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도 칼럼] 참빗 하나
정작 소아암 환자와 가족, 집단휴진 탓 겹고통 겪어…의료계 초심을 회복하라
참빗 하나가 남았다.
대나무로 만든 그 참빗이다. 죽세공품으로 유명한 전남 담양에서 구입했다. 참빗을 사러 부산에서 그 멀리까지 일부러 간 건 아니었으나, 일삼아 참빗을 파는 죽세공품 전문 매장을 찾아 고르고 고르긴 했다. 이름처럼 참빗은 존재감이 남다르다. 한 손에 착 감기는 질감이 다부지고, 머릿결을 스치는 기분은 상쾌하다. 빗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참빗 제작 공정은 대나무 베기부터 완성까지 서른 가지 넘는 단계를 거친다. 3년 정도 자란 게 제격이다. 참빗 1개에 살은 보통 130개가량 들어간다. 조선 시대엔 참빗을 만드는 죽소장(竹梳匠)을 둘 정도로 수요가 많았다. 세상이 변하며 명맥을 잇기조차 쉽지 않다. 담양이나 영암에서 생산된 참빗을 현지의 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살 수 있다.
더듬어보면 빗의 역사가 오롯하다. 서양에선 기원전 500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로마 유적에서도 빗이 나왔다. 중국 은나라 시대인 허난성 안양 유적에서 머리 장식용 빗과 비녀가 출토됐다. 우리나라에선 기원전 100년쯤 조성된 낙랑 유적에서 나무 빗이 발견됐다. ‘삼국사기’엔 바다거북 껍데기나 상아 뿔 목제 빗을 계급에 따라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시대나 계급에 따라 다양한 빗이 등장한다. 그만큼 머리를 빗는 도구나 장식용으로 빗 쓰임새가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빗 사용에 진심이다. 단정한 용모를 중시하고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이 없도록 정성을 다했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그 예를 찾아 보자. 이팔청춘 이몽룡 성춘향의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는 ‘사랑가’와 두 사람의 시련이 담긴 ‘쑥대머리’ 대조가 뚜렷하다.
우선 ‘사랑가’ 한 대목부터. ‘춘향과 도련님은 월태화용 그림같이 마주 앉아 쌍긋쌍긋 웃어가며 하룻밤을 지냈으니 허물도 적어지고 춘향 모도 아는지라 사랑가를 하며 놀것다’. 월태화용(月態花容)은 달 같은 자태와 꽃다운 얼굴이란 뜻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과 맵시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선 흠잡을 데 없이 미끈한 몽룡과 고운 피부에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곱게 다듬은 춘향을 함께 묘사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그러나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에 찬자리여’란 ‘쑥대머리’ 첫 대목에선 180도 달라진 춘향이 그려진다. 머리털이 마구 흐트러져 어지럽게 된 머리는 몸도 마음도 자유롭지 못한 옥중 춘향 모습이다. 귀신 같은 산발은 곧 빗질 하지 않아 제멋대로이니 사람의 꼴이 아니다.
쑥대머리를 월태화용으로 바꾸는 마법의 주인공은 분명 사람이긴 해도 그 도구인 빗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전통 빗은 참빗 얼레빗 면빗 등 용도와 종류가 다양하다. 참빗은 빗살이 가늘고 촘촘하며 사각형이다. 얼레빗은 빗살이 굵고 성기다. 반달 모양이라 월소라고도 한다. 면빗은 머리를 정갈하게 다듬을 때 쓴다. 춘향이라면 긴 머리채를 얼레빗으로 손질한 다음 참빗으로 더 단정하게 정돈하고 기름을 발랐을 터이다. 참빗은 머릿속 깊이까지 기름을 바르는데도 유용하다. 머릿기름은 흔히 동백기름을 썼다.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인 살쩍은 면빗으로 빗어 넘겨 손질을 마무리 한다.
이처럼 긴 머리카락을 관리하기에 참빗이 그만이다. 단정함과 청결함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또 참빗으로 빗질을 하면 두피까지 시원하다. 머리카락을 기를 때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 머리카락 빠짐과 가늘어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어머나) 운동에 동참하고자 머리카락을 기른 3년6개월 동안 담양에서 산 참빗을 소중하게 여긴 이유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금언에도 이를 공개하는 건 하도 가당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동안 기른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한 어머나운동본부 홈페이지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소아암은 아동 질병 사망 원인 1위다. 국내에서 하루 4명, 매년 1500명씩 소아암 환자가 발생한다’. 이들이 항암 치료 부작용인 탈모 탓에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을 치유하기 위해 맞춤형 가발이 필요하고, 기부한 머리카락은 가발 제작에 쓰인다. 그런데 직접적인 치료를 담당해야 할 의료계가 18일 전국적으로 집단휴진을 한다. 의사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오길 촉구하는 사람이 어디 소아암 환자나 가족 뿐이겠나.
머리카락을 자를 때 서늘한 목덜미의 느낌은 지금도 여전하다. 누군가를 돕겠다고 한 일에 내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허나 직역의 틀에 갇힌 의사들을 보면서 오싹해진다. 생명을 살리겠다는 초심을 회복하기 바란다. 환자 없는 의사가 있을 수 있나.
정상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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