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감상할 수 있게”···‘세한도’ 기증한 손창근씨 별세
산림청·카이스트에도 기부
마지막 가는 길도 조용한 가족장으로
윤성용 중앙박물관장 “고인의 숭고한 뜻 되새겨”
국보 ‘세한도’와 보물 ‘불이선란도’ 등 대를 이어 수집한 문화유산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씨가 향년 95세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17일 알려졌다.
고인의 아들인 손성규 연세대 교수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따르면, 손씨는 지난 11일 타계했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유가족은 논의를 거쳐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다.
‘값을 따질 수 없다’는 ‘무가지보’의 문화유산을 모두를 위해 기꺼이 내놓은 고인은 문화유산 소장가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개성 출신 실업가인 부친 손세기(1903~1983) 선생과 함께 대를 이어 수집한 이른바 ‘손세기·손창근 컬렉션’은 회화와 전적 등 가치와 의미가 큰 다양한 종류의 문화유산으로 구성돼 주목받았다.
고인은 생전 드러내지 않는 여러 기부 활동도 펼쳤다. 지난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연구 기금으로 써달라며 1억원을 쾌척했고, 2012년에는 경기 용인 일대의 임야 662ha를 산림청에 기부했다. 2017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50억원 상당의 건물과 1억원을 전했다.
그리고 2018년 11월 고인은 평생 애써 수집한 ‘손세기·손창근 컬렉션’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훈민정음 반포 직후인 1447년 편찬한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의 초간본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 등 모두 304점에 이른다. 고인은 당시 기증 기념행사에 참석해 “한 점 한 점 정도 있고, 한 점 한 점 애착이 가는 물건들”이라며 “우리나라의 귀중한 국보급 유물들을 나 대신 길이길이 잘 보관해달라”라고 당부했다.
2020년 1월에는 추사가 1844년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그린 문인화의 걸작이자 국보로 지정돼 있던 ‘세한도’까지 기증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기증에 어떤 조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공로로 2020년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유산 정부 포상이 이뤄진 이래 금관문화훈장 수여는 처음이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그해 12월 고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고인은 여러 차례의 기증과 기부 활동을 하면서도 널리 알리지도, 좀처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날 “우리 역사와 문화 연구에 그지 없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기증해주신 고귀한 분”이라며 “고인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면서 길이길이 전해지도록 보존하고 활발한 연구와 보다 많은 국민들이 감상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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