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36] 피카소가 방문할 만한 연구소
1959년, 미국의 의사이자 바이러스학자 조너스 소크가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1901~1974)에게 연구소 건축을 의뢰했다. 소크는 소아마비 백신을 처음 개발하고도 특허를 내지 않았다. TV 인터뷰에서 백신은 모두의 것이라며 ‘태양에도 특허를 낼 것인가’라고 반문한 소크의 명언은 당시 이미 전설이었다. 샌디에이고시(市)는 그런 소크가 꿈꾸던 연구소를 세울 수 있도록 태평양에 맞닿은 광활한 땅을 공짜로 제공했다. 소크는 칸에게 ‘피카소가 방문할 만한 건물’을 거기에 지어달라고 했다.
입구로 들어서면 똑같은 콘크리트 건물 두 동이 거울로 비춘 듯 대칭으로 서 있고, 중정(中庭)에는 좁은 수로 하나가 저 너머에 무한히 펼쳐진 수평선을 향해 쭉 뻗어 있다. 캘리포니아의 맑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극도로 정갈한 건물뿐인 이 광경은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소크는 연구자들이 이 안에서 고요히 사색하고, 자유롭게 대화하며, 거침없이 상상하고, 무모하게 실험하길 원했다. 그에게 생물학이란 세포를 통해 인류를 이해하고 사회를 구원할 학문이었고, 따라서 연구소는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세계를 하나로 잇는 곳이어야 했다. 지은 지 60년이 지난 건물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완벽하게 기능한다. 칸은 처음부터 연구 공간과 관리 시설을 철저하게 분리해 어떤 일이 있어도 연구가 방해받지 않게 했고, 개별 공간이 있으나 필요에 따라 협업을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열린 구조를 택했다. 창의적 지식은 자유로운 공간에서 흐르는 법이다.
1970년, 소크는 자기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피카소를 끝내 버리고 떠난 화가 프랑수아즈 질로와 결혼했다. 소크 연구소를 피카소가 방문했는지 안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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