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제는 통신 정책 새 판 고민할 때

여론독자부 2024. 6. 18.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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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경영대학 교수
[서울경제]

지난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스테이지엑스 컨소시엄의 제4 이동통신사 후보 자격 취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청문 절차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아쉽게도 신규 사업자를 진입시켜 통신시장 경쟁을 활성화하고 국민 편익을 향상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가 약 1년 만에 무위로 끝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소’라는 강경한 결정을 내린 것은 현 시점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희소 자원인 주파수의 할당은 수년 간의 대규모 투자가 전제돼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28기가헤르츠(㎓) 대역은 기존 통신 3사도 투자에 실패한 주파수 대역이다. 따라서 매년 수조 원의 투자를 집행하는 기존 통신사들이 경제성을 이유로 투자하지 못한 대역에 대한 안정적인 투자 능력 확보는 제4 이통사 선정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었다. 그러나 스테이지엑스는 끝내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스테이지엑스는 주파수할당신청서에 적시한 자본금 2050억 원에 현저히 미달하는 1억 원의 금액만을 납입했다. 또 주요 주주 및 구성주주별 주식소유 비율도 주파수할당신청서의 내용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정부가 제4 이통의 시작을 선언하고 ‘적절한 사업 수행’이 어려워 보이는 사업자를 위해 비합리적인 정책들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이에 대한 정책·재정적 부담은 매우 클 것이다. 나아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업자의 시장 진입으로 인해 주요한 통신정책 이슈들이 제4 이통에 함몰될 경우 분초를 다투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이슈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적기 대응도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의 취소 결정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제4 이통사 선정 불발의 책임을 정부 측에 전가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물론 제4 이통사에 거는 국민적 열망과 기대가 워낙 크다 보니 정부를 먼저 책망하는 시각도 이해는 된다. 다만 이 사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로서도 공들여 추진해 온 제4 이통사 선정이 이렇게 사업자 과실로 어이없게 좌초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정부는 2018년 여야 합의로 통과된 이동통신 허가제에서 등록제로의 규제 완화를 이행 중이며 현행 제도에 충실하게 경매를 통해 제4 이통사업자를 선정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재정 확보나 사업 이행 능력이 없음에도 무리하게 경매에 뛰어든 사업자로 인해 벌어진 희귀한 사례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이에 따른 비판도 있다. 사업자의 재정적 능력을 먼저 꼼꼼히 따져 보았어야 하지 않았냐는 시각이다. 정부로서는 현 제도에 충실했는데 이런 비판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론적으로 부실 사업자가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생긴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미리 걸러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나중에라도 걸러낼 수 있다면 다행이다. 정부가 이번에 잘못했다고 몰아붙이기는 어렵지만 국민이 바라는 것은 완벽한 정부가 아니었던가. 이러한 부실 사업자를 막지 못한 현행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시급히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전세계 ICT 생태계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과거 이동통신 서비스가 ‘사람 간의 연결’, ‘사람과 데이터의 연결’을 선보이며 이전 시대와 다른 경험과 변화를 보여줬듯이 AI 서비스도 우리의 삶과 산업, 사회시스템 전체에 매우 큰 변화와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AI가 통신 서비스와 융합되는 상황이 워낙 자명한 미래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의 경쟁 활성화보다 더욱 시급한 통신·ICT정책의 과제들이 무엇인지를 고심할 필요가 있다.

속도를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통신 서비스 정책에서 진일보해 이제는 AI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차세대 이동통신 정책으로의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판에서의 민간 투자와 경쟁 활성화 유도를 위한 정책 마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례가 대한민국 통신정책의 미래 방향을 재점검하고, 현행 주파수 할당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는 예방주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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