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심해, 기어이 파보겠다면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4. 6. 18.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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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 석유 시추 사업 관련 기사에 달린 포털사이트 댓글들을 쭉쭉 내려 보다가, 스마트폰을 터치하던 손가락이 멈췄다.

동해 석유 시추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5000억원'이 맞는가? 총비용에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사 고문의 방한 비용도 포함되었는가? 항공권과 호텔 숙박비, 기자회견장에 놓인 생수 값까지도 계산식에 정확히 넣었는가? 이런 식으로 '숫자의 마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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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한국석유공사 동해탐사 6-1광구.ⓒ한국석유공사 제공

영일만 석유 시추 사업 관련 기사에 달린 포털사이트 댓글들을 쭉쭉 내려 보다가, 스마트폰을 터치하던 손가락이 멈췄다. ‘세월호 끌어올리느라 8000억원 썼다~’라는 댓글에서였다. 수많은 ‘좋아요’가 찍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기자 연차를 쌓는 일은 포털사이트 댓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맷집을 키워가는 것과도 일맥상통하지만, 이번에는 가슴이 시큰할 정도로 슬퍼졌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사람의 값과 석유(돈)의 값을 같은 비교선상에 놓고 저울질해보는 사고방식이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고 치자. 대한민국이 산유국이 되고 전 국민이 중동 부호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그깟 5000억원(한국석유공사 측이 밝힌 예상 사업비)’쯤 써볼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 정확히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세월호 인양에 썼다는 ‘8000억원’은 어디에서 나온 숫자인가? 아무리 자료들을 뒤져봐도 근사치는 찾을 수 없고, 2014년 6월8일 〈중앙일보〉 기사(‘세월호 인양, 빨라도 1년 예상…비용은 최소 1000억원’) 본문에만 유일하게 ‘8000억원’이 등장한다. 2012년 1월 침몰한 이탈리아의 크루즈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사례를 들며 “지금까지 이 배의 수습 비용으로 8000억원 이상이 들었다”라고 썼다.

10년 뒤 〈월간조선〉은 그래도 ‘실비’로 비용을 정산하려 노력했다. 세월호 참사 10년을 계기로 보도한 ‘집중취재’ 기사(2024년 4월호, ‘지금까지 쓴 돈은 약 2200억원…향후 예정 지출액은 최소 ‘3623억원+α’)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관리 비용에다가 ‘국민해양안전관’ ‘세월호 사고 희생자 추모관’ 총사업비, 건립 추진 단계에 있는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의 예상 사업비와 연간 운영비 등을 일일이 추산해 다 더했다. 심지어 목포시가 지출한 ‘노란리본 제작’ ‘유족용 컨테이너와 에어컨 임차’ ‘전기요금 납부’ 비용까지 포함했다.

그렇다면 똑같이 한번 물어보자. 동해 석유 시추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5000억원’이 맞는가? 총비용에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사 고문의 방한 비용도 포함되었는가? 항공권과 호텔 숙박비, 기자회견장에 놓인 생수 값까지도 계산식에 정확히 넣었는가? 이런 식으로 ‘숫자의 마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정 관점에 따라 특정 수치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수습에 쓴 돈이 아깝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거기엔 실체가 있었다. 죽은 아이들이 있었고, 오열하는 유족과 전 국민이 떠안게 된 트라우마가 있었다. 반면 ‘동해 유전’에는 아직 실체가 없다. 가장 낙관적으로 보아도 아브레우 고문의 분석에 따라 ‘성공 가능성 20%’다. 그를 100% 신뢰한다고 해도 여전히 ‘실패 가능성 80%’다.

석유가 나올 수도 있다. 나도 나오면 좋겠다. 하지만 이 정도 성공 확률의 사업에 그 정도 규모의 국민 세금을 쓰고 싶다면,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사업 절차가 합당한지, 새는 돈은 없는지,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가 국책사업을 좌지우지하지 않는지 정부는 계속해서 검증받고 추궁받아야 한다.

기어이 파보겠다고 하면 어쩌겠는가. 국민도 진실을 ‘시추’해볼밖에.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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