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EU와 캐나다는 내렸는데 미국은 안 내릴까
최근 유로존과 캐나다가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한 가운데, 지난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로써 7차례 연속해서 5.25~5.5%로 유지한 것이다. 또한 업데이트된 금리전망표(점도표)를 보면 올해 금리인하 횟수가 기존 3회에서 1회로 낮아졌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고금리 정책을 예상보다 더 오래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여전히 통화정책 전환(피벗)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물가상승률의 확실한 둔화를 금리인하의 전제로 거론했다.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압박이 줄었지만, 여전히 크다."며 '2% 물가'라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더 큰 확신을 얻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안정되어 가는 마지막 국면(라스트 마일)에서 성급하게 금리를 낮췄다가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맞을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전문가들은 단 한 번의 금리인하 예상은 경제 활성화와 인플레이션 극복을 재선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금년 3월, 코로나19 이후 치솟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위스중앙은행(SNB)이 선진국에서는 가장 먼저 기준금리를 1.75%에서 1.5%로 인하했다. 시장에서는 SNB가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조기 인하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급작스러운 금리인하에 스위스 프랑의 가치는 최저치로 떨어졌다.
그리고 지난 5월 인플레이션이 완화됨에 따라 스웨덴중앙은행(Riksbank)이 8년 만에 기준금리를 4.0%에서 3.75%로 인하했다. GDP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금리인하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Riksbank는 강력한 미국 경제와 지정학적 위기로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은 상존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 크로나 역시 가치가 하락했다.
6월 초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4.25%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2022년 금리인상을 시작한 이후 2년 만이다. ECB는 2016년부터 제로금리를 유지하다가 2022년부터 작년까지 10차례 연속 금리를 올린 뒤, 동결 중이었다. 다만, ECB는 이번 금리인하가 향후 지속적인 금리인하를 담보하지는 않는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강조했다. ECB 금리인하 바로 전날에는 G7 국가 중 처음으로 캐나다가 기준금리를 기존 5.00%에서 4.75%로 내렸다. 금년에 금리인하를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는 중국이다. 2월에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대출우대금리(LPR) 5년 물을 4.20%에서 3.95%로 내렸다. 그 후 멕시코가 3월에 금리를 내렸다.
이렇게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금리인하에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세계은행(WB)이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발표했다. 2.6%로 작년과 비슷한 성장세를 유지하지만, 앞으로도 몇 년간은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할 수는 없을 거라 전망한 것이다. 코로나19 이전 10년간 평균 성장률은 3.1%였다. 미국은 탄탄한 소비 덕분에 지난 1월 전망치보다 무려 0.9% 포인트 높은 2.5% 성장률을 달성할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유로지역 경제는 투자와 수출, 소비 둔화로 0.7%의 낮은 성장을 전망했다.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도 작년에 비해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는데, 특히 중국은 올해 성장률도 작년보다 낮아지지만, 내년에는 더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WB는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지만 그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기 때문에, 시장의 바람대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금리는 기본적으로 물가상승률과 비슷하게 가는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은 물가상승에 연동하여 후행한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돈의 가치가 높아진다. 대출은 줄고 예금은 증가한다. 그래서 소비가 줄고 투자도 줄게 된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가격도 영향을 받는다. 자산 가치가 떨어지면서 부의 총량이 감소하게 된다. 고금리로 인한 기업의 파산이 증가하고 성장률은 떨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책이다.
그와는 반대로 금리가 낮아지면 저축은 줄고 대출은 늘어난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높아지며 부의 총량이 증가한다. 기업의 투자는 늘어나고, 자국 화폐 가치의 하락으로 환율은 올라가면서 수출경쟁력이 커진다. 결국 가계, 기업, 은행 등 각 경제주체들이 돈을 더 많이, 더 쉽게 쓰면서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부동산이나 주식을 비롯한 자산 시장에 버블이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경기부양이 필요하면 금리를 낮추고,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거나 경기가 과열되면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번갈아 쓴다. 하지만 금리가 급격히 올라가도 현재의 미국 경제와 같이 높은 성장을 하기도 하고, 초저금리를 유지해도 일본과 같이 여러 가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금리정책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초저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일본은 다소 경제가 회복을 보이는 듯했지만 지나친 엔화 약세 등으로 물가가 급상승하여 개인소비가 위축됐으며, 금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내며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가 급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세계경제에서 일본의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있다. 작년 GDP 순위에서 55년 만에 독일에 밀리며 세계 4위로 내려앉았다. 내년에는 인도에 4위도 내줄 것으로 예상된다.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보다 적었다.
그래서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철저하게 데이터에 의존한 '데이터 디펜덴트(data-dependent)' 정책과 더불어, 눈앞에 놓인 경제상황을 고려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미팅 바이 미팅(meeting by meeting)'을 함께 조화롭게 견지하면서 금리를 결정한다. 즉 섣부르게 특정한 금리의 방향성을 예단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선진국들이 아직 요건이 충족되진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감수하고라도 일단 선제적으로 금리인하를 통해 경제활성화를 꾀하며, 나타나는 부작용과 시장의 반응을 살피면서 다음 단계를 고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가 비교적 양호한 미국은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최대한 교과서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FOMC 회의에서 파월 의장은 "미국은 아직 금리를 내릴 자신이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신중하되 타이밍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라는 뜻으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이다.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되새겨야 할 명언이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금리를 내리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아직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심사숙고하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서두르다 더 큰 위기를 맞아도 안 된다. 말로는 쉽지만 진짜 어려운 숙제다. 좋은 결말을 기대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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