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삼키는 에어인천, 재무적 투자자들 출구까지 열어줘야… ‘산 넘어 산’

노자운 기자 2024. 6. 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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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약체’ 평가에도 아시아나 화물 품어
한투PE 등 제값 받고 나가는 게 관건
/에어인천 제공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의 새 주인으로 저비용항공사(LCC) 에어인천이 낙점됐다. 화물사업부 매각 주체인 대한항공은 17일 이사회를 열고 에어인천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며, 다음 달 중 매각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화물사업부 인수전에 뛰어든 세 후보 중 에어인천이 규모와 자금력 면에서 가장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만큼,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을 ‘복병의 역전승’으로 평가한다. 다만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아시아나 화물사업부를 삼키는 게 에어인천 측에 정말 이득이 될지에 대해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인수대금 납입(클로징)까지는 가능하겠지만, 향후 회사를 잘 경영해 재무적 투자자(FI)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까지 잘 마무리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4500억은 구주 가격… “신주 인수에만 최소 2000억 더 필요”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전날 에어인천을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인수 우협으로 선정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에어인천은 약 2주간 상세 실사를 진행한 뒤 7월 말까지 주식매매계약(SPA)을 완료할 계획이다.

에어인천은 예비입찰에 뛰어든 3개 후보(이스타항공·에어프레미아·에어인천) 중 가장 먼저 투자확약서(LOC)를 제출했다. 에어인천 대주주인 소시어스와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가 FI로, 코스닥 상장사 인화정공이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하기로 했다. 인수금융은 한국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이 맡기로 했다.

에어인천 컨소시엄이 제안한 인수 가격은 약 45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는 구주 인수 자금일 뿐, 향후 신주 인수에 최소 2000억~3000억원이 더 들어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이는 최소치일 뿐, 2배인 4000억~6000억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 “어쩌면 구주보다 신주 인수가 중요한 만큼 에어인천에서 신주 인수 자금 조달 계획까지 상세히 적어서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화물사업부가 안고 있는 4000억원대 부채를 제외하고도 에쿼티(지분) 인수에만 약 1조원이 필요한 셈이다.

인수금융 담보인정비율(LTV)이 50%라고 가정할 때, 컨소시엄은 약 5000억원의 지분 인수 대금을 모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에어인천은 유동자산이 217억원밖에 안 되고 지난해 156억원의 적자를 낸 만큼, FI를 어떻게 모으느냐가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IB 업계에 따르면 소시어스는 블라인드 펀드가 없어 그 대신 프로젝트 펀드로 참여하고, 한투PE는 기존 블라인드 펀드나 자체 자금(PI)을 활용하기로 했다. 소시어스의 프로젝트 펀드에는 선박 엔진 부품 제조사 인화정공 등이 출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인천 컨소시엄이 인수 자금 마련 계획을 어떻게 적어서 냈을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컨소시엄은 전체 인수 대금의 70~80%에 대해서만 LOC를 냈거나, 아니면 증권사 등이 소시어스의 프로젝트 펀드에 LOC 언더라이팅(금융 기관이 증권의 판매를 보증하는 것)을 해줬을 가능성이 크다. 펀드 운용사가 출자자(LP)를 다 못 모았을 때 금융기관이 대신 나서서 ‘LP가 안 모인다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일종의 보증서를 써주는 것이다.

한 PE 관계자는 “프로젝트 펀드 LP들은 우협으로 선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LOC를 써주진 않는다”며 “금융사가 위험 부담의 대가로 수수료를 받고 LOC를 써준 뒤, 우협이 되고 나서 운용사가 본격적으로 LP를 모으고 다니는 게 일반적인 프로세스”라고 설명했다. 언더라이팅은 공제회 같은 LP는 할 수 없고 주로 증권사들이 한다.

◇ FI들 엑시트까지 책임져줘야… IPO 아니면 M&A도 방법

업계에서는 향후 에어인천이 아시아나 화물사업부를 어떻게 경영해나갈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화물사업부 인수 리스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그간 많이 나왔던 것에서 보듯,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할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우선 이번 매각 대상에는 여객기 하부에 화물을 싣고 나르는 밸리카고가 포함되지 않았다. ‘여객 부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화물기 11대만 팔리는 구조인데, 투자안내서(IM)를 본 업계 관계자는 “화물기들이 지나치게 낡아서 전부 교체해야 하는데 기종도 들쑥날쑥 제각각이라 굉장히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조업(항공화물 운송용 컨테이너와 터미널에서 운반해 온 화물·수하물을 기체에서 내리고 싣는 상·하역 서비스)과 격납고도 매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기존 화주와의 계약이 승계된다는 보장은 없고, 사업부 직원 전원의 고용은 승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애초에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은 LCC들이 ‘최후의 승자’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LCC 1, 2위 사업자인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은 꾸준히 아시아나 화물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예비입찰조차 참여하지 않았다.

FI들이 엑시트할 수 있도록 출구를 열어주는 것도 에어인천이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히 대주주 소시어스는 아직 소형 PE로 분류되기 때문에 LP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소시어스는 에어인천과 아시아나 화물사업부의 통합 법인을 오는 2026년까지 상장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기업가치를 얼마나 인정받고 상장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항공 화물 사업 자체가 대외 변수에 민감한 데다 IPO 시장 상황도 한 치 앞을 내다보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상장만 바라보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상황에 따라 에어인천이 M&A로 우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대주주 소시어스가 에어인천 경영권을 매각하고 나갈 때 이번에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인수에 뛰어든 FI들도 같이 엑시트할 수 있도록 미리 장치를 마련해 놨을 공산이 크다. 한 PE 고위 관계자는 “이 경우 FI들이 보유한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주식을 에어인천 주식으로 스왑해서 같이 팔 수 있도록 하든가, 아니면 소시어스가 에어인천을 팔 때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지분도 패키지로 묶어서 FI들도 일괄 매각할 수 있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SI로 참여하는 인화정공도 변수다. 인화정공은 2018년 소시어스 PE와 웰투시인베스트먼트가 글로벌 2위 선박엔진업체 HDS엔진을 인수할 때도 컨소시엄에 참여했다가 2021년 완전 인수했고, 지난해 자금 부담 때문에 지분 대부분을 한화그룹에 매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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