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나치 교훈서 비롯된 민주시민 교육, 포퓰리즘 맞서야”[2024 경향포럼]

김희진·이창준 기자 2024. 6. 1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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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경향포럼 인터뷰 | 민주 시민이란 무엇인가
임메숄츠 독일 녹색당 하인리히 뵐 재단 이사장
임메 숄츠 하인리히 뵐 재단 이사장(60)이 지난달 2일 베를린 하인리히 뵐 재단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베를린|김희진 기자

독일에는 정당과 연계된 정치재단이 있다. 초대 대통령 이름을 딴 사회민주당(SPD)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을 비롯해 콘트라 아데나워 재단(기독교민주연합·CDU), 한스 자이델 재단(기독교사회연합·CSU),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좌파당) 등 7개다. 독일 사회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경험의 반성을 토대로 민주주의 구현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시민 정치교육은 정치재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정치재단은 정당과 연결되어 있지만 독립된 기구로서 다양한 민주주의 문제를 다룬다. 공론장을 제공하는 등 시민이 삶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재단 활동에 필요한 자금 상당 부분은 정부가 지원한다. 국가가 튼튼한 민주주의를 위해 투자하는 셈이다. 독일 연방정부가 지난해 극우 성향 ‘독일을 위한 대안(AfD)’를 뺀 6개 정당의 정치재단에 지원한 금액은 약 6억 유로(약9000억원)에 달한다.

녹색당과 연계된 하인리히 뵐 재단은 1996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성별 평등, LGBTIQ, 환경문제 등이 주력 분야다. 1998년 처음 연방정부에 참여한 녹색당은 2021년 9월 총선에서 역대 최다 득표율(14.8%·118석)로 3위를 차지했다.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과 함께 ‘신호등’ 연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일 독일 베를린에서 임메 숄츠(Imme Scholz) 하인리히 뵐 재단 이사장(60)을 만났다. 임메 숄츠 이사장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는 포퓰리즘과 정치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해친다고 봤다. 포퓰리스트들이 주장하는 그릇된 현실 진단이 공론장을 허물고 시민들 간 타협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현실에서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시민 정치 교육을 꼽았다.

다음은 임메 숄츠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임메 숄츠 하인리히 뵐 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일 베를린 하인리히 뵐 재단 사무실에서 이창준 경향신문 기자와 대담하고 있다. 베를린|김희진 기자

- 독일 정당은 왜 하인리히 뵐 같은 정치재단을 설립하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 정당들은 민주 정치 교육을 지원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파시스트 독재 경험을 거치면서 서독에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 정당의 재단은 그들이 대표하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다만 정치적 성향은 연관되어 있을지라도 정당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지금의 하인리히 뵐 재단도 녹색당이 설립한 것이 아니다. 세 가지 다른 재단(여성재단·연방재단·하인리히 뵐 재단)이 합쳐져 생겼다. 이후 녹색당이 연계된 정치재단으로 공식 인정하면서 연방 정부의 공적 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 녹색당이나 연방 정부 정책에 하인리히 뵐 재단의 아이디어나 비전이 반영돼있나.

“하인리히 뵐 재단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민주주의와 인권, 성별 평등, LGBTIQ 권리 및 생태학이다. 네 가지 분야를 주된 영역으로 독일 뿐 아니라 35개 해외 사무소에서 활동한다. 녹색당 정책을 보면 재단이 다루는 가치가 잘 반영되어 있다. 더 중요한 점은 녹색당으로부터 독립된 지위에서 재단이 여러 활동을 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정당 일부가 아닌 상태로 정책을 지원하면서도 독립적으로 비평하고 제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재단은 선거 운동에도 제한을 받는다. 연방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때 규칙이 있는데, 선거일 4주 혹은 6주 전쯤부터는 선거운동에 참가할 수 없다. 이런 규칙은 재단이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정책을 제안할 때 정당보다 한발 앞선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 독일의 정당 역시 재단처럼 연방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지만 이는 재단과 별개의 자금으로 엄격하게 구분돼 사용된다. 연방정부의 자금으로 정당은 선거운동을, 재단은 정치 교육과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활동을 하는 데 집중한다.”

나치즘 반성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시민 교육, 중요한 역할은 공론장 제공

- 하인리히 뵐 재단은 기금의 상당 부분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데 시민의 반대는 없나.

