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은 치유의 시작, 이주여성 지원 멈춰선 안 돼”
“모국어로 말하는 것 자체가 큰 힘
스토킹·성폭력 피해 급증하는데
서울센터 위탁운영 1년으로 축소
가사관리사 충분한 논의 선행을”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에서 일하는 다시잠츠 나랑토야(48)는 전화가 걸려오면 가장 먼저 수화기를 들곤 한다. 그의 임무는 몽골 이주민 상담이지만 현실에선 일인다역이다. 모국어인 몽골어와 한국어밖에 할 줄 모르지만 태국,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네팔, 러시아 등 국적 불문하고 상담을 맡는다. 나랑토야는 “통역을 거쳐서 소통하면 내담자도 답답해하고, 상담자도 소진된다”고 말했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는 서울시로부터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하는데 서울시는 3년 주기이던 위탁 기간을 지난해 1년으로 줄였다. 서울시는 이 센터가 사용하는 사무실 계약기간도 기존 2025년에서 올해 말로 단축했다. 사실상 올해 이후 센터 운영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17일 서울 중구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에서 만난 나랑토야는 “서울센터가 설립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양상이 복잡해졌다”며 “서울센터 역사가 계속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2004년 한국어를 배우러왔다가 한국 남성과 결혼해 이주 21년차가 된 나랑토야는 2018년부터 서울센터에서 몽골 상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랑토야는 “과거에는 행정 기관에서 이주민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반말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주민이 늘면서 행정서비스가 개선됐다”면서도 “반면 가정폭력, 성폭력, 법률 갈등 등 여성 이주민이 겪는 문제는 오히려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가 만들어지던 2013년 약 158만명이었던 국내 체류 외국인은 지난해 250만명을 넘겼다. 여성 이주민 중 결혼 이민자 비중은 줄어든 반면 유학생, 동포, 기타 외국인 등은 늘었다. 서울센터의 상담 건수도 2014년 5336건에서 2023년 1만2437건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스토킹 피해, 불법촬영, 그루밍 성폭력(피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뒤 이를 이용해 성적으로 학대 및 착취하는 것) 등의 피해를 겪은 유학생이 찾아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랑토야는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유학생들은 밥을 안 먹거나, 수면 장애가 생기거나, 밖에 나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비자를 연장하려면 재학증명서가 있어야 하는데 학교 생활이 불가능해 제적되는 경우 미등록 이주민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학생 비자(D-2)로 입국한 학생들은 휴학하면 체류 자격이 사라져 30일 이내에 출국해야 한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수사 과정과 추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랑토야는 “이주민이 수사기관에서 한국어로 자신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며 “통역사가 있다고 해도 낯선 사람인 경우가 많은데,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면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를 당한 뒤 자해 행동이 잦은 사례자를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연계했지만 언어 문제로 지원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에 대해선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나랑토야는 “가사노동자는 아이와 가정에서 일상을 함께하며 일을 하게 되고, 고용주와의 관계가 애매해서 인권 침해 피해가 있다고 해도 신고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가사노동자로 오는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예상되는 갈등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3년 몽골, 베트남, 중국, 필리핀 상담원이 상근하는 체제로 시작한 서울센터는 여전히 4개 언어와 영어로 상담한다. 나랑토야는 “이주여성이 겪는 피해를 자신의 모국어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주여성에 대한 지원을 줄여서도, 멈춰서도 안 되고 오히려 늘려갈 때”라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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