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420억 상속하는 955명에게 세금 깎아주자는 대통령실
“최고세율 30%로 낮춰야 주장”
‘중산층 세 부담 완화’ 들었지만
재벌·초고액자산가에 혜택 집중
대통령실과 여권을 중심으로 상속세에 대한 ‘감세’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간 상속세 완화론을 펼쳐온 재계 등의 주요 논거는 상속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국외 이전 가능성 등이 중심을 이뤘는데, 최근에는 ‘중산층 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주장이 새롭게 따라붙었다. 서울에 집 한채만 있어도 상속세를 내게 된 중산층이 급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전히 상속세를 내는 비중(한 해 피상속인 중 과세 대상 피상속인 수)은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실이 ‘과도한 세율’이라 직접 겨냥한 최고세율(50%) 적용 대상자는 2022년 기준 955명에 그친다. 이들의 1인당 평균 상속세 과세가액(상속재산에서 문화재 등 비과세 재산과 공과금·장례비용·채무 등을 제외한 금액)은 420억원이다. 정부·여당의 상속세 감세 드라이브가 ‘중산층 부담 완화’란 포장지만 씌웠을 뿐, 본질은 재벌·대기업과 초고액 자산가들에 대한 감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 중산층 세 부담 과도? 전체의 5%도 안 내는 세금
현재의 상속세 과세표준(5단계)과 세율(10~50%)은 2000년부터 달라진 적이 없다. 과표 산출을 위해 상속재산에 적용하는 주요 인적공제 체계는 1997년부터 그대로다. 20년 이상 상속세의 기본 체계가 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란 얘기다.
이런 가운데 상속세 부담자(피상속인)는 늘고 있다. 여러 이유 중 하나로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이 주로 꼽힌다.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8년 한 해 8002명이었던 상속세 납부자는 2022년 1만5760명으로 두배쯤 늘었다.
그럼에도 피상속인 중 상속세 납부자는 매우 적다. 2022년 기준 전체 피상속인은 34만8159명이었고, 이 가운데 4.5%(1만5760명)만 상속세를 냈다. 상속재산에 배우자 공제와 인적공제 등 각종 상속공제를 적용하면 재산을 물려주면서도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현행 체계에선 배우자 공제(최소 5억원, 30억원 한도), 그리고 ‘기초공제(2억원)+자녀 등 그밖의 인적공제’와 ‘일괄공제’(5억원) 등 다양한 인적공제가 있다.
인적공제는 상속세 납부자를 줄이는 효과도 있지만 동시에 실효세율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기도 하다. 상속세를 내더라도 세 부담은 크지 않다는 뜻이다. 2018년 대비 2022년 상속세 납부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과표 구간은 두번째로 낮은 명목세율(20%)이 적용되는 ‘1억원 초과~5억원 이하’다. 2022년 ‘1억원 초과~5억원 이하’ 납부자는 총 6336명으로 2018년 대비 3075명 늘었다. 이들의 1인당 평균 상속세 과세가액은 2022년 기준 10억4900만원, 1인당 결정세액은 3700만원이었다. 각종 공제가 더해진 결과로 실효세율은 3.5%에 그쳤다. 자산 가격 상승 등 요인으로 상속세 부담자가 늘었지만, 명목세율(20%)의 반의반에도 못 미치는 세율을 적용받은 셈이다. 이보다 한 단계 높은 과표(세율 30%)인 ‘5억원 초과~10억원 이하’(3070명)의 경우, 1인당 상속세 과세가액은 평균 15억6400만원, 결정세액은 1억3100만원이었다. 이들의 실효세율 역시 8.4%에 불과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현행 상속세 공제제도는 마지막으로 개편된 1997년 당시 상당 기간 그대로 가도 될 정도로 굉장히 획기적으로 공제액을 늘려놓은 것이다. 여기서 공제액을 더 늘려 1~2%만 내는 세금으로 만든다면 부의 집중과 세습을 억제한다는 상속세 기능 자체가 퇴색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최고세율 인하? 420억 상속하는 초고액 자산가 1천명만 혜택
더욱이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16일 언급한 “최고세율 50%에서 30%로 인하”는 중산층하고는 아예 거리가 먼 이야기다. 2022년 법정 최고세율이 적용된 피상속인은 955명(전체 피상속인 중 0.27%), 1인당 평균 상속세 과세가액은 420억원에 이른다. 한 해 1천명이 채 되지 않는 초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특히 과표 30억원 넘는 초고액 자산가 가운데서도 최고세율 인하의 혜택은 과표 500억원을 초과하는 아주 극소수(2022년 기준 20명)에 집중될 전망이다. 과표 500억원 초과 피상속자(1인당 상속세 과세가액 평균 1조6천억원)들이 납부한 상속세 전체 금액은 14조7958억원으로, 같은 해 전체 상속세수(19조2603억원)의 76.8%를 차지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과표와 공제체계 등이 오랜 기간 그대로인 만큼 일부 제도 개편을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정부·여당은) 재벌들의 소원 수리와 뒤섞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최대주주 주식평가액 20% 할증’(중소기업·연매출 5천억원 미만 중견기업 제외) 제도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할증 평가까지 고려하면 대기업 최대주주의 상속세율은 최대 60%가 된다. 그러나 최대주주 주식에 포함된 ‘경영권 프리미엄’을 재산가액 평가에 반영하는 것이 ‘실질과세 원칙’에 더욱 부합하는 것이란 지적도 많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에서도 과세당국이나 법원이 지배주주의 지배력 등에 따라 보유주식 가액에 대한 할증 평가를 하고 있다.
애초 상속세 최고세율을 국가 간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비롯한 자본이득 과세 미비라는 한국 조세 체계의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석진 교수는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국제적으로 높게 유지된 것은, 지난 세월 재벌의 자산 축적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여겨져왔던 결과물”이라며 “상속세란 부의 세습에 대해 누구를 상대로 얼마큼 정산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로, (국가 경제의 형성 과정이 서로 다른) 국가 간 일대일 단순 비교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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