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루프물스러운 변주 [책이 된 웹소설 :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김상훈 기자 2024. 6. 17. 20:3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책이 된 웹소설 넘겨보기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반복되는 삶의 문제 속
단 하나의 목표 향해서
소설 속 주인공은 레나를 공주로 키우기 위해 반복되는 삶을 버텨낸다.[사진=펙셀]

이른바 '회귀물'은 웹소설의 문법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회귀물 작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생 다시 살기'다. 과거로 돌아온 주인공은 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생을 산다. 가상의 판타지 세계부터 역사, 무협, 현대, SF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주인공이 회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회귀물'의 선배격 내지는 친척으로 '루프물'이 있다. 고리(Loop)처럼 특정 시간대가 반복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루프물에서는 반복하는 시간 속에 주인공이 던져진다. 특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사망하면 시간이 되돌아오고, 회차마다 상황이 조금씩 달라진다.

주인공은 이전 회차의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쉽게 해결하면 '루프'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수많은 반복을 거듭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루프를 해결하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회귀물은 압도적인 정보 격차로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오르는 상승의 쾌감을 보여준다. 반면 루프물 주인공의 걸음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고, 독자에게 끊임없는 긴장감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구팽이' 작가의 웹소설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는 몇 안 되는 루프물 작품이다. 루프마다 보여주는 이야기가 독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은 주인공 '민서'가 '레나 키우기'라는 게임 속에서 '레오'라는 캐릭터로 빙의하며 시작한다.

게임의 목표는 레나를 공주로 키워내는 것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통해 이를 이뤄야 한다. 시나리오는 소꿉친구, 약혼관계, 거지남매 등 3가지다. 한 시나리오가 실패하면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간다. 레오는 다른 상황 속에서 레나를 보호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첫 '소꿉친구' 시나리오에서 레오는 레나와 결혼하며 엔딩을 맞는다. 사제의 축복을 받으며 레나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맹세하는 순간 주변으로 어둠이 깔리고 눈앞에는 엔딩을 설명하는 단조로운 문자가 나타난다. '민서'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 '레오'로서의 황망함에 몸서리친다. 반드시 레나를 공주로 만들어 게임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하지만 시나리오의 끝은 씁쓸하다.

[사진=뷰컴즈 제공]

여러 시나리오를 거치면서도 민서이자 레오는 실패를 거듭한다. 레나를 왕자와 결혼시키겠다는 생각에 상경했다가 불량배들에게 사로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전쟁에 나가겠다는 레나를 막지 못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특히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 보여준 엔딩은 독자들에게 큰 탄식을 선사했다.

이 시나리오에서 레오와 레나는 남매이자 부랑아다. 레오는 레나를 공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돈을 모은다. 레오를 보며 부채를 느낀 레나는 결국 몸을 판다.

그녀에겐 화려한 드레스가 입혀졌다. 거울 앞에 놓인 레나는 여인들의 손길에 한층 아름답게 변했다. (중략) 레나를 꾸며준 여인들은 감탄이 아닌 탄식을 뱉었다.
카시아는 조용히 분장실을 지키며 들락거리는 레나가 올 때마다 다독여줬다.
레나는 그날 네 명의 손님을 받았다.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는 루프물 특유의 반복과 변주를 잘 활용해 독자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긴장감을 제공한다. 주인공은 회차마다 겪는 고난과 실패를 통해 점차 성장한다. 실패를 반복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독자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 혹자는 "왜 이런 답답한 소설을 읽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루프물의 진가는 마침내 모든 상황을 해결했을 때 빛난다.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고 루프에서 벗어나 행복을 쥐는 순간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어마어마하다. 그 순간을 위해 '고구마'를 참는 건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김상훈 더스쿠프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