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만을 위한 잔치 : 누굴 위해 '상속세 인하 카드' 띄웠나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4. 6. 1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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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재벌 승계’ 물타기 1편
상속세 개편론에 숨은 문제점
상속세 최고세율 절반 인하 추진
상속세 인하 폐지 이득 어디로

# 논점을 흐리려는 시도를 흔히 물타기라고 표현한다. 미국에서는 진흙탕 만들기(Muddy the waters)라고 한다. '진흙탕(머디 워터스)'이라는 이름의 미국 헤지펀드는 분식회계 등 실적을 부풀리는 회사를 찾아내 자신들은 공매도하고, 투자자들에게는 매도를 권유하는 기업분석 보고서로 유명하다.

# 머디 워터스란 이름은 중국의 혼수모어渾水摸魚라는 말에서 나왔다. 연못 물을 혼탁하게 만들면 물고기를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갈수록 논점이 흐려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속세와 배임죄 논란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재벌 승계' 물타기 1편 상속세 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51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물타기➊ 상속세=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최고 60%, 대주주 할증을 제외해도 50%로 외국에 비해 매우 높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6% 내외로 추산되기 때문에 일단 30% 안팎까지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이 원하는 대로 상속세제를 바꾸면 누가 가장 이득을 볼까. 경영권을 승계하는 재벌 일가다. 대기업집단 중에서 주식을 1000억원어치 이상 보유한 총수의 주식 평가액을 보면 된다. 한국시엑스오연구소에 따르면, 재벌 총수 40명의 주식 평가액은 올해 1월 기준으로 58조7860억원으로 1년 만에 1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만약 이들 총수 40명이 주식을 넘겨주는 식으로 대기업집단의 경영권을 자식에게 넘겨준다면, 상속세 재편으로 총수 일가는 18조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다. 현행 60% 상속세율을 적용하면 세금이 35조2716억원이지만, 세율이 절반인 30%로 줄면 17조6358억원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세청의 국세통계를 보면 상속재산이 1억~100억원인 사람이 2022년 기준 1만9506명 중 1만9057명으로 절대다수인 97.6%였다. 상속재산이 50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38명에 불과한데, 이들이 낸 상속세가 7조9668억원에 달한다. 사회의 부富가 수십명에게 쏠려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성태윤 실장은 방송에서 상속세 인하가 필요한 이유가 "서울 아파트 한채 정도를 물려받는데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갖지 않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절대 다수는 이번 상속세 논란과 상관이 없다. 상속재산 500억원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서 통계 속에 감춰둔 38명이 부를 영원히 세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우리나라 상속세의 목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2022년 양도소득세 관련 판결에서 "상속세의 법적 존재 이유는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는 것"이라면서 상속세의 목적을 명확히 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1997년 판결한 내용과도 같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속세의 목적은 불평등한 부의 승계를 막아 기회의 균등을 마련하는 데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을 지낸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은 2019년 연설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기회가 완전히 균등하더라도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은 어느 정도 발생할 수 있지만, 경제 자원에 얼마만큼 접근할 수 있느냐가 기회 자체를 향상시킨다. 결국 결과의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을 악화하는 방식으로 전체 불평등을 영속시킬 수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사진=뉴시스]
[자료 | 한국시엑스오연구소, 참고 | 2024년 1월 기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당시에도 감세 위주 정책을 펼쳤고, 대선주자인 지금도 감세 카드부터 꺼내 들고 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조차 최고 세율 40%인 상속‧증여세(estate and gift tax) 세율을 절반으로 깎아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상속세 면제 한도를 재임 당시 350만 달러에서 점증적으로 높여, 올해 기준 1361만 달러까지 오르게 조정했지만, 최상위 부자에게까지 영향을 주도록 세율 자체를 내리진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재벌 승계' 물타기는 비단 상속세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배임죄를 폐지하겠다는 내용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5월 19일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담긴 상법 개정안 도입을 찬성하더니, 지난 14일에는 배임죄 폐지를 주장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이 이야기는 윤석열 정부의 '재벌 승계' 물타기 2편에서 이어가겠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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