“재단은 상시적 운영과 국제활동 지원을 위해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는다. 독일 내무부로부터는 인건비 등을 비롯한 기본 자금을 제공받는다. 연방경제협력개발부(BMZ)로부터는 개발도상국 사무소를, 외무부로부터는 유럽·북미 지역 사무소를 운영하기 위한 자금을 지원받는다. 연구부로부터는 학생·박사과정 후보자를 위한 장학금 자금도 제공받는다. 모든 정치 재단은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대신 명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재단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부처별 정기 감사에서 검토를 받는다. 자금의 용처가 잘못된 경우엔 자금을 뱉어내야 한다. BMZ와 개발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으려면 3년마다 국가별 신청서와 함께 목표, 성과 측정 방법, 성공 지표 등을 제시해야 한다. 보고서를 작성해 재단이 각 국가에 실제 영향을 주고 있음을 입증하기도 해야 한다.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절차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재단 자금을 관리하는 새로운 법(재단기금법)도 올해 초부터 시행됐다. 재단들은 연간 총 6억 유로를 지원받았으나 그동안 법적 근거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재단 설립을 위해 자금을 받길 원한다며 연방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각 재단을 불러 활동 설명 등을 듣고 AfD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결정했지만, 연방 정부가 관련 조건을 명시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가장 중요한 기본 조건은 재단이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민주주의를 위한’과 ‘민주주의에 반하는’ 활동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부정적 측면에서 설명하면 외국인 혐오, 반페미니즘, 권위주의 등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요소이다. 반대로 긍정적 측면에서 보면 포용, 평등, 혐오발언 금지, 관용, 평화, 그리고 인권이 ‘민주주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환경 보호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정의와 통합, 포용을 포함하는 민주주의 활동으로 국제사회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독일 연방 기본법(헌법)은 제정된 지 75년이 됐는데, 1949년 이후 헌법이 생겨난 역사를 보면 독일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다. 해외에서 돌아온 민주주의 정당의 생존자들 혹은 포로수용소에서 겨우 살아 돌아 온 이들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유엔 인권 선언을 어떻게 헌법에 반영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이에 따라 헌법에 담긴 개념은 파시즘의 인종차별 이념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임메 숄츠 하인리히 뵐 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일 베를린 하인리히 뵐 재단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베를린|김희진 기자

- 재단은 현재 어떤 주제나 의제를 추진하고 있나.

“우선 독일의 에너지 전환을 주제로 시민사회 단체, 민간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이들과 종일 일을 하곤 한다. 녹색당은 여러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지자체와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기업들은 에너지 시스템과 사용을 친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을 논의한다. 재단은 또 정기적으로 지역 정치인 관련 조사를 실시하고 남성과 여성의 비율을 따진다.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이 많은데 이는 성 평등 관점에서 중요한 주제다. ‘그린 리커버리’(Green Recovery)와 관련된 주제도 다룬다.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국가의 높은 부채와 그에 따른 어려움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다. 이들 국가는 재정적 지원이 부족하고 대출이 비싸다 보니, 이자를 내기도 벅찬 상황에서 생태적 전환과 기후 정책에 투자할 여력이 거의 없다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마지막으로 5월엔 탄자니아 파트너들과 함께 ‘방 안의 공룡(Der Dino in the room)’이라는 회의를 개최했다. 독일의 자연사 박물관에 있는 탄자니아 공룡 화석을 두고 탄자니아 역사학자 등과 함께 독일의 식민 역사, 식민 범죄를 다뤘다.”

- 민주 시민을 위한 재단의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나.

“재단의 시민 교육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예컨대 사회에는 종종 기업에 대한 불신이 있다. 기업의 주장이 사실인지 등을 두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 다른 중요한 활동은 사회 문제와 정치적 해결책에 대한 정보 제공과 토론을 진행하는 일이다. 재단이 긍정적 시각 뿐 아니라 비판적 시각을 함께 다룰 수 있는 논의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민주 시민 교육은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시민들의) 판단력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구성 요소다.”

정치적 의견을 형성할 수 있는 시민 역량을 바탕으로 바로 서는 민주주의

- 민주 시민 교육의 지향점은.

