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사랑의 매' 무죄입니다"…국가가 허락했던 폭력[뉴스속오늘]

박상혁 기자 2024. 6. 18.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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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경남 함안의 한 중학교 교사가 밤늦게 돌아다닌 학생들을 체벌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사진=영화 <말죽거리잔혹사> CJ 엔터테인먼트


1971년 12월. 중학교 교장 직무대리로 근무하던 교사 A씨 눈에 밤늦게 거리를 돌아다니던 중학생 7명의 모습이 들어왔다.

지금이야 늦은 밤에 외출하는 일은 예삿일이지만 1970년대 우리나라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이동을 금지하는 야간 통행금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 정책은 1982년 해제될 때까지 계속됐다.

늦은 밤거리를 활보하던 중학생 7명은 당시 기준으론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A씨는 문제가 된 중학생 7명을 교장실로 불러들인 뒤 비인간적인 구타를 시작했다. 3일 동안 학생들을 교장실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힌 뒤 주먹과 손바닥, 발로 머리와 얼굴 등을 가격했다.

피해 학생들의 학부모는 A씨를 고소했다. 검찰 그를 폭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A씨는 처벌받지 않았다.
'처벌'에 대한 규정 미비…교사에게 내려진 관대한 처분
1976년 대법원은 중학생을 사흘간 폭행한 A씨에게 무죄 선고를 내렸다./사진=대법원 판례 검색 캡쳐

A씨가 훈육을 빙자한 폭행을 가했다고 본 1심 재판부는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2심 재판부가 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것. 해당 사건은 상고 끝에 1976년 6월18일 대법원에까지 올라갔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결국, A씨는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과 상고심 재판부가 A씨에게 무죄 선고라는 논란의 판결을 한 이유는 그가 학생을 몇 차례 때린 행위가 '사회상규를 벗어나지 않은 정당한 체벌'에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대법원이 근거로 든 법리는 '각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할 때는 학생에게 징계 또는 처벌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교육법 제76조. 당시 우리나라엔 이 조항에 명시된 '처벌'이라는 용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이는 사법부가 교사의 학생 폭행에 대한 사건을 다룰 때, '교육 목적을 위해 가한 체벌은 합법에 해당한다'는 법리 해석을 하는 유인이 됐다.

1974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민방위 불참 학생 사망 사건' 판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고등학교 체육 교사였던 B씨가 민방위 훈련에 불참한 3학년 학생 C군의 뺨을 때려 뒤로 넘어지게 해 뇌진탕으로 숨지게 한 것.

재판부는 B씨가 뺨을 때린 행위를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심신미약자였던 C씨가 왼쪽 뺨을 맞자 급성 뇌압 상승으로 뒤로 넘어졌고, 이 과정에서 그의 두개골이 비정상적으로 얇았기 때문에 뇌진탕으로 숨졌다고 했다. 한 학생의 죽음을 때린 사람이 아닌, 맞은 사람의 몸이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체육 교사 B씨에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1988년 대구 초등학생 체벌 사건…반전의 계기가 되다
1990년 10월31일 초등학교 학생을 체벌하는 과정에서 전치 6주 상해를 입한 교사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다./사진=조선일보

'교육을 위한 체벌은 합법'이라는 법리 해석이 만연하던 시기. 재판장에선 대부분 학생보단 교사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속에 작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1988년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교사 D씨가 시험성적이 나쁜 학생을 체벌하다 전치 6주 상해를 입힌 것. 그는 학생에게 양손으로 교탁을 잡게 하고 길이 50cm, 직경 3cm가량 되는 나무 지휘봉으로 엉덩이를 때렸다. 이 과정에서 고통을 느낀 학생이 무릎을 굽히며 허리를 옆으로 틀었는데, 이 부위를 몽둥이로 후려쳤다.

교사 D씨는 폭행치상죄로 약식 기소됐지만, 이 처분에 불복해 정식 재판이 시작됐다. 전 국민의 이목이 이 사건에 쏠렸다.

재판 초기는 언제나 그랬듯, 교사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당시 1989년 대구지법은 D씨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그의 처벌 행위를 '사회 통념상 비난의 대상이 될 만큼 상식을 벗어난 폭행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봤다. 기존 재판부의 법리 해석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반전은 2심에서부터 발생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D씨가 교사로서의 징계권 행사를 과도하게 행사했다고 본 것.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판결이었다.

결국 상고 끝에 해당 사건은 1990년 대법원에까지 올라갔다. 대법원은 D씨의 체벌 행위를 '교사의 징계권 행사의 허용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정당한 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며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다.

이 판결에 일부 교사 단체는 반발했다. 교사의 체벌 행위에 죄를 묻는다면 교실 기강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폭력 교사들의 행태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대법원은 2004년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체벌 행위'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4가지 기준은 △학생에게 체벌의 교육적 의미를 알리지 않은 채 지도교사의 감정에서 비롯된 지도 행위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지도할 수 있음에도 낯선 사람들이 있는 데서 공개적으로 체벌·모욕을 가하는 행위 △학생의 신체나 정신건강에 위험한 물건, 교사가 신체를 이용해 부상의 위험성이 있는 부위를 때리는 행위 △학생의 성별·연령·개인 사정에 따라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을 준 행위 등이었다.

이어 2010년엔 경기도교육청을 시작으로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체벌을 금지하는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다.

교실에서 학생이 교사에게 체벌받는 것이 금지되는 순간이었다. 혹자는 이 사건을 학생 인권이 승리한 날이라고 기억한다.
학생 인권의 신장… 그러나 교권은 추락
전주의 한 초등학생이 교감 선생님의 뺨을 때리고 욕설을 하고 있다./사진=전북교사노동조합

세상은 변했다.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신체적 벌(벌세우기, 손이나 막대기로 때리기 등)을 한 번도 받은 적 없다'고 응답한 학생은 2017년 84.4%를 기록했다. △2019년엔 90.8% △2020년엔 96% △2021년엔 96.9% △2022년엔 96.5%였다. 2023년엔 95.4%를 기록했다.

과거처럼 교실에서 체벌당하는 광경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하지만 교권 추락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3년 6월30일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5분 동안 폭행당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건이다. 폭력 학생은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2014~2018년 초등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 신고 건수는 2014년 25건에서 2018년 122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학생의 교권 침해 신고 건수는 2016년 857건에서 2018년 1094건으로 증가했다.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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