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폐지론, 민주당內 노선 투쟁 불붙었다
● “왜 민주화 세력은 개발 반대해야 하나”
● 文 정부서 세액 10배, 정권교체 촉진세
● 서울 ‘종부세 과중’ 동의 정도 가장 높아
● 2021년 서울 주택 10%가 종부세 대상
● “강남 타깃 실거주·재초환도 푸는데…”
● 보수, 국회선 親明·공론장선 非明에 밀려
[영상] 고민정 민주당 의원 작심발언
인터뷰가 온라인에 공개된 시점은 5월 24일이다.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가 사설에서 고 의원의 발언을 고리로 '종부세 폐지 공론화'에 나섰다. 민주당 열성 지지층은 반발했다. 의원들은 미묘하게 기류가 다르다. 일부 의원이 '폐지 반대' 입장은 냈지만 소수에 그쳤다. 당 지도부는 당론을 모으려는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폐지까지는 아니어도 조정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의미다.
종부세 폐지론이 비단 비명(非이재명)만의 어젠다라고 볼 수도 없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실거주 1주택에는 종부세를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5월 8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고 했다. 사석에서 나오는 발언은 더욱 적극적이다. 친명(親이재명)으로 꼽히는 재선의원은 "종부세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도그마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역구에도 종부세 부과 대상에 해당하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보도를 전제로 나눈 대화가 아니어서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민주당발(發) 종부세 폐지론은 서울 민심의 향배와 불가분의 관계다. 4·10 총선에서 민주당은 서울 48개 의석 중 37석을 휩쓸었다. 민주당 의석 비중이 77.08%다.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뺀 대부분 지역에서 우세를 보였다. 단, 비(非)강남권 중 한강벨트로 불리는 마포·용산·성동·광진·영등포·동작구에서는 비교적 표차가 적었다. 마포갑(조정훈 의원)과 용산(권영세 의원), 동작을(나경원 의원)에서는 국민의힘이 이겼다. '종부세 폐지'를 주장한 고민정 의원의 지역구는 광진을이다. 지난 총선에서 2위 후보와의 표차는 3.87%포인트다.
광진을은 오랫동안 민주당 텃밭으로 불렸다. 최근에는 표심 변화가 감지된다. 수년 새 신축 아파트 단지가 대거 들어선 결과다. 지난 총선에서는 자양3동, 구의3동, 자양4동에서 오신환 국민의힘 후보가 과반 득표를 했다. 3월 8일 고 의원을 만났을 때 그는 "정치인이 자기 표를 생각해서 해야 할 개발을 막거나 더디게 하는 건 정직하지 않은 일"이라 말했다. 5월 2일 인터뷰에서 이 답변을 재차 상기시키자 고 의원이 이렇게 부연했다. 6월호 지면에는 분량 문제로 뺐던 내용이다. '한강벨트 진보 정치인'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왜 민주화 세력은 개발을 반대해야 하나요. 서울이라는 도시가 만들어진 지 반세기가 지난 것 아닙니까. 1970~80년대에 건물을 지어 올린 도시는 노후화됐거든요. 대표적인 곳이 광진구예요. 새롭게 바꿔주는 건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해요. (4년 후 선거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세대가 집을 갖는 세대에 들어가잖아요. 이 사람들이 10억~15억 집을 갖고 있다고 무조건 보수화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정정당당하게 개발할 것 개발하고 나에 대한 평가는 정책적으로 정치적으로 받으면 되죠. 여당과도 싸우고 상임위에서도 치열하게 논의하면 고가(高價) 아파트를 가진 유권자도 고민하겠죠. '지역에 저런 정치인은 있어야지' 하면 저를 찍을 것이고요. 저는 그 힘을 믿어보고 싶어요."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 당시 분위기"
종부세는 노무현 정부 3년차인 2005년 도입됐다. 애당초 종부세 과세 기준은 주택 공시가격 9억 원을 넘는 다주택자들이었다. 부과 기준은 가구별이 아닌 개인별로 했다. 고액 자산가에 대한 '부유세' 성격이 짙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종부세 부과 대상을 6억 원 초과로 낮췄다. 또 개인이 아닌 가구별 합산으로 부과 기준을 바꿨다. 세금 부과 대상을 늘린 셈이다. 문재인 정부도 종부세 강화 쪽으로 세제를 개편했다. 명분은 집값 안정화였다. 문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2020년 신년사를 통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이와 달리 보수 정부는 줄곧 종부세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종부세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은 종부세를 지방세인 재산세와 장기적으로 통합하겠다고 공언했다. 집권 뒤 윤 대통령이 꺼낸 "과거 정부는 부동산정책 실패를 징벌적 과세로 수습하려 했다"(3월 20일 '도시 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 민생토론회 중)는 발언은 보수 정부의 시각을 또렷이 보여준다. 이렇듯 종부세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가르는 정치적 단절선이 돼왔다. 정책이 곧 정치가 된 몇 안 되는 사례다.
