 중 256가구에서 타일 시공 하자가 발생했다. 입주민인 A씨 역시 "화장실 타일이 떨어지다가 이젠 벽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이 아파트는 2019년부터 입주가 시작됐지만, 2020년부터 본격적인 하자 문제가 불거진 곳이다. 시공사는 2021년까지 정상적으로 하자 접수를 받다가 돌연 접수를 중단했다. 이에 입주민들은 시공사와 분쟁을 겪다 결국 소송에까지 나섰다. A씨는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배상금액은 각 가구당 250만원으로 그렇게 크지 않다"며 "시공사가 주민들의 불안함을 제대로 해소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가격이 몇억짜린데 억울하고 분하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건설사의 부실시공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각 자치단체는 아파트 사전 점검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신축 아파트 뿐 아니라 수년 전에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들도 여전히 하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입주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하자 소송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값 걱정·입주 지연에도 "마지막 대안은 소송 뿐"
10대 건설사의 사업보고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10대 건설사가 아파트 입주민과 벌이고 있는 하자 관련 소송은 총 140건에 달한다. 건설사당 평균 소송 건수는 17.5건, 소송액은 692억원이다. 전체 소송액은 5538억원 규모다.
아파트 하자 소송이 시작될 경우 입주민들은 소송 비용만큼이나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로 타격을 입을 '집값'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단체 소송으로 인해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악화하면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단 우려에서다. 현재 단체 소송 중인 한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소송에 나선 것은 맞지만, 문제가 있는 아파트란 식으로 더 이상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줄까 봐 주민들도 조용히 해결하는 것을 원한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소송을 할 경우 판결이 나올 때까지 몇년씩 소요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입주민들은 소송 말고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집단 하자가 발생하면, 시공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소송으로 끌고 가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를 활용해도 하자를 인정받는 건 전체의 절반 정도다.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가 올해 2월까지 최근 5년간 하자 판정을 한 1만1803건 중 하자로 인정된 비율은 전체의 55%(6483건)였다.
입주민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하면 개인으로 할 때 보다 비용이 절감되고, 직접 법원에 출석할 일도 없지만, 증거 보존을 이유로 하자가 있는 부분을 그대로 둔 채 거주해야 하고, 이 기간 매매나 전세 계약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올해 3월 한 신축 아파트로 입주했다는 B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안방 천장에서 물이 흘러내려서 벽지가 다 떠서 엉망인 상태"라며 "하자 접수는 했는데 바로 처리가 안 되고 있고, 혹시 소송에 갈 수도 있어 수리도 안 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안방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하냐"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특히 신축 아파트에서 다수의 하자가 발견되면 입주민들은 입주 지연 등의 피해를 보게 된다.
지난달부터 사전 입주가 시작된 광주 동구의 한 신축 아파트도 하자 분쟁으로 입주가 늦어지고 있다. 입주 예정자들은 누수, 마감 불안정, 시공 불량 등 가구당 평균 150건의 하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보수가 될 때까지 입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전체 99세대 가운데 34세대만이 사전 입주를 결정한 상태다.
현재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리고 시공사에 하자 보수를 요구하는 등 단체 행동을 벌이고 있다. 입주민들은 평당 분양 비용이 2000만원이 넘고 발코니 확장 등의 옵션을 넣으면서 10억원이 넘는 비용을 들였음에도 건설사에서 제대로 된 보수를 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비대위 측은 14일 동구청 앞에서 연 항의 집회에서도 "준공 승인으로 시공사는 자신들은 할 것 다했다면서 책임을 미루고 있다"며 "입주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이렇게 부실시공한 것은 사기분양이나 다름 없다. 구청은 준공 승인을 취소하고 지금이라도 안전점검을 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해당 아파트 인근에서 8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한 50대 박모씨는 "대부분의 입주자들이 입주를 거부하고, 잔금일을 무기한으로 늦추고 있다"며 "하자 이슈가 점차 커져서 전세 보증금 시세도 계속 빠지고 있다. 분양받은 예비 입주자들만 속 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인인 입주자 두명은 전에 살던 집을 팔아버려서 일단 15일에 불가피하게 입주하기도 했다"며 "아파트 입지는 참 좋은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는 시공사 측에 입주 예정자들의 요구 사항을 담은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묘연 법무법인 집현전 수원 변호사는 "시공사나 시행사는 입주민들이 하자를 문제 삼지 않도록 1~2년까지만 하자 보수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신축 아파트에서만 주로 하자 문제가 발생한다는 건 착각"이라며 "실제로 점검에 참여해보면 균열, 누수처럼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시멘트 양과 강도가 도면과 다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500세대 기준으로 채권 양도 비용, 하자 진단비, 감정비만 해도 들어가는 비용이 1억원 가까이나 된다"고 덧붙였다.
'애매모호' 하자의 기준…"소송 남발한다" 반박도
다만 일각에서는 부실 아파트 논란에 따라 우후죽순 생겨난 아파트 하자점검 업체가 단체 소송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 시공만으로 해결되는 경미한 하자라도 전부 보수 신청을 하고, 심지어 법무법인이 직접 점검업체를 세우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올해 8월 입주를 앞둔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 시공사는 지난 15일 아파트 사전점검 시 전문 업체를 대동하지 못하게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공사는 "사전 점검 시간에 발생하는 혼잡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시공사의 이런 행동이 위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주택법 제48조 2항에 따르면 주택 사업 주체는 사용 검사 전 입주예정자의 주택 점검 등을 도울 의무가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연 어디까지가 하자인지를 명확하게 가르기 어렵기 때문에 입주자들과 '기획 소송'에 나서는 법무법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아파트가 우리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 높은 가격 등을 고려하면 입주민들의 편의가 최우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해야 소위 '남는 공사'했다고 말하는 업계 구조도 개선해야 근본적으로 하자율을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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