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돌림노래…‘진심’ 맞나요

이우연 기자 2024. 6. 1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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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이우연의 우연히 여의도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가 국민의힘 위원들과 법무부 차관의 불참 속에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힘당이 대놓고 일하지 않겠다고 (국회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니까 이번을 계기로 무노동 무임금 한 번 가보자. 국힘당 여러분 모두 다 세비 반납하거나 아니면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12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왜 언론이 국민의힘의 행태에 대해서 무노동 무임금을 내세워 비판하지 않는지, 학생이 학교에 안 가면 퇴학당하는데 왜 국회의원들은 일을 안 해도 퇴학 안 당하는지 알 길이 없다.”(최민희 민주당 의원, 12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

지난주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의 입에서는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말이 자주 들려왔습니다. 상임위를 비롯해 국회 일정을 거부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겨냥해 “일하지 않으면 세비를 반납하라”는 주장이었죠.

18일, 개원한 지 3주째에 접어드는 22대 국회는 ‘두 개의 국회’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야당 의원들만 참여하는 국회 상임위고요, 하나는 여당 의원들이 정부와 함께 하고 있는 당 특별위원회입니다.

이게 다 ‘원 구성 협상’ 때문입니다. 새로운 국회가 시작될 때, 국회 상임위원장(22대 기준 18개)은 교섭단체(원내 의석 20석 이상) 원내대표들이 협상해 배분합니다. 특히 본회의 전 마지막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을 확보하려는 여야의 싸움이 치열합니다. 22대 국회에서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확보하려고 대치했습니다. 이번 국회에서 171석을 얻은 ‘거야’ 민주당은 협상이 제자리를 맴돌자 “국회법대로 하자”며 지난 10일 밤 야당 단독으로 11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11개 상임위 회의는 여당 의원들 없이 진행되고 있고, 나머지 7곳 상임위를 둘러싸고도 여야는 좀처럼 협상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의원들이 여당 의원들을 향해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일제히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들의 세비를 깎자는 법안도 발의됐습니다. 황정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일하는 국회법’(국회 보좌직원 및 의원수당법·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는데요, 국회의원이 장관직 수행이나 당대표 직무수행 등의 정당한 사유 없이 회의에 불출석할 경우 국회의원 세비를 불참일수 1일당 10%씩 삭감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황 의원은 “일하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으나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본회의를 보이콧하며 아무런 제재 없이 법에 명시된 회의까지 불참했다. 국민의힘이 일을 하지 않겠다면 혈세라도 반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원 구성 협상 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자는 주장은 처음이 아닙니다. 원조는 국민의힘 전신 정당인 보수 정당입니다. 2008년 18대 국회 때 원 구성이 여야 대치로 지연되자, 한나라당 초선의원 33명은 1명당 평균 720만원인 6월 세비를 모아 결식아동에게 후원했습니다. 2012년 19대 국회에선 법정시한을 27일 넘겨 원 구성이 됐는데,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거쳐 6월 세비 전액을 반납하기로 결의하고, 이에 동의한 의원 147명의 세비 13억6000만원을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에 기부했습니다. 20대 국회에선 원 구성이 법정시한보다 이틀 늦었는데, 국민의당 의원 38명이 이틀치 세비 2872만원을 반납하겠다고 의결하기도 했습니다.

정당 계보상 ‘직계’로만 봐도 원 구성 협상 지연의 책임을 지겠다며 두 차례나 무노동 무임금을 ‘솔선수범’한 국민의힘이, 이번엔 원 구성 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자 국회 일정까지 거부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국민의힘이 일하지 않는다”며 타박하고 있는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석수가 모자라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던 과거엔, 국회 임기가 시작되고 원 구성 법정시한이 지나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국회가 공전했습니다.

이건 결국 무노동 무임금 주장이 일회성 이벤트나 상대 당 공세용이기 때문 아닐까요? 사실, 그간 국회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기회가 없지 않았습니다. 직전인 21대 국회만 해도, 민주당은 의원들이 국회 회의에 불출석할 경우 세비를 삭감하는 의원수당법 개정안을 5건이나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인 운영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딱 한 차례 짧게 논의된 뒤 서랍 속에 처박혔고, 결국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그나마 소위 때 논의 내용도, 무노동 무임금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감봉은 과도한 징계가 될 우려가 있고, 겸임위원회가 있는 상황에서 일정이 겹치면 불출석이 불가피한 상황도 있다는 반론이 주를 이뤘습니다.

올해도 돌아온 무노동 무임금 ‘돌림노래’는 좀더 진화한 것 같습니다. 세비 등 반납 사유로 기존에 거론된 회의 불출석 말고도 ‘재판’이 포함된 겁니다.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이 낸 의원수당법 개정안이 바로 그렇습니다.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될 경우 재판 기간의 세비와 수당을 반납하는 내용입니다. 지난 총선 당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개혁’ 방안으로 약속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여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진화했으되 ‘정쟁용’이란 성격은 여전한 게 아닐까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국회의원의 무노동 무임금이 적절한 수단인지, 게다가 정치개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수정당이 거대정당을 상대로 반대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일정 거부일 수 있고, 집회 같은 원외 활동이나 지역구 민심 청취도 큰 의미에선 의정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대화와 협의 위주로 돌아가야 하는 국회 안에 법의 울타리를 세우려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그래도 무노동 무임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요? 프랑스, 벨기에, 스웨덴 등 다른 나라들은 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냐고요? 최소한 법안심사소위엔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렇다면 의원님들, 이번 국회에선 무노동 무임금을 놓고 진지한 토론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상임위 회의에서요.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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