선거 승리의 원리는 단순하다. 나의 영토를 지키고 상대 영토의 일부를 빼앗으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종부세 완화는 국민의힘에 수세적 이슈다. 먼저 제안할 경우 '부자 감세 프레임'에 걸려든다. 의외성이 없다는 점에서 뉴스 가치도 떨어진다. 예상 범위 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치공학으로만 보면 종부세 완화는 민주당에 유리한 패다. 문제는 지지층의 정서를 거슬러야한다는 점에 있다. 보유세 강화를 주장해 온 진보 지식인 그룹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지난한 대장정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바로 이런 이유로 민주당이 종부세 폐지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진보 정책통으로 꼽히는 그는 민주당이 종부세 폐지에 나서야 '현대적인 진보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부세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도 내지 못한다고 본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기 나타난 부동산값 폭등이 오롯이 드러내는 바다. 되레 납세자를 분노하게 만든다. 정책의 목표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이다.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86(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세대와 97(1990년대 학번·1970년대 출생)세대다. 하나의 세계관 공동체다. 가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을 추진할 때 (진보 진영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된다. 종부세도 일종의 세계관세(稅), 적폐타도세(稅)가 돼버렸다. 총세액이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4000억 원에서 2021년 4조1000억 원으로 10배가 됐다. 정권교체 촉진세(稅)가 된 것이다. (종부세) 폐지에 준하는 개정론 등 우회로도 많은데 (민주당 내에서) 이에 대해서도 논의가 없는 상황이다."
과거 민주당과의 결별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쓴 동아시아연구원(EAI) 보고서 '부동산 정책과 후보자 도덕성: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슈가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를 보자. 이에 따르면 대선에서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다. 응답자의 31.1%가 1순위로 부동산 문제를 꼽았다. 1·2순위 응답을 합친 비율도 38.9%로 수위였다.주목할 지표는 '종부세가 과중하다는 데 동의한 정도'다. 종부세가 과중하다는 데 동의한 유권자일수록 윤 후보에게 투표했다. 서울의 경우 10점 만점에 6.40점으로 집계됐다. 표본이 적은 강원·제주를 빼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같은 수도권으로 묶이는 인천·경기(5.85점)보다도 도드라지게 높다. 서울에서는 최 소장 말처럼 종부세가 '정권교체 촉진세' 구실을 했다.
실제로 대선 직전 해인 2021년을 기준으로 보면 전국 종부세 대상 가구는 53만 호였는데, 이 중 41만 호가 서울에 있다. 서울 전체 주택(441만 호)의 10% 가까운 수치다.(최병천 '이기는 정치학' 109~110쪽)
고 의원의 '종부세 폐지' 인터뷰 이후 이를 옹호하는 글을 썼던데.
"종부세에 대한 집착을 벗어던지는 게 과거의 민주당과 결별하는 것이다. 같은 취지로 나는 지난해부터 실거주 의무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에서 '가당치 않다'는 말이 나왔지만 총선 앞두고 다 완화시켰다. 실거주 의무와 재초환이야말로 타깃이 강남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부자 감세'다. 그것도 풀었는데 종부세를 못 풀 이유가 없다."
왜 종부세만 나오면 민주당 내 논쟁이 전쟁처럼 격화할까.
"종부세가 이념화된 것이다. 종부세 대상자가 광범위해져서 취지가 빛을 바랬는데도 유지하는 건 이념화다. 물론 종부세 완전 폐지는 부동산시장에 변수가 될 수 있다. 가령 반포의 30평대가 30억~40억 원 한다. 이처럼 가장 윗구간을 대상으로는 종부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초부자를 대상으로는 일정하게 유지하되 전반적으로는 조정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 초부자를 대상으로 한 세금도 그들을 때리기 위해 남기자는 뜻이 아니다. 종부세를 갑자기 없애면 부동산시장 안정을 해칠 수 있으니 남겨두자는 의미다. 당에서 어떤 분이 '종부세를 폐지하고 재산세에 초부자 구간을 두자'고 했는데, 오히려 그렇게 하면 또 '세금폭탄' 프레임에 갇힌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민주당에서는 시간문제일 뿐 종부세 완화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 보는 사람도 있더라.
"맞다. 당내서 종부세 폐지에 반대하는 의원도 검토해야 한다고는 한다. 또 하나는 실거주 은퇴자 문제다. 부동산은 차익을 실현해야 이득이 생기는데 실거주 은퇴자는 빚을 내 세금 내야 할 판이다. 그것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강남 40억대 아파트에 거주하는데 은퇴했다고 세금 깎아줘야 하느냐 등의 논쟁은 있겠으나,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문제다."
‘리액션' 정당 국민의힘
‘종부세 폐지론'과 관련해 국민의힘에서 가장 차별화된 입장을 낸 건 유승민 전 의원이다. 그는 6월 3일 페이스북을 통해 "감세도 도그마가 돼선 안 된다"며 "2024년에도 세수 펑크, 재정적자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썼다. 이어 종부세의 불합리한 부분을 고치자는 주장은 타당하다면서도 "개별 세금을 더 합리화하고 공정하게 하되, 전체 세수가 줄어드는 것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공정 과세'라는 보수주의자의 철학을 드러내되, 세수 감소라는 문제를 짚어 새로운 대치선을 만들었다.유 전 의원을 제외하면 국민의힘에서 유의미한 '종부세 어젠다'를 던진 인사는 없다. 이슈를 주도하는 에너지가 없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액션'이 아닌 '리액션' 정당의 모습이다. 지금 보수정당은 국회에선 친명에, 공론장에선 비명에 끌려간다. 민주당발(發) 종부세 완화론 국면의 또 다른 함의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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