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생태살해’ 환경부의 민낯
“(종) 보존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공 이야기.” 미국 CNN방송이 내린 남대서양의 멸종위기 ‘혹등고래’ 복원에 대한 평가다. 과거 남대서양은 몸길이 약 15m, 몸무게 약 30t에 달하는 대형 해양포유류 혹등고래 수만마리가 서식하던 바다였다. 하지만 1904년 탐험가들이 남아메리카대륙 최남단 사우스조지아섬에 도착하면서부터 혹등고래들의 비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탐험가들은 이듬해 4월까지 67마리의 혹등고래를 죽였는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916년까지 인근 지역에서 도살당한 혹등고래 수는 2만4000마리에 달했고, 이 섬 인근 해역에서는 혹등고래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1986년 포경이 중단되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사냥당한 혹등고래 수는 30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남대서양 혹등고래 수는 1830년 약 2만7000마리에서 1950년대 중반에 이르면 약 450마리까지 급감했다. 생태학자들은 “고래잡이들이 혹등고래를 박멸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마구잡이로 포획되면서 위기에 처했던 고래들에게 희망이 생긴 것은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가 상업적 포경을 전 세계에서 금지하면서부터다.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가 여전히 포경을 이어가긴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꾸준한 압력 덕분에 이들 국가의 고래 포획 수 역시 점차 감소하고 있다.
포경 금지로부터 30여년이 지난 뒤 남대서양 혹등고래 수는 극적으로 회복됐다. 영국의 해양생태학자이자 고래 연구자인 제니퍼 잭슨이 이끄는 연구진은 2019년 1월 사우스조지아섬 인근 해역에서 17마리의 혹등고래를 목격했다. 우연히도 17마리는 이 고래에 대한 대량학살이 시작된 1905년 1월 한 달 동안 도살된 수와 같은 숫자였다. 2019년 미국 워싱턴대와 국립해양대기청(NOAA) 등은 혹등고래 수가 포경이 시작되기 전의 93%가량인 약 2만4900마리까지 늘어났으며, 2030년쯤에는 본래의 약 99%까지 회복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남대서양 혹등고래의 사례는 포경 금지와 적극적인 보호 조치가 멸종 직전까지 내몰렸던 동물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혹등고래 복원 성공이 종 복원을 위해 애쓰고 있는 전 세계의 생태학자, 환경운동가 등에게 희망과 감동, 영감을 주는 동안 국내에서는 정부가 위기에 처한 다수의 동물을 멸종으로 내모는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고 있다. 환경부, 국가유산청 등의 직무유기에 가까운 행태로 인해 1000마리 넘게 떼죽음을 당한 멸종위기 포유류 산양, 환경부의 비과학적인 데다 무리한 세종보 재가동 추진에 위기를 맞은 멸종위기 어류, 불필요한 공항사업으로 죽어간, 그리고 죽어갈 야생 동식물 등 사례를 보면 정부 주도의 에코사이드(생태살해)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산양 떼죽음은 혹등고래 복원 성공 사례에 대한 외신의 찬사와 정반대 평가를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담당부처 어디에서도 자성과 사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가장 큰 절망을 안겨주는 환경이야기”, “종 보존사에서 가장 실패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도 반성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한국 환경당국·문화재당국의 민낯인 셈이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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