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중독자 아들을 버리지 않겠다는 대통령 [특파원 칼럼]

뉴욕=박준식 특파원 2024. 6. 18.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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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각) 델라웨어주 뉴캐슬의 주 방위군 공군 기지에 도착해 불법 총기 소유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아들 헌터의 가족을 반가워 하고 있다. 2024.06.12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뉴캐슬 AFP=뉴스1) 우동명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은 마약 중독자였다. 헌터는 2021년에 출간한 회고록 '아름다운 것들(Beautiful Things)'에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점점 늘어가는 약물과 알코올 중독 때문에 괴로웠다. 금단현상으로 몸이 아파 오히려 술을 더 마시는 악순환에 빠졌다. 어느 날 아버지가 경호요원들과 함께 찾아오셨다. 기절할 뻔했다. 현관에서 내 꼴을 보시곤 경악하셨다. 괜찮냐고 계속 물으셨고, 그냥 괜찮다고 했다. 아버지는 '괜찮지 않다는 걸 안다. 아들아'라고 했는데 그때 아버지 눈에서 절망과 두려움을 봤다. 결국 '도움이 필요하다'고 고백했다."

헌터는 4년 전에도 바이든의 당선을 막을 뻔 했다. 러시아에서 성접대를 받고 기밀을 누설했단 비난을 받았다. 헌터는 그 전 2014년에는 코카인 양성 반응으로 해군 예비역에서 불명예 전역했고, 2017년엔 두 해 전 사망한 친형 보 바이든의 아내와 동거했다. 그는 형수와 불륜에 대해 "우리 둘다 가장 아끼던 사람을 잃은 절망적인 삶에서 연민을 느꼈다"며 "하지만 그 관계는 비극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고 후회했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는 중독자의 삶을 벗어나려 재활을 시작했다. 물론 순탄치 않았다. 헌터는 바이든에 대해 "내가 중독자로 계속 문제를 일으켰지만 아버지는 나를 버리지도, 피하지도, 재단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바이든은 재활센터 심리상담사를 데려와 헌터를 도우려다 매번 실패했다. 헌터는 그에 대해 "도망간 나를 한번은 차도까지 쫓아와 끌어안고는 오랫동안 흐느끼셨다"고 적었다.

지난한 과정 끝에 헌터는 재활에 성공하고 다른 반려자를 만나 새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아버지를 둔 죄로 2017년 범법혐의가 들춰져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당시 마약 전과를 숨기고 총기를 구매했다가 그걸 유기했다는 혐의다. 재판 과정에서 헌터는 불안정한 상태로 마약 전과가 없다는 서류에 거짓으로 서명했고, 당시 동거하던 형수가 총을 발견하고는 당황해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헌터는 결국 배심원단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헌터의 유죄는 아버지에겐 큰 부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11월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열세인 상황이다. 물론 트럼프가 성추문 입막음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두 후보의 차이는 오차범위 이내까지 좁혀진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수주 만에 바이든 역시 형사 리스크를 짊어진 것이다. '자식이 아니라 원수'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은 판결 직전에 ABC 뉴스 앵커로부터 두 가지 질문을 받고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는 아들에게 배심원의 판결이 어떻게 내려지든 받아들일 것이냐였고, 둘째는 유죄 판결이라도 사면을 배제할 것인지였다.

바이든은 실제로 유죄판결이 내려진 이후 대통령 성명으로 "탄원서를 내지 않고 재판 받은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저는 대통령이지만 아버지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아내와 저는 사랑과 응원으로 헌터와 나머지 가족을 위해 항상 곁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들에게 재판이나 판결을 회피할 특혜를 주진 않겠지만, 부모로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였다.

바이든에게 부담이 될 것으로 여겨졌던 이 문제는 16일 미국 '아버지의 날'을 맞아 재평가되고 있다. 미국이 아무리 자유롭다고 해도 그 근간은 청교도 중심의 가족주의에 있다. 바이든은 민주당 후보로 자유주의 진영에 속해 있지만 그가 골칫덩이 아들을 끝까지 품은 자세는 대척점에 있는 공화당원들의 지지까지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마약 문제가 심각한 미국에서는 중독자였던 가족을 포용한 대통령에 대한 지지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처가의 좌익 논란이 일자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맞섰던 대통령이 기억나는 날이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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