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연대(連帶)의 중요성과 과학자의 역할

유상균 지순협대안대학 학장·온배움터 교수 2024. 6. 18. 03: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상균 지순협대안대학 학장·온배움터 교수·‘혼돈의 물리학’ 저자

다시 여름이 돌아왔다. 세계가 폭염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지금이지만 그래도 여름은 다른 계절보다 풍성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물질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 100개 남짓한 원자만으로 이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물질들이 다양한 색깔과 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원자들이 여러 방식으로 결합함으로써 가능하다. 대표적인 결합 방식으로 공유결합이 있다. 복잡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간단히 정리하면 필요한 만큼의 전자를 갖지 못함으로써 불안한 원자들끼리 오히려 부족한 만큼의 전자를 내놓으며 함께 공유함으로써 불안정성을 극복한다는 점이다. 물이 H2O이고 이산화탄소가 CO2인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를 의인화해서 얘기한다면 부족한 사람들끼리 오히려 그만큼의 자기 것을 내놓고 함께 연대하며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간다는 말이다. 우리를 포함해 세상 물질들 대다수가 이런 화합물들의 집합이다.

20세기 생물학은 장구한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들의 양상을 비교적 정확히 밝혀냈다. 대표적 생물학자인 존 메이너드 스미스에 의하면 진화를 통해 더욱더 복잡하고 다양한 종들이 나타났는데 그 과정에서 생명의 정보가 저장 및 전달되는 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변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단세포 생물만이 존재하던 세계에서 세포가 서로 결합하고 여러 기능을 분담함으로써 지금의 동물, 식물과 같은 훨씬 복잡한 다세포 생물이 탄생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역시 의인법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홀로 살아가던 세포들이 함께 연대해 공동체를 이루고 기능들을 서로 역할분담 함으로써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생물로 거듭나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진화는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하고 복잡한 종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세포들의 협력과 연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가 말했듯이 그 위기는 단지 온난화에 의한 지구 생태계 위기만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한계가 드러남으로써 극심한 양극화를 통해 대부분의 인간들이 가난에 내몰리는 사회적 위기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여성들이나 어린이들,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로 사회는 젠더 간, 세대 간 갈등과 대립이 심화됨으로써 전체 공동체가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위기들이 결국 인간의 자연에 대한 억압, 자본가들의 노동자에 대한 억압, 주류들의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이라는 동일한 구조적 문제임에도 각 영역이 각자의 영역에서 외로운 싸움을 펼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서로 대립할 때도 있다. 지금 우리가 물질세계로부터, 생물의 진화로부터 배워야 할 부분이 바로 연대와 협력이다. 오직 그것만이 우리가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를 꿈꾸게 할 수 있다. 필자가 지난 글에서 지식의 통합과 순환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들이 연대하고 협력하는 데 있어서 과학자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할 것이다. 과학은 한편으로는 지금 위기의 많은 부분에 책임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위기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학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지식인들, 그리고 암묵지를 가지고 있는 대중들까지 함께 연대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차적으로 대중들이 과학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어 과학적 세계관을 통해 객관적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몇몇 과학자들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 스스로 자신의 분야를 넘어 다른 영역의 학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이들을 과학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과학자들도 다른 이들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공통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진정한 연대이며 그러다 보면 지금의 많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