“재단의 교육 프로그램은 시민이 다양한 정치적 선택지를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적 의견 형성을 토대로 한다. 정치에 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지지할 정당을 선택할 수 있는 시민의 역량이 바탕이 된다. 시민 교육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적 가치 강화를 목표로 한다.”

- 식량난과 에너지난 때문에 유럽은 탈원전 철회, 탄소중립 후퇴 등 ‘그린래시’가 심해지고 있다. 녹색당과 하인리히 뵐 재단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독일은 현재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겪고 있지는 않다. 물론 러시아 가스에서 다른 가스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데 도움이 됐다. 독일에선 최근 몇 년간 풍력·태양광 에너지를 크게 확대했다. 이는 메르켈 정부 시절에는 볼 수 없던 수준이다. 러시아 가스로부터의 전환은 에너지와 식량 가격을 높였지만 일시적인 과정일 뿐이다. 다만 현재 주목할 만한 점은 여론조사 결과 유럽 의회 선거에서 우파와 보수 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반면 녹색당은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결과를 지켜봐야 겠지만 우리 관점에선 ‘그린 딜(Green Deal·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유럽연합의 정책)’을 고수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유럽 에너지 시스템과 경제의 미래는 에너지 전환을 실제로 이뤄낼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재생 가능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 농업을 지향하지 않으면 수질과 토양 오염은 심각해질 것이다. 이는 이념을 떠난 실질적인 문제다. 녹색당이 다음 유럽 의회에서도 환경 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충분히 힘 있는 위치에 있기를 희망한다.”

- 독일은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률에 이어 올해도 1% 미만 성장이 예상된다. 저성장 주요 원인으로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비용 급증이 꼽히는데 어떻게 보나.

“높은 에너지 가격은 가스 수입과 관련이 있지 탈원전 정책 때문은 아니다. 현재 독일에 남아있는 원자력 발전소는 단 세 곳뿐이다. 이들이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 않다. 지난해 여름 프랑스는 더운 날씨 탓에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독일에선 프랑스에 전력을 공급하려 석탄 화력 발전소를 가동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에너지 가격 상승의 원인이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임메 숄츠 하인리히 뵐 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일 베를린 하인리히 뵐 재단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베를린|김희진 기자

- 독일 연립정부 16개 부처 중 기후경제, 외교, 농업, 환경, 가족 등 5개 부처 장관은 녹색당 정치인들로 구성돼있다. 한때 제도권 저항의 상징이던 녹색당이 독일 정치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1990년대 녹색당은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정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녹색당의 첫 번째 정부 참여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였다. 독일의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적록(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립정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민주주의와 다당제 체제 국가에 살고 있으며 연립정부에서 항상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단일 정당으로 구성된 정부는 존재하지 않기에 가능한 한 진보적 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개혁을 추진하는 타협이 필요한 셈이다. 물론 야당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민주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정부 안에 있을 때다. 현재 녹색당은 두 번째로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녹색당은 많은 지자체에서 시장을 배출해왔고 지방 정부 일원으로도 꾸준히 활동해왔다.”

- 전 세계 많은 나라에 녹색당이 있지만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 국가에서 녹색당은 소수당으로 남아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에서도) 녹색당은 오랫동안 소수 정당으로 남아있었다. 녹색당 창당 당시 환경 문제는 낯설고 새로운 이슈였다. 환경 문제를 미래 문제로 인식한 정당은 녹색당이 유일하기도 했다. 다른 정당도 이 주제를 다루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사회민주당의 경우 정의에 관한 문제가 항상 더 중요했다. 그러나 환경과 정의 문제는 상충하지 않는다. 게다가 환경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에는 더 큰 정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인류로서 미래도 없을 것이다. 녹색당은 이런 지점을 우리가 다뤄야 할 문제로 제시해왔다. 사회학자 스테펜 마우(Steffen Mau)의 책 <트리거포인트(Triggerpunkte)>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 미래를 바라보는 정당은 녹색당과 자유민주당(FDP)이다. 기민련과 사회민주당 유권자들은 현재에 집중하는 반면, 녹색당 유권자들은 미래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녹색당 유권자들은 오늘날 무언가를 변화시켜야 미래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환경문제를 경제·사회의 미래와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고 녹색당은 바로 이런 일을 해왔다.”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요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법과 사회·경제적 구조, 교육받은 시민들 모두 필요하다

- 녹색당이 많은 시민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에선 1920년대부터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기가 중요한 주제였다. 1970년대에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원자력의 위험성이 분명히 드러나고, 탄소 배출 제한에 관한 보고서가 나왔다. 이런 배경에서 많은 이들이 에너지 전환 이슈에 공감했다. 희망을 주는 과학적 통찰이란 점에서 말이다. 독일 사회는 이를 토대로 더 나은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초반 빌리 브란트 총리 시절 환경 정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산업과 광업으로 황폐해졌던 라인강은 정비 작업을 거쳐서야 복구됐다. 녹색당은 한발 더 나아간다. 망가진 환경을 복구시키는 게 아니라 애초에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경제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녹색당이 사회민주당과 차별되는 지점이자 지지받는 이유 중 하나다.

- 독일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사람인가, 정치·경제 시스템인가, 혹은 법인가.

“한 가지를 꼽긴 어렵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독일의 정치 시스템은 파시즘 경험에서 비롯됐다.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법, 사회·경제적 구조, 교육받은 시민들이 모두 필요하다.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독립된 언론도 매우 중요하다. 정당 자금 지원의 투명성도 중요하다. 부유한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많은 기부를 받은 정당이 다른 정당보다 우세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독일에선 경제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카르텔 형성을 제한하는 법도 있다. 독립된 연방 헌법재판소와 주 헌법재판소도 있어야 한다. 정리하면 행정·입법·사법부의 삼권 분립과 더불어 언론이라는 제4의 권력이 민주주의를 지탱한다.

임메 숄츠 하인리히 뵐 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일 베를린 하인리히 뵐 재단 사무실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베를린|김희진 기자

- 한국은 최근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 모두 특정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다당제가 자리 잡은 독일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하는데 어떤 장점이 있나.

“독일에는 항상 여러 정당이 있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엔 매우 많은 정당이 있었고 안정적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데 사실상 성공하지 못했다. 정부는 항상 빠르게 무너졌고 선거가 끊임없이 열렸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는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데 실패했다. 전쟁 후에도 여전히 많은 정당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현재 독일의 선거제도를 보면 득표율이 5% 미만인 정당은 의회에 진출하지 못한다. 정당이 20개씩 난립하지 않도록 일정 규모의 정당만 대표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또 다른 전제조건은 의회가 정부를 구성하지 못할 경우 단순히 실패했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독일에는 연립정부가 존재하고 더 이상 연립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의회는 대안 정부를 구성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선출된 정당들은 민주 정부를 구성할 의무가 있고 유권자의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AfD가 정부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고 주 단위에서 대연정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는 정당에도 새로운 과제이고 매우 어렵다. 보통 경쟁자인 다른 정당과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독일이 양당제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는 다양한 관점을 포함해야 하기에 다당제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민주주의 필수 요소인 타협을 저해하는 포퓰리즘과 양극화
기존 정당을 외면하고 극우정당을 선택하는 시민들…민주주의 위기 극복해야

-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민주주의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타협을 필요로 한다. (이를 방해하는) 포퓰리즘과 양극화는 부정적이라는 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

- 독일에서는 반난민·반이민 등을 기치로 내건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최근 지지세를 넓히고 있다. 독일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부상을 두고는 여러 설명이 있다. 우선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기능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의 미래가 현재보다 더 나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이런 이유로 AfD로 돌아선다.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이슈를 다룰 때 사실에 기반한 분석과 해법을 외면한다는 점은 AfD 부상을 설명하는 또 다른 해석이다. 예컨대 AfD는 일부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가 실재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다고 한다. 독일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이민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분석을 토대로 한 그릇된 해결책이다. 이런 접근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타협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다른 정당이나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태에선 AfD의 주장이 지지를 받게 된다. 이런 점이 진짜 위기다. (기존의) 정당은 자신들이 무엇을 더 잘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진정한 해법을 제시하고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경향신문이 포럼을 열 예정인데 한국 독자들에게 한 마디 전한다면.

“한국이 당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 알고 있다. 정치 양극화 외에도 성 평등, 저출생 문제 등도 한국이 겪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경향포럼>에서 더 나은 미래를 논의하고 대중들에게 이를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다면 아주 값진 자리가 될 것이다. 특히 녹색당의 진보적 가치가 일정 부분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베를린 |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베를린 |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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