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썰물
2024. 6. 17. 23:2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물속에 오래 있다 나오면 입술은 파랗고 손과 발은 쭈글쭈글하다.
마치 익힌 가지처럼 보일지도.
그러고 보니 익힌 가지의 모양은 펑펑 울고 난 뒤의 사람을 연상하게도 한다.
자신을 가지에 빗댄 시 속 '나'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희연
내 안에서
내가 다 빠져나간 뒤에도
끝끝내 남아 있는 내가 있다면
가지라고 불러볼까
볶아먹고 튀겨먹는 그 가지 말이야
물컹한
보랏빛
도마를 서서히 물들이는
가지를 보면 파랗게 질린 입술이 떠오르곤 했다
물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쭈글쭈글해진 손과 발이
가지야, 하고 부르면
멀리서 계단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물가에 산다는 건 나조차도 출입할 수 없는 지하실을 갖게 되는 일이다
(하략)
내가 다 빠져나간 뒤에도
끝끝내 남아 있는 내가 있다면
가지라고 불러볼까
볶아먹고 튀겨먹는 그 가지 말이야
물컹한
보랏빛
도마를 서서히 물들이는
가지를 보면 파랗게 질린 입술이 떠오르곤 했다
물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쭈글쭈글해진 손과 발이
가지야, 하고 부르면
멀리서 계단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물가에 산다는 건 나조차도 출입할 수 없는 지하실을 갖게 되는 일이다
(하략)
물속에 오래 있다 나오면 입술은 파랗고 손과 발은 쭈글쭈글하다. 마치 익힌 가지처럼 보일지도. 그러고 보니 익힌 가지의 모양은 펑펑 울고 난 뒤의 사람을 연상하게도 한다. 울음이 다 빠져나간 몸이며 얼굴을 체념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 자신을 가지에 빗댄 시 속 ‘나’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비워낸 건 속 가득 출렁이던 울음 같은 게 아니었을까.
“물가”에 사는 건 자신조차 출입할 수 없는 “지하실”을 갖게 되는 일이라는데, 그 지하실은 아마도 사시사철 침수를 면치 못하는 곳일 것 같다. 대책 없이 잠기는 곳. 눅눅한 불안과 절망이 유령처럼 웅크린 곳. 무엇이 그런 지하실을 만들었는지, ‘나’를 물가에 살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우는 일 외에. 제 속의 물기를 최선으로 짜내는 일.
그렇게 다 울고 난 뒤에도 끝끝내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나’라면.
박소란 시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계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축의금은 10만원이지만…부의금은 “5만원이 적당”
- 빠짐없이 교회 나가던 아내, 교회男과 불륜
- 9초 동영상이 이재명 운명 바꿨다…“김문기와 골프사진? 조작됐다” vs “오늘 시장님과 골프
- 입 벌리고 쓰러진 82살 박지원…한 손으로 1m 담 넘은 이재명
- 회식 후 속옷 없이 온 남편 “배변 실수”→상간녀 딸에 알렸더니 “정신적 피해” 고소
- 일가족 9명 데리고 탈북했던 김이혁씨, 귀순 1년 만에 사고로 숨져
- “걔는 잤는데 좀 싱겁고”…정우성, ’오픈마인드‘ 추구한 과거 인터뷰
- 한국 여학생 평균 성 경험 연령 16세, 중고 여학생 9562명은 피임도 없이 성관계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