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환만 보여요, ‘탈주’[한현정의 직구리뷰]
“내 앞 길 내가 정했습니다”
모두가 전력 질주인 가운데 무질서하다. 경기가 긴박하긴 한데 레일도, 바통 터치도, 주자도 어수선하니 몰입이 되다가 말다가 정신사납다. 게다가 곱씹어볼수록 허점 투성이다. 확실한 건 ‘MVP는 구교환’이라는 것뿐. 흥미롭게 뻗는 가지들이 혹하다가도, 정작 뿌리가 부실해 결국엔 위태로워지는, ‘탈주’(감독 이종필)다.
충무로의 두 대세 이제훈과 구교환의 첫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은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병사 규남(이제훈)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의 목숨 건 논스톱 추격전을 담는다.
만기 제대를 앞둔 ‘흙수저’ 규남(이제훈)은 캄캄한 미래를 바꿔보고자 막연하지만 자아가 있는 내일(미래)를 위해 목숨을 건 탈주를 계획하고 실행한다. (인민 영웅으로 이전 보다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도 박차고) 각종 위기에 지독하게 맞서며 포기하지 않는다.
그를 쫓는 ‘금수저’ 현상은 엘리트 오브 엘리트다. 예술적 감각도 남다른 데다 성소수자다. 그러나 꿈도, 정체성도 모든 걸 억누른 채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고자 고군분투한다. 다 보이고 들리고 가졌음에도 ‘자아’를 버리기로 한 그에게 뭣도 아닌 규남의 ‘자아찾기’는 어떤 이유로든 막아야 한다.
이 지점은 ‘탈주’의 강점이다. 단순한 귀순병사의 탈북기가 아닌, 자신의 열망하는 바를 위해 어디론가 탈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을 그리고자 했다는 것. 사회가 정한 기준이 아닌, 스스로가 원하는 미래를 선택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북한 배경의 장르물, 추격전과는 차별화 된다.
문제는 이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니 오히려 가로 막은 투머치 ‘무개연성’이다. 이제훈이 연기한 규남의 서사는 여러모로 현실성이 없고 빈약하다. 막연한 ‘신념’만으로 끌고가는 집착의 여정을 납득하기란 역부족이다. 오히려 현상이 탈북을 고민했다면, 모든 걸 동원해 이를 성공시키려 했다면, 그를 쫓고 가로 막는 게 유능한 군인 규남이었다면 훨씬 더 공감이 갔을 것 같다.
애초에 설정부터 잘못된 추격전을 애써 성공시키려다 보니 그 과정에 구멍이 숭숭 날 수밖에 없다. 마블 히어로급 총알 피하기부터 첩보물급 위기대처 능력, 위기의 순간 뜬금포 등장하는 (이솜이 이끄는) 유랑민 무리 등 개연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영화의 앞뒤 배치한 래퍼 Zion.T의 ‘양화대교’도 미스매치고.
이제훈의 연기 또한 (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인지, 그간 장인급 북한 사투리 연기를 많이 봐와서인지) 기대만 못하다. (들끓는 에너지는 압도적이지만) 어색한듯 아닌듯 아슬 아슬한 선에서 웃돌더니 중후반부엔 아예 드라마 ‘모범택시’ 연기를 펼친다. 오롯이 규남으로서 녹아들지 못한 채 무난한듯 겉돈다.
그래서인지 후반부가 되면 정작 규남의 탈주 성공 여부에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몰입은 안 된다. 오히려 현상에 대한 연민이 더 커진다. 이 또한 새로운 쾌감으로도 볼 수 있지만, 숨겨진 메시지를 찾는 묘미도 있지만, 주객전도가 된 인상도 적지않다. 두 배우의 에너지 합이 좋고, 서사의 변주 잠재력이 컸던 만큼, 이들의 서사와 전체 이야기의 조합에 더 디테일하게 신경 썼다면 훨씬 좋은 (감독의 의도한 대로)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논스톱 질주의 긴장감을 더하는 음악이라던지, 중간 중간 감칠맛 나는 북한군 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좋다. 여러모로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지만 그것을 조화롭게 아우르지도,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치밀하게 조합하지 못해 아쉽다. 초단순 플롯에 깊이감 있는 메시지, 강력한 에너지를 양껏 때려 넣었지만 질적 계산은 못한듯 하다. 그래서인지 9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억지로 늘린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안타깝게도 메가폰의 이상과 현실(역량) 사이의 괴리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7월 3일 개봉. 12세이상 관람가. 손익분기점은 약 200만 초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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