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수당 대신 ‘부모 수당’ 지급… 무직·자영업 사각지대 없애 [출생률, 유연 근무에서 답을 찾다]

이지민 2024. 6. 1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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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직장복귀’ 독려하는 독일
2007년 소득 기준 등 대대적으로 개편
수당 수급 대상 늘리고 기간은 확 줄여
男 육아휴직 비율 10년새 20%P 급증
일·가정 양립 중요한 축 공감대 형성
유연·재택근무 인재 영입 유인책 평가
IAB 설문서 59% 보상으로 ‘시간’ 선택
2019년부터 ‘시간제근로 발전법’ 시행
근로자 근로시간 변경 청구권리도 보장

올해 총선에서 육아휴직 급여 대상자를 자영업자까지 확대하겠다는 여당 공약이 나왔다. 육아휴직 급여가 고용보험기금에서 나가는 구조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총선용 ‘반짝 공(空)약’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독일에선 자영업자는 물론 무직자도 육아휴직 급여를 받는다. 육아휴직은 정규직 직장인만 쓰는 특혜가 아닌 것이다. 아울러 육아휴직 수당 대신 ‘부모 수당’을 지급해 무직자나 자영업자도 사회 안전망에 기댈 수 있다. 독일에서 이 제도가 만들어진 건 2007년이다. 그 전에는 여성만 24개월간 월 300유로(약 44만5000원)의 부모 수당을 받았다. 현재도 수급 상한과 하한은 있지만 2007년 전에는 중위소득 이상 가구는 수급 대상이 아니었다.
마이본볼프의 알렉산드라 메스머 커뮤니케이션 부서장(맨 앞 오른쪽)이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사무실을 찾은 한국 고용노동부 공동 취재단과 일·가정 양립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2007년부터는 소득 구분 없이 출생한 모든 부모가 대상이 됐다. 대신 24개월이던 기간은 12개월로 줄었다. 부모 육아휴직 기간 총 3년 중 나머지 2년은 무급이다. 양육자가 이어서 휴직할 시엔 2개월의 추가 수당이 지급돼 최대 14개월을 받을 수 있다. 출생 전 순소득의 65%를 대체해주며, 월 최대 1800유로(약 266만9000원), 최소 300유로가 보장된다.
6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에 있는 노동시장·직업연구소(IAB)의 안드리아스 필저 연구원은 2007년 육아휴직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 배경에 관해 “(수급 기간을 절반으로 줄여) 여성의 노동시장 복귀 기간을 단축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韓보다 37%포인트 높은 남성 육아휴직률

한국의 고용노동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 같은 역할을 하는 IAB는 지난해 연구에서 배우자가 6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쓸 때 여성의 75%가 9개월 뒤 노동시장에 복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에서 배우자의 육아휴직 기간이 짧을수록 여성의 노동시장 복귀 기간은 지속해서 늘어났다. 배우자가 아예 육아휴직을 쓰지 않을 경우, 출산한 여성은 자녀가 12세가 돼도 복귀 비중이 25%에 그쳤다.

독일에서 남성 육아휴직 비율은 10년 사이 20%포인트 가깝게 뛰었다. 2020년에 태어난 아이 중 아빠가 그해 육아휴직을 사용한 비율은 43.7%인데 이 비율은 2010년 25.9%에서 매해 조금씩 늘어났다.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010년 1.39명에서 2015년 1.60명까지 올랐고, 2021년 1.58명을 기록했다.

2020년 기준 독일과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 비율 격차는 36%포인트가 넘는다. 한국도 2020년 0.2%였던 남성 육아휴직률이 매해 올랐지만, 그래도 10년간 3.3%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31명에 1명 밑으로 떨어졌다.

민간에서도 남성의 육아휴직률을 높이는 게 일·가정 양립의 중요한 축이라는 공감대가 퍼져 있다. 글로벌 신뢰경영 평가 기관인 미국 GPTW에서 14년 연속 일하기 좋은 회사로 선정된 독일 정보기술(IT) 기업 마이본볼프는 전체 직원 900명 중 지난 한해 육아휴직을 개시한 직원이 여성 34명, 남성 24명이다. 임직원 평균 연령이 32세로 젊다는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 같은 기간 회사에 복귀한 인원은 여성 11명, 남성 30명이다.

마이본볼프의 창업자인 홀거 볼프 최고경영자(CEO)는 “가족 친화적인 기업으로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여성을 배려하는 것보다 남성을 배려하는 것”이라며 “(남성이 육아에 참여할 때) 여성들이 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연 근무, 인재 영입 위한 필요조건
독일 CEO들은 일·가정이 가능토록 하는 게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독일도 한국처럼 IT 인력난을 앓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연 근무와 재택근무는 인재들을 영입하는 유인책이 된다. IAB가 2022년 직원 100명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둘의 조합’(돈과 시간)을 택한 비율은 6%였고 ‘시간’과 ‘돈‘은 각각 59%, 34%를 차지했다.
(왼쪽부터) 마이본볼프의 최고경영자인 홀거 볼프, 커뮤니케이션 부서장 알렉산드라 메스머, 파트(FATH) 창업자인 최고경영자 비도 파트.
볼프 CEO는 “직원 절반은 일주일에 이틀만 회사에 출근하면서 재택근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했다.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시간제에서 전일제로 전환도 팀원과 미리 상의만 하면 횟수에 제한 없이 가능하다. 승진에 불이익이 있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시간제를 선택해도 승진 자격은 박탈되지 않는다”며 “다만 실질적으로 주당 40시간 일하는 사람이 20시간 일하는 사람보다 성과를 낼 기회를 많이 잡을 순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독일은 2019년부터 ‘시간제근로의 발전을 위한 법률‘을 시행해 근로자의 근로시간 단축·연장 권리를 보장했다. 이 법에 따르면 45인 이상 사업장에서 6개월 이상 다닌 근로자는 근로시간 변경을 사업주에 청구할 수 있다.

유연 근무나 재택근무가 대기업, IT 업종에 국한한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에 대한 반례도 독일에서 찾을 수 있었다. 1989년 설립된 기계부품제조 기업 ‘파트’는 직원 321명 중 74명(23%)이 주 38시간 이하로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다. 주 근로시간이 10시간 미만인 직원도 10명이나 된다. 창업자인 비도 파트 CEO는 “부서별로 조율만 하면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누구나 근로 형태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파트 CEO는 일·가정 양립이 될 때 직원들이 높은 생산성을 낸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물질적 가치가 아닌 ‘자아실현’, ‘취미생활을 할 시간’을 중시하는 직원이 늘고 있다”며 “젊은 세대의 가치관은 변했고, 그들을 위한 근로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뉘른베르크·뮌헨=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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