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인생 ‘저녁’을 사는 사람들과 묵호에서 보낸 휴일

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2024. 6. 18. 07: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변호사 출신인 그는 몇년전 가족을 서울에 두고 묵호 시니어타운에 혼자 들어갔다. 나이 70을 앞두고 인생의 마지막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사진1> 석양이 지는 풍경은 아름답다. 인생의 석양도 그렇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진은 동해시 어달동 앞바다와 등대의 일몰 풍경. /마음건강 길

과거 시국사건이나 노동-정치적 사건들을 변호하는 사람들을 ‘인권 변호사’라고 불렀다면 그는 살인범·사이코패스 등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중범죄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변호하는 ‘민권(民權) 변호사’였다.

귀촌 3년 만에 그는 이승에서 보낼 마지막 보금자리를 발견했다. 묵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3층 건물을 인수해 직접 수리했다. 그는 나의 30년 지기다.

# 오늘은 내가 지인들과 함께 그의 새집을 보러 가는 길이다. 함께 가는 사람들도 30년 넘는 지기다. 한 분은 퇴역장군으로 6.25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지기라기보다 인생 대선배다. 강직하고 소신 있고 뛰어난 무장(武將)으로 정평이 나있다. ‘진짜 사나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진짜 군인’이다.

그에 대한 많은 일화는 본인의 입이 아닌 주변 사람들에 의해 사실로 인정되고 있으며 나도 그의 말을 대부분 믿는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때 특전사령관이던 그는 “만약 또다시 군부가 개입해 ‘제2의 광주사태’가 일어난다면 한국은 끝장 난다”며 휘하 707부대를 시켜 청와대 무력 쿠데타 계획까지 세웠던 일은 잘 알려진 얘기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도 그런 군인들의 주장을 가감 없이 받아들여 6.29 민주화 선언으로 이어진 것이다.

함께 가는 또 다른 사람은 신문기자 출신이다. 역시 30년 넘는 지기로 형님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다. 신문사를 나와서도 한국은 물론 아시아 기자들을 아우르는 단체를 만들고 소식을 전해주는 영원한 ‘현역 기자’다. 진보 언론 출신이지만 국가관이 뚜렷하고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 전직 군인과 기자 등 3명은 자동차로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전직 변호사의 묵호 새집을 찾아갔다.

메밀막국수와 전으로 점심을 먹고 묵호 바닷길을 걸었고, 저녁에는 동해 횟집에서 석양이 지는 바닷가를 바라보며 한잔 술을 기울였다.

취흥이 도도해지면서 우리는 과거 시절을 회상하고, 지금 사회를 얘기하며, 미래를 걱정했다.

우리 모두는 노을이 지는 인생의 ‘저녁’을 보내는 사람들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인상에 남는 이야기는, 퇴역 장군이 일선 사단장 시절 탈영병으로 몰린 방위병(군 숙소에 머물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군인)을 구해준 에피소드다.

한 방위병이 출근하지 않았다. 당시 방위병이 사전 허락을 받지 않고 결근하면 ‘근무지 이탈(탈영)’로 바로 구속되는 엄격한 군법에 따라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최종 결정권자인 사단장이 내용을 살펴보니 그 방위병은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채 신혼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만삭인 아내가 산기가 있어 병원에 데려가려고 하는데 돈이 없어 이곳저곳에서 빌리려고 하다가 출근을 못한 것이었다.

“당신들이 그 병사 입장이라면 아내를 놔두고 출근부터 하겠느냐?”

사단장은 이런 말로 영장 신청을 취소시키고 군목-스님-신부 5명을 불러 나무랐다.

“여러분들은 안에 있는 불우이웃은 챙기지 않고 밖에 있는 불우이웃에만 신경 쓰고 있다. 이런 병사야말로 우리가 도와줄 불우이웃이다. 당장 입원비, 치료비부터 마련해줘라”

# 그는 1970년대초 영관장교 시절 마련한 서울 양천구 목동 집에서 50년 넘게 살고 있다. 그는 전두환이 총애한 하나회 핵심 멤버였으며 특전사령관-육사교장을 지낸 군 엘리트중의 엘리트였지만 평생 군인의 길을 걸으며, 돈, 권력, 정치를 멀리하며 살았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그는 허름한 바지와 남방셔츠에 서류봉투와 달랑 칫솔 하나만 가지고 왔다. 정말 훈련 나가는 군인처럼 간소한 차림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는 사실 ‘부자’였다. 9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옛 전우·후배들이 서로 초청해 대접하려고 하고, 철마다 집에는 그네들이 보내주는 토속 농산물이 가득하다.

그는 아직도 꼿꼿하고 지팡이 없이 걸어 다니며 매사 소년처럼 긍정적이고 천진난만하다. 나는 왜 그가 인생 말년에도 당당하고 행복한지 그 비결을 조금 알 것 같다.

셰익스피어가 쓴 희극 중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란 것이 있다. 누가 봐도 그 퇴역 장군의 끝이 좋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선업(善業)의 결과다.

<마음건강 길>에서 더 많은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