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칼럼]‘난폭자’ 김정은-푸틴의 위험한 合作
김정은, 中의 이중적 태도에 노골적 반발
푸틴이 부추긴 ‘초대형 도발’ 앞장설 수도
韓-中, 위태로운 정세 관리 균형점 찾아야
그렇게 미뤄뒀던 푸틴의 방북이 오늘 이뤄진다. 작년 9월 러시아 극동에서 김정은과 만난 지 9개월 만의 답방 약속 이행이다. 그 사이 북-러 간에는 컨테이너 1만 개가 오가는 ‘위험한 거래’가 진행됐고 ‘전략·전술적 협동’은 긴밀해졌다. 이번에도 위험한 합작은 거창한 이벤트와 화려한 수사에 가려져 있다가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푸틴 방북에도 중국의 견제 그림자는 짙다. 김정은과 시진핑 간 우호의 상징이었던 다롄의 ‘발자국 동판’이 최근 아스팔트로 덮인 것은 북-중 간 이상 냉기류를 보여준다. 최근 북한은 노골적 반발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달 말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겨냥한 북한의 도발은 중국에 대한 섭섭함을 넘어 분노까지 담겨 있는 듯하다.
북한은 3국 정상회의 날 새벽에 정찰위성 발사를 예고한 뒤 회의가 끝나자마자 야간에 발사 단추를 눌렀다. 2분 만의 공중 폭발로 끝난 위성 발사 실패에선 김정은의 조바심이 드러난다. 북한은 3국 성명에 담긴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대목을 들어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중국이 동의하진 않았다지만 ‘비핵화’가 거론된 것 자체가 중국의 방조 아니냐는 노여움이었다.
곧 이어진 ‘오물 풍선’ 도발에도 김정은의 초조감이 묻어 있다. 북한이 날린 풍선은 그 시작부터 고약한 두엄 냄새로 세계적 비웃음을 샀다. 상대를 화나게도 겁먹게도 하지 못한 정치심리전의 패배였다. 대북 확성기 재가동이란 강수를 꺼낸 남측이 2시간 방송 뒤 일단 맞대응을 멈추면서 ‘먼저 꼬리를 내린’ 셈이 됐지만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 저급한 도발을 두고 북한이 이겼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저히 정상 국가의 행태로 보기 어려운 북한을 품고 가야 하는 중국으로선 큰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웃 나라의 주권을 난폭하게 짓밟은 러시아까지 함께 엮인 북-중-러 연대에 한사코 손을 내젓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궁극적으로 북-러와 함께 반미(反美) 노선을 추구하면서도 미국과 대화를 지속하며 경쟁적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 대미 안정화 기조 속에서 중국은 가급적 러시아와 북한을 따로따로 관리하고자 한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를 자처하지만 그 전쟁을 서둘러 끝낼 생각은 없는 듯하다. 냉전 초 6·25전쟁을 미국의 군사력을 극동에 묶어두는 수단으로 활용한 소련의 스탈린처럼 시진핑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의 중국 포위망 집중을 막고 있다고 여긴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의 직접 대결을 막는 완충지대로 북한이 필요하지만 북핵 도발로 인해 미국과의 갈등 전선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시진핑은 푸틴에게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바꾸기 위해 ‘세기의 변화(百年變局)’을 주도하자고 부추긴다. 김정은에게도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안보상 우려’라고 두둔하며 다독인다. 하지만 정작 불량국가 대열에 끼어 그 맹주로 주목받고 싶지 않다며 뒷전으로 물러선다. 이런 중국의 이중적 태도가 북-러의 두 난폭자에겐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불안정과 혼란, 무질서를 통해 현상 타파를 꾀하는 김정은과 푸틴의 만남은 위험하다. 거기에 자신들과 죽이 잘 맞았던 도널드 트럼프의 복귀는 이들이 노리는 더 없는 기회일 것이다. 그러니 미국 행정부가 11월 대선을 앞두고 푸틴이 부추기고 김정은이 총대를 멘 고강도 대미 도발, 이른바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두 난폭자가 평양에서 만날 때 서울에선 한중 간 2+2 외교안보대화가 9년 만에 열린다. 한중 양국은 그 처지부터 가치, 전략까지 모든 점에서 차이가 분명하다. 그래서 이번 대화에도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신냉전 진영 대결의 격화는 두 나라 모두 바라는 바가 아닌 만큼 적어도 북-러의 모험주의 도발을 막기 위한 협력의 균형점은 찾아야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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