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서방 전쟁'…우크라 평화회의 공동성명서 비서구국 다수 이탈

김효진 기자 2024. 6. 1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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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주제 제외에도 브릭스 회원국 등 서명 안해…공동성명, 우크라 영토 보전 강조

주말 스위스에서 약 100개국이 모인 우크라이나 평화회의가 열렸지만 인도, 브라질 등 상당수 비서구 국가들이 공동성명(코뮈니케) 동참에 거부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만의 전쟁이 아니라는 공감대 형성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요청으로 이번 평화회의를 조직한 스위스 정부는 16일(이하 현지시간) 전날부터 이틀간 스위스 니트발젠주 휴양지 뷔르겐슈톡에서 열린 회의에서 82개국의 지지로 공동성명이 채택됐다고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90여개국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기구를 포함한 100개 국가와 기구 중 비서구 국가를 중심으로 15개국 가량이 성명을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참석국 중 러시아와 함께 브릭스(BRICS)를 꾸리고 있는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공동성명에 서명하지 않았다. 올 초 브릭스 회원으로 합류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도 공동성명 지지국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브릭스는 금융투자회사의 임의적 투자 유망국 분류에서 발상한 주요 개발도상국 협력체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4개국으로 출발해 2010년에 남아공으로 확장했고 올해 사우디, UAE, 이집트, 이란, 에티오피아로 회원국을 넓혔다. 브릭스 가입을 저울질 중인 인도네시아도 공동성명 지지국 명단에 없었다.

이밖에도 남미에서 멕시코와 콜롬비아, 중동 및 북아프리카에서 이라크, 요르단, 리비아, 아시아에서 태국, 아르메니아가 공동성명을 지지하지 않으며 2년간 서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비서구국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서방 내지 유럽의 전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은 공동성명에 참여했다.

<로이터> 통신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등 논쟁의 소지가 있는 안건을 성명에서 제외했음에도 서방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부유한 북반구 유럽 및 미국과 대비되는 주로 남반구의 개발도상국)의 지지를 얻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스위스 외무부는 이번 회의의 주제가 "원전 사고 예방, 식량 가격 폭등 예방" 등으로 선정돼 "지리적으로 우크라이나와 거리가 있지만 전쟁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국가들, 특히 글로벌 사우스와 관련이 깊다"고 설명하며 이들의 지지에 특히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은 벨기에 브뤼셀에 기반을 둔 안보·외교·전략연구소(CSDS)의 클로드 라키시츠 연구원이 브릭스 회원국 등 이탈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일부 국가들은 서방,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시도하고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중국, 인도 등은 우크라이나 전쟁 뒤 서방이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 원유 수입을 늘리는 등 오히려 경제적으로 밀착해 왔다. 라키시츠 연구원은 인도가 러시아에 무기 공급을 의존해 온 역사가 있고 남아공이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주최 측이 160곳 국가에 폭넓게 초대를 보냈고 참석국 중 절반 가량은 비유럽국이라는 점을 들어 정상회의 과정 자체가 우크라이나와 서방 지원자들이 평화 회담을 방해하고 있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3일 미국과 양자 안보 협정을 맺은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통화 시점을 공개하지 않은 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한 결과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팔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번 회의 참석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회의 전날 별도의 휴전 조건을 제시했다. 지난 1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계획을 포기하면 즉시 휴전 협상에 나서겠다고 했다.

반면 16일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80여개국이 채택한 평화회의 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모든 국가의 주권, 독립, 영토 보전"을 강조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불법 점령 및 일방적 합병 주장을 배척했다. 공동성명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를 포함한 모든 우크라이나 원전이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통제 아래 운영돼야 한다고 명시했고 식량 안보를 위해 흑해와 아조우해에서 자유롭고 안전한 상선 운행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이체벨레를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16일 평화회의 종료 뒤 연설에서 "우리 법적 영토에서 물러나면 러시아는 내일 당장 우리와 평화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16일 연설에서 영토 양도를 주장한 푸틴 대통령의 협상 조건에 대해 이는 협상이 아닌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전쟁 종식에 진지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비올라 암헤르트 스위스 대통령은 16일 폐막 연설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은 러시아가 언제 이 과정(평화회의)에 포함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 없이 진행된 회의의 한계를 인정했지만 "추가 조치"를 예고하고 "스위스는 이러한 대화 과정에서 계속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며 후속 회의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

▲16일(현지시간) 스위스 니트발젠주 휴양지 뷔르겐슈톡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 회의에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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