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신 칼럼] 선진국으로 가는 시민의식
한은이 집계한 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6천194달러로 인구 5천만명이 넘는 국가 중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여섯 번째로 높다. 가히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시민의식 수준을 보면 선진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생활 속에서의 정직함과 준법정신, 공공 질서의식, 윤리 도덕성 등 사회적 규범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퇴행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선진시민의 자부심을 갖기에는 부족하다.
선진시민의 자세는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과 훈련 속에서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윤리적 성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가정교육이나 초등학교에서 윤리교육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드물다. 최근 초등학교 3학년생이 교감의 뺨을 때리는 교권침해와 학교폭력 사태를 보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이 같은 현상은 언제부터인지 가정과 학교 내에서 올바른 교육이 상실된 결과로 기성세대와 정치인들은 향후 대한민국 교육의 백년대계라는 차원에서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선진국의 시민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첫째로 정직함, 질서의식, 준법정신이 기본이다. 50여년 전 일본 유학시절, 학생들이 교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건물 앞에 주차된 자동차 사이를 지나가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긁힌 것에 본인이 실수로 긁혔을지 모른다는 메모를 적어 놓고 가는 정직함에 놀란 적이 있다.
일본을 여행 다녀온 사람들은 깨끗한 거리와 줄서기에 능한 질서의식이 일본의 상징처럼 돼있음을 알게 된다. 필자가 얼마 전 KTX를 타고 전라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자주 타 보는 KTX이지만 맨 앞 머리 부분이 너무나 지저분했다. 일본의 신칸센을 보면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하고 날렵한 유선형의 열차가 여행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문제는 우리 국민이 이런 열차의 더러운 모습에 이미 익숙해진 공공의식의 불감증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음주운전에 대한 단속 및 벌칙이 강화됐음에도 음주운전 피해가 증가하는 것은 국민들의 준법 의식의 결여로 생각된다. 유명 가수가 최근 음주 운전에 대한 부정직함으로 하루아침에 인생 역전이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끔 TV 뉴스에 취객이 택시기사나 버스기사를 구타하는 것,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인을 구타하는 행위, 파출소에서 행패 부리는 것을 보면 선진시민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타인과 다른 승객들의 목숨까지 위해하는 행위는 단절돼야 하며 향후 음주를 가장한 취중 행패와 음주운전의 벌칙은 강화해 일정 기간 사회와 격리될 수 있는 법치국가임을 보여줘야 한다. 아직도 전세사기, 금융사기가 판을 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사회가 정직하지 못하고 질서 의식이 없다 보니 불신이 만연하고 신뢰가 없으니 타인과 소통할 수 없어 결국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정직과 준법정신, 질서 의식을 유치원부터 교육시켜 몸에 배어 있어야 비로소 법치국가로서 존립할 수 있고 선진국으로 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둘째, 선진시민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장애인, 노약자, 취약계층, 외국인에 대한 배려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이다. 또 2021년 국가별 행복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49국 중 61위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언싱커블(Unsinkable)’의 저자 다니엘 알란 버틀러는 1912년 타이타닉 침몰 당시 약자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책임감이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칭송했다.
선진국의 삶의 질이 높은 것은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에 봉사하며 누구와도 소통하는 능력을 유아시절부터 배웠던 힘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우리 사회는 함께 가는 ‘공존’ 사회가 아니라 함께 있지만 제각기 존재하는 ‘혼존’ 상태로 진단했다. 선진국으로서 공존사회를 유지하며 공공의식과 질서를 익히고 지켜나갈 때 선진시민의 자격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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