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에 집중하다 재생에너지 소홀” vs “AI 등 첨단산업 위한 선택”

김예윤 기자 2024. 6.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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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서 ‘원전 갈등’ 재점화
정부, 원전 증설 등 전기본 공개… “재생에너지 목표 못 채워” 비판
전쟁발 에너지 대란-전력 수요 폭증… 프랑스-영국 등 원자로 추가 건설
산업계 “전 세계가 탈원전서 유턴”… 환경단체 “태양광-풍력 더 실용적”

정부는 지난달 말 신규 원자력발전소(원전) 3기 추가 건설 등의 내용을 담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을 공개했다. 정부는 전기본에 근거해 안정적인 중장기(15년) 전력 수급을 위한 수요 예측 및 전력 설비 설계 등을 2년마다 진행한다. 하지만 기후·환경단체들은 이번 전기본에 대해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포기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력 발전의 종류와 비중을 두고 정부와 환경단체들이 갈등을 빚는 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 늘렸다” vs “비중 제자리”

전력 생산은 사용 에너지를 기준으로 원전,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나뉜다. 11차 전기본은 2030년까지 전력별 발전 비중을 원전 31.8%, LNG 25.1%, 재생에너지 21.6%로 계획했다.

논란이 된 건 재생에너지의 비중이다. 지난해 1월 확정된 10차 전기본에선 2036년까지 태양광·풍력을 99.8GW(기가와트)까지 늘릴 계획이었는데, 11차 실무안에선 2038년까지 115.5GW로 확대하기로 했다. 2030년 기준으로 태양광은 44.8GW에서 53.8GW로, 풍력은 16.4GW에서 18.3GW로 늘어난다.

10차 전기본과 비교하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많아졌지만 비중은 그대로다. 10차 전기본 확정 때 이미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기존 30.2%에서 21.6%로 대폭 낮춰 환경단체들이 반발한 바 있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4월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1.6%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했는데 11차 전기본에서도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기후 싱크탱크 기후솔루션은 “한국은 2030년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녹색연합은 “영국은 2022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40%, 독일은 지난해 50%를 넘어섰다”고 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11차 전기본에서 발표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2030년 21.6%, 2038년 32.9%)는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력 사용량 급증에 ‘탈원전’서 후퇴

11차 전기본에는 원전 발전 비중을 2030년 31.8%, 2038년 35.6%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원전은 ‘무탄소 발전’으로 분류된다. 재생에너지에 비해 생산 단가가 낮고 자연의 영향을 덜 받아 풍력이나 태양광보다 안정적이다. 다만 원전 확대를 두고 핵폐기물 처리 비용이나 노후 원전 해체 비용 등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위험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원전에 의존하면 재생에너지 단계로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녹색연합 등은 “국제기구들은 기후위기 대응 핵심 수단으로 원전이 아닌 재생에너지를 선택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은 태양광이나 풍력보다 온실가스 감축 역량이나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 세계 재생에너지 표준으로 자리 잡은 RE100(재생에너지 100%)에 원전이 빠져 있다고도 지적한다.

반면 산업계는 전 세계가 ‘탈(脫)원전’에서 유턴하는 추세라며 원전이 전력 생산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탈원전에 나섰던 유럽 국가들마저 최근에는 ‘친(親)원전’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프랑스는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2050년까지 최대 14개의 원자로를 추가 건설하기로 했다. 영국도 2050년까지 원자로 최대 8기를 더 설치하기로 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수입이 줄면서 에너지 대란을 겪었다. 이후 내부적으로 에너지 자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동시에 인공지능(AI)을 비롯해 데이터센터, 전기차 등 전력 수요량도 크게 늘었다. 올 1월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력보고서에 따르면 챗GPT 요청 1건당 필요한 전력은 2.9Wh(와트시)로, 구글 1회 검색(평균 0.3Wh)과 비교하면 10배에 가깝다. 데이터센터 설립도 늘고 있다. 2022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사용한 전력은 460TWh(테라와트시)로 한국 1년 전력소비량의 약 80%에 달한다. IEA는 2026년에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사용 전력이 2022년의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단체 “재생에너지에 집중해야”

올해 3월 유럽연합(EU)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공동으로 ‘원자력 정상회의’를 열고 원자력 사용과 에너지 안보 강화 등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에도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은 “풍력이나 태양에너지 같은 재생에너지가 훨씬 더 실용적이고 가치가 있다”며 회의 자체를 규탄했다. 외신 역시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회의”라고 평가했다.

전기본 실무안이 최종 확정되려면 전략환경영향평가와 기후영향평가 등 환경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말 기자 간담회에서 11차 전기본의 전략환경영향평가와 기후영향평가에 대해 “아직 협의 요청이 들어오지 않아 입장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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