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년전 상형문자로 쓴 고전 국내 첫 완역… “인류 첫 소설에도 인간의 보편성 보여”

신재우 기자 2024. 6. 1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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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문헌학자인 유성환(54·서울대 인문학 연구소 선임연구원·사진) 박사의 질문에 답할 말이 없었다.

지난달 그가 고대 이집트어 원전을 완역해 출간한 '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지만 그만큼 국내에서 이집트 문학은 생소하고 먼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 박사는 이번 책을 시작으로 '난파당한 선원'과 '쿠푸왕과 마법사 이야기' 등 고대 이집트의 고전에 해당하는 작품을 원전 번역할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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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문헌학자 유성환 박사
‘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 펴내
“원전 번역, 인문학서 가장 중요”
‘쿠푸왕 이야기’ 등도 번역 계획
‘시누헤 이야기’ 속 고대 이집트인의 내세관은 ‘사자의 서’ 삽화에 묘사된 ‘최후의 심판’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휴머니스트출판그룹 제공,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시누헤 이야기’라는 제목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고대 이집트 문헌학자인 유성환(54·서울대 인문학 연구소 선임연구원·사진) 박사의 질문에 답할 말이 없었다. 지난달 그가 고대 이집트어 원전을 완역해 출간한 ‘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지만 그만큼 국내에서 이집트 문학은 생소하고 먼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전화로 만난 유 박사는 “‘시누헤 이야기’는 한국으로 치면 ‘심청전’ ‘춘향가’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며 “오랫동안 필사가 되고 전수가 됐다는 역사적 증거로 보아 일종의 고전의 지위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의 주인을 따르는 종자.” ‘시누헤 이야기’는 이 문장으로 시작해 귀족 시누헤가 전쟁 중 두려움에 휩싸여 탈영하고 노년에 이르러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았다. 놀라운 점은 이 이야기가 4000여 년 전 ‘상형문자’인 고대 이집트의 성각문자로 기록돼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유 박사가 세계의 여러 이야기 가운데 ‘시누헤 이야기’를 “최초의 소설”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명백하게 ‘창작’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록’했다는 것을 여러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당시 어떤 작가들이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누헤의 여정을 담은 훌륭한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강조했다.

“원전 번역이 사실 인문학에서는 제일 중요한 작업이에요.” 유 박사는 ‘베를린 파피루스 3022’ 등 원전 필사본을 바탕으로 영미권의 번역본까지 두루 참조해 국내 최초로 원전 번역본을 완성했다. 다른 언어를 거친 ‘중역’이 아닌 이집트어를 한국어로 옮긴 ‘원전 완역’이라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깊다. 고대 그리스를 연구하기 위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참고하듯 ‘시누헤 이야기’가 고대 이집트 연구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이미 ‘시누헤 이야기’를 포함해 많은 고대 이집트 문헌들이 번역돼 연구에 활용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제 겨우 한 편이 완성된 상황이다. 유 박사는 이번 책을 시작으로 ‘난파당한 선원’과 ‘쿠푸왕과 마법사 이야기’ 등 고대 이집트의 고전에 해당하는 작품을 원전 번역할 계획을 갖고 있다.

물론, 연구자들만을 위한 소설은 아니다. 유 박사는 이 최초의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질성’과 ‘보편성’을 문학적 가치로 콕 짚어 말했다.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나라와 거리가 먼 이집트의 생소함을 체험하는 한편 ‘왕과 나의 관계’ ‘신과 나의 관계’를 고민하는 시누헤의 모습에서 우리 인간이 가진 보편성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4000년 전 인물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괴로워하는 과정을 보면서 인간이 가진 보편성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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