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종부세 감세론'에 허 찔린 대통령실, 세제개편 속도
野 "세수 결손 문제 논의부터"…세법 개정안 충돌 예고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대통령실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및 상속세의 대대적인 개편을 공식화했다. 종부세를 사실상 폐지하고 상속세는 최고세율을 대폭 인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부의 세법 개정안 제출을 한 달 앞두고 대통령실이 먼저 세제 개편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데는 감세 이슈를 선점해 보수층 결집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종부세제와 상속세제 개편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6일 KBS 방송에 출연해 종부세 제도를 사실상 전면 폐지하고 재산세로 통합 관리하는 한편, 상속세에 대해선 상속세율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최고 30%)으로 낮추고 유산 취득세·자본 이득세 형태로 개편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소개했다. 방송 직후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를 통해 "성 실장이 언급한 '종부세 사실상 폐지, 상속세율 30%로 인하'는 여러 가지 검토 대안 중 하나"라며 선을 그으면서도 두 가지 세제 개편안을 7월 이후 결정하겠다고 재확인했다.
정부는 통상적으로 내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매년 7월 세제 개편안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마련하는데, 당정이 논의 중인 설익은 사안을 대통령실이 먼저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종부세 폐지와 상속세 부담 완화는 윤석열 정부가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정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상속세 개편 의지를 밝혔고, '종부세 폐지'는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정부도 출범 직후 상속세 과세 체계를 바꾸는 작업에 착수하는 등 세제 개편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해 세법 개정안에는 담기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22대 총선을 앞둔 지난 1월에도 민생 토론회에서 상속세 완화 의지를 거듭 보였지만 정부의 후속 조치는 없었다. 국민적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대통령실과 당정이 최근 세제개편 추진을 공식화한 것은 야당 내에서 '감세'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1주택자 종부세 폐지를, 고민정 의원은 종부세의 총체적 재설계를 주장했다. 이후 지난달 31일 대통령실은 "야당의 제안이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종부세가 현재의 경제상황과 부동산 시장 여건에 맞는지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폐지를 포함해서 제도개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약 2주 만에 종부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 방침을 동시에 띄운 것이다. 야당에 허를 찔린 대통령실이 강한 감세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중산층 중심으로 종부세 납세자가 대폭 늘면서 조세 저항이 커진 탓에 민주당도 강하게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당정은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췃다.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7일 기자들과 만나 "종부세 폐지 후 재산세 전체를 다 개편해 이 부분(수도권과 지방 재정 격차 해소)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지 연구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재정·세제개편특위는 오는 18일 재정준칙 도입 방안, 20일 상속세·증여세 등 재산세 개편, 27일 저출생 극복을 위한 세제개편과 재정 지원, 다음 달 4일 기업 세제 개편 등 정책토론회를 연달아 열고 세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실이 언급한 종부세 및 상속세 개편안에 대해 "기본 방향에는 당연히 공감한다"며 구체적인 상속세 개편 방안을 이번 세법개정안에 담겠다고 밝혔다. 다만 대통령실과 정부 간 미묘한 입장차도 감지된다. 최 부총리는 "방향성은 공감하더라도 각각의 내용에 대한 과제가 현재 상황에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시급성을 같이 고민하는 게 정책당국의 책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와 배치된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지난해 세수 펑크는 56조 원이고, 올 4월까지 실질적인 나라살림을 나타내는 관리재정 수지 적자는 64조6000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1주택자 종부세 폐지' 입장을 밝혔던 박 원내대표는 이날 정부의 세제 개편 추진에 대해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라며 "작년보다 올해 추가적인 세수 결손이 있다. 어떻게 재원을 확보할 것인가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부총리는 현 정부의 계속되는 감세정책으로 재정 건전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재정지출을 효율화하듯이 조세지출의 효율화 측면의 노력도 같이 병행하겠다"고 했다. 앞서 성 실장은 지난 16일 같은 지적에 대해 "경제활동의 왜곡은 크면서 세수 효과는 크지 않은 종부세, 상속세 등을 중심으로 타깃 하는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세수 효과가 크지 않았다면 그만큼 사람들에게 부담도 적었다는 것 아닌가.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라며 "세금을 줄이려고 할 때 다른 대체 수단을 생각하면서 줄여야 할 텐데 그렇지 않고, 줄이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 같은 모습이어서 조금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금은 가치의 문제다. 어느 세금은 낮추고 어느 정도 올리겠다는 게(기준이) 없으면 재정 적자가 심해지고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부담은 모든 국민에 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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