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심해, 기어이 파보겠다면 [편집국장의 편지]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일만 석유 시추 사업 관련 기사에 달린 포털사이트 댓글들을 쭉쭉 내려 보다가, 스마트폰을 터치하던 손가락이 멈췄다.
동해 석유 시추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5000억원'이 맞는가? 총비용에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사 고문의 방한 비용도 포함되었는가? 항공권과 호텔 숙박비, 기자회견장에 놓인 생수 값까지도 계산식에 정확히 넣었는가? 이런 식으로 '숫자의 마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일만 석유 시추 사업 관련 기사에 달린 포털사이트 댓글들을 쭉쭉 내려 보다가, 스마트폰을 터치하던 손가락이 멈췄다. ‘세월호 끌어올리느라 8000억원 썼다~’라는 댓글에서였다. 수많은 ‘좋아요’가 찍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기자 연차를 쌓는 일은 포털사이트 댓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맷집을 키워가는 것과도 일맥상통하지만, 이번에는 가슴이 시큰할 정도로 슬퍼졌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사람의 값과 석유(돈)의 값을 같은 비교선상에 놓고 저울질해보는 사고방식이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고 치자. 대한민국이 산유국이 되고 전 국민이 중동 부호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그깟 5000억원(한국석유공사 측이 밝힌 예상 사업비)’쯤 써볼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 정확히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세월호 인양에 썼다는 ‘8000억원’은 어디에서 나온 숫자인가? 아무리 자료들을 뒤져봐도 근사치는 찾을 수 없고, 2014년 6월8일 〈중앙일보〉 기사(‘세월호 인양, 빨라도 1년 예상…비용은 최소 1000억원’) 본문에만 유일하게 ‘8000억원’이 등장한다. 2012년 1월 침몰한 이탈리아의 크루즈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사례를 들며 “지금까지 이 배의 수습 비용으로 8000억원 이상이 들었다”라고 썼다.
10년 뒤 〈월간조선〉은 그래도 ‘실비’로 비용을 정산하려 노력했다. 세월호 참사 10년을 계기로 보도한 ‘집중취재’ 기사(2024년 4월호, ‘지금까지 쓴 돈은 약 2200억원…향후 예정 지출액은 최소 ‘3623억원+α’)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관리 비용에다가 ‘국민해양안전관’ ‘세월호 사고 희생자 추모관’ 총사업비, 건립 추진 단계에 있는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의 예상 사업비와 연간 운영비 등을 일일이 추산해 다 더했다. 심지어 목포시가 지출한 ‘노란리본 제작’ ‘유족용 컨테이너와 에어컨 임차’ ‘전기요금 납부’ 비용까지 포함했다.
그렇다면 똑같이 한번 물어보자. 동해 석유 시추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5000억원’이 맞는가? 총비용에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사 고문의 방한 비용도 포함되었는가? 항공권과 호텔 숙박비, 기자회견장에 놓인 생수 값까지도 계산식에 정확히 넣었는가? 이런 식으로 ‘숫자의 마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정 관점에 따라 특정 수치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수습에 쓴 돈이 아깝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거기엔 실체가 있었다. 죽은 아이들이 있었고, 오열하는 유족과 전 국민이 떠안게 된 트라우마가 있었다. 반면 ‘동해 유전’에는 아직 실체가 없다. 가장 낙관적으로 보아도 아브레우 고문의 분석에 따라 ‘성공 가능성 20%’다. 그를 100% 신뢰한다고 해도 여전히 ‘실패 가능성 80%’다.
석유가 나올 수도 있다. 나도 나오면 좋겠다. 하지만 이 정도 성공 확률의 사업에 그 정도 규모의 국민 세금을 쓰고 싶다면,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사업 절차가 합당한지, 새는 돈은 없는지,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가 국책사업을 좌지우지하지 않는지 정부는 계속해서 검증받고 추궁받아야 한다.
기어이 파보겠다고 하면 어쩌겠는가. 국민도 진실을 ‘시추’해볼밖